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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편

시편 126편 1-6절 아시안 게임 후의 한국 - 조용기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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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시편 126편 1절-6절
설교제목 : 아시안 게임후의 한국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늘 대 단원의 막을 내리는 아시안 게임후의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제 강력한 중공과 금메달 경쟁에서 타이를 이루어서 92개의 금메달로 오늘 최후의 격돌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중공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도 깜짝 놀라게 어떻게 하다가 중공과 타의를 이룰 정도가 되었느냐? 깜짝 놀랐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기이한 것입니다. 어제 우리 집사람이 TV를 보다가 하는 말이 '야! 오늘 저녁에 타이가 이뤄져서 밤 12시간 내지 20시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일은 거꾸로 뒤집혀지더라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우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것이라는 꿈도 못 꾸던 큰 나라 10억의 중공과 타이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것은 우리 민족으로서 정말 긍지를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갑자기 우리 한국이 자랑스럽게 되고 한국인이 된 것이 가슴 뿌듯한 느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TV나 라디오를 시청하는 사람들 또, 신문을 본 사람들 가슴속에 거대한 민족적인 변화가 일어난 기간이 바로 아시안 게임의 기간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개인적으로 인정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마는 이 아시안 게임을 분수령으로 해서 우리 민족적인 사고 방식과 민족적인 감정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신학교를 공부할 때 그리고, 고달픈 개척교회를 할 때에는 이와 같은 심정은 저의 마음속에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가끔 가다가 우시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속에 굉장한 거부반응이 생기고 감정이 악화되었습니다. 우리 최목사님 보고 늘 말했습니다. '나 듣는 데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세요. 나라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으며, 민족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는가? 이 가난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밖에 내 가슴에 안겨준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천국을 위해서 기도하지마는 나라와 민족 같은 것은 애국 애족 같은 말은 하지 마세요.' 굉장한 내 마음속에 반발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자라난 환경이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 애족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정 36년의 치욕 속에서 저희들은 태어났습니다. 일제 말기에 가장 무섭게 우리 한국을 수탈하던 그때에 내어났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와서 우리가 밥해먹는 솥까지 다 빼앗아 갔습니다. 밥을 먹는 밥그릇까지 다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는 숟가락, 젓가락까지도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밥을 담아먹을 그릇이 없고 밥을 퍼먹을 숟가락, 젓가락이 없을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양말이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짚신을 신고서 학교를 가면서 애국 애족의 마음이 마음속에 생길 일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은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이렇게 나라를 빼앗겨 버리고 그 후손들이 이렇게 처절한 치욕과 절망의 삶을 살게 하는가? 거듭거듭 마음속에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과 조국이라든지 역사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면서 저는 어린 시절을 보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소망과 큰 기대가 다가올 줄 알았는데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1950년 6.25 사변이 날 때까지 좌우간 끝없는 좌익우익의 충돌과 정치사회의 거대한 혼란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좌절감이 우리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학교를 가면 학교에서 좌우충돌로 피투성이가 되고 직장은 직장대로 사업장은 사업장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늘 살상과 암살이 계속되고 불안과 공포 속에 떨면서 사는 그 한 5년 동안 이였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해방된 조국에 대한 기대도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그러한 좌절감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일어나고 민족사에 일찍이 보지 못한 대 민족의 살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강토는 초토화되고 고아와 과부가 어느 곳에 가나 살길을 찾아 허덕이고 민족의 앞길은 정말 암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온 세계 매스컴에 나타나는 한국의 모습이란 이지러지고 가난하고 동냥하고 처참하게 짓밟힌 강산과 민족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이곳에서 애국과 애족의 마음이 생길 리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 끝없는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적인 빈곤과 부정 부패와 그리고 조금도 안정이 없는 정치적인 변천에 우리들은 환멸하고 좌절하고 견딜 수 없는 민족적인 열등의식에서 이 민족을 탈피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한국에서 산 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저 한 개인의 심정이 아니라 우리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 모두다 느꼈던 가슴속에 절망이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조해서 말하기를 '엽전이 뭘 안다고 건방지게 날뛰느냐?' 우리 스스로를 엽전이라고 부르는 처절한 절망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도로부터 70년대에 고도 성장의 시기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조국과 민족을 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그때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인데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나라는 살아 일어난다. 이 나라에는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설교를 해라.' 수많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남부여대하고 남미로 브라질로, 볼리비아로 다 이민을 떠나기 시작했었습니다. 이 나라를 등지고도 조금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그들은 떠나갈 때 희석이 만면하여 이 나라를 떠나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떠나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엎드려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이 나중에 조국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온다. 이 나라는 반드시 제기를 한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이 민족에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라.' 그래서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제가 가장 강경하게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가지고 이 민족에게 구원과 함께 소망을 주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1960년도와 70년도 우리 한국에서 5개년 경제개발이 시작되어서 고도 성장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세워지고 울산 공업단지가 세워지고 처처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값싼 대량의 물건이 생산되어 온 세계로 수출하기 시작하고 '우리도 잘 살수 있다.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거대한 꿈으로 말미암아 온 민족이 흥분을 해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가 살려면 국민 전체가 기대감으로 가슴이 들뜨고 흥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속에 기대가 넘치고 흥분감에 들뜨지 아니하면 민족의 에너지가 개발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는 거센 도전이 다가 왔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우리가 겨우 살려고 일어난 모든 것에 찬물을 끼얹 졌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사업체는 무너졌습니다. 절망은 먹구름처럼 우리에게 덮었습니다. 그때 마침 우리 교회를 짓던 시절이라 나는 짓던 교회를 짓지 못하고 쇠에서는 녹물이 떨어지고 이 한가운데에 앉아서 매일 밤같이 '이 쇠가 내 위에 떨어져서 빚 안 갚고 합법적으로 죽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 바로 70년대 저의 생의 한 기억인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같이 하셨습니다.

 

매년 마다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결신하고 예수를 믿어 나오고 이 나라의 기독교의 거대한 꿈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어서 휘청한 오일쇼크를 이겨내고 국민의 GNP의 6%를 국방비에 사용합니다. 예산의 30%를 국방비에 사용하면서 한 나라 경제건설을 하고 복지를 진행해 나가는 나라가 역사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어서 우리는 그 길을 걸어오면서 오늘날에 기어코 중진국 상위 국에 도달했으며 이제는 얼굴을 잃었던 우리 민족이 우리 얼굴을 도로 찾고 체면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겨서 86 아시안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못살면 체면이 없습니다. 그러나 좀 살게 되면 이제는 얼굴을 찾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얼굴을 잃어버린 존재였었습니다. 어디에 가도 우리 한국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있으나 마나, 귀찮은 존재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격도 없고 얼굴도 없고 아무런 이름도 없는 존재였었습니다. 나는 1960년대부터 온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했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사람이란 말을 하기 부끄러워서 한국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입에서 실오라기 만한 말이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얼굴을 잃어버린 민족이 이제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경제 건설과 함께 86 아시안 게임은 우리 민족이 얼굴을 찾는 하나의 거대한 운동인 것입니다.

 

여러분, 30억 아시아의 형제들을 모아놓고 이제 자아를 찾는 거대한 잔치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살게되면 비로소 이웃도 찾아보고 어른들도 찾아보는 것처럼 우리도 이 만큼 살게 되니까 아시아 30억을 불러 모아놓고 여기에서 대접도 하고 잔치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번에 너무 낭비가 많다. 너무 사람들에게 선물공세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로소 살게 되었으니 '애라 선물 좀 해보자.'는 것입니다.

 

없어서 못하지 있으면 이제 잔득해 보는 것입니다. 잔치 때는 돈 쓸려고 잔치하는 것이지 돈 아끼려고 할 바에야 잔치하지 말지 잔치를 했으면 돈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을 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풍성하게 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잔치 때는 그렇게 하고 잔치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허리 줄을 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86 아시안 게임을 통해서 우리는 일본을 누르고 강대한 중공과 어깨를 겨누고 선두다툼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을 바라보고 고함을 치고 박수를 치고 밤잠을 설치고 그냥 손에 땀을 쥐고 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역사적인 좌절감에서 치료함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가운데 오천 년 동안에 가시밭 눈물길을 걸어왔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과연 역사에서 아시아에서 한민족으로서 국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좌절해 버리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스포츠를 통하여서 우리 민족적으로 이 좌절감을 씻어낸다고 그렇게 고함을 치고 남녀노유를 할 것 없이 뛰고 구르고 한 것입니다. 이래서 민족적인 열등의식과 자조 및 자학에서 벗어나 상처 입은 민족의 마음에서 치료를 받는 잔치인 것입니다.

 

저도 TV앞에서 저녁에 고함을 치고 박수를 치고 땀을 흘리고 '이겨라. 이겨라.' '죽여라. 죽여라.' 그렇게 고함을 친 것은 내 속에 병이 고침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나서 어둡고 긴 캄캄한 터널을 지나온 우리에게, 압박과 설움과 좌절감밖에 당치 못하던 우리가 이제 오늘날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과 함께, 우리가 그 짓밟힌 그들과 함께 일어나서 어깨를 겨눌 때 여기에 민족적인 좌절감과 상처 입은 민족의 이미지가 치료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엽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때 시편 126편 1절로 4절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40년 얼굴 없는 민족이 되어서 짓밟히고 학대받고 종의 생활을 하다가 70년이 차자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이 해방이 되어서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나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노래가 마음속에 넘쳐흘렀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역사의 안 길에서 중공에 짓밟혔었습니다. 중공의 대륙에 짓밟혔었고, 최근 근세사에서는 일본에 비참하게 짓밟혔었습니다. 그러나 요번 이 대회를 통하여서 우리는 이 모든 정신적인 압박에서 포로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기쁨이 마음속에 충만했었습니다. 우리의 입술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가슴에는 뿌듯한 찬양이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힘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세에 이 민족을 사용하기 위해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국과 민족을 이 마지막때에 들어서 아시아의 등불로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세계 앞에서 하나님께서 높이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라.'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광경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아시아 게임을 통해서 오천 년 역사에 사천 번의 침략을 받고도 민족의 고유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면면히 살아온 우리 민족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그래서 새삼스럽게 그 강대했던 고구려가 자랑스럽게 보이고 찬란한 백제 문화가 자랑스럽게 보이고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가 빛나 보이고 고려조가 영광스럽게 보이고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조차 밉지 않고 불쌍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회복한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가 다시 재조명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놀라운 민족적인 변화가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게임을 통하여서 내일에 대한 가능성이 마음속에 살아났습니다. 이제야 말로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28년의 목회동안 암담하고 좌절된 우리 민족 앞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어보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고 외쳐왔었습니다. 이것은 고독한 길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 설교를 듣고 조소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날이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으로 올 줄 알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강당에서 외치던 그 외로운 부르짖음이 이제는 온 국민의 부르짖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온 우리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는 그 기백이 충천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제야 말로 민족전체가 우리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게 되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감사하고 기뻐하지 안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변화는 이제 조국과 민족과 그 속에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국을 사랑하게 되고 민족을 사랑하게 되고 내가 대한민국 백성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뿌듯한 마음의 용기와 힘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에 대한 늘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늘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와서 우리 아시아에서 30억 가운데 내 조국이 자랑스럽고 내 민족이 자랑스럽고 내 자신이 대한민국 백성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위대한 변화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시안 게임은 우리 민족의 한 분수령이 되었으며 앞으로 88 올림픽게임을 통하여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민족의 기상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거대한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곳에서 만족하고 앉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아시안 게임은 오늘로서 그 불길이 꺼집니다. 그 동안 아시아 게임이라는 밝은 그 불빛을 받아서 민족이 흥분하고 민족이 치료받고 민족이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신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은 이제 앞으로 다가올 것은 정치적인 어두운 캄캄한 밤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왜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번도 참 민주주의를 가지지 못하고 참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지 못했었습니까? 이렇게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국민 전체의 정신이 앙양되어 있다 할지라도 정치가 혼란하면 이 나라는 그 길로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정치란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견인차인 것입니다. 견인차가 고장이 나면 뒤에 있던 모든 열차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한국에 정치가 안정될 수 있도록 우리는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길 성취라는 민족적인 기상을 정치라는 그 열차가 받아서 이어 이끌어 가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정치인들은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는 비생산적인, 매국적인, 당정을 버리고 오천 년 역사 앞에서 사천만 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이 위대한 꿈을 가지고서 나가야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역사와 민족 앞에서 여당은 여당으로의 그 수의 압도적인 많음으로 독주하지 말아야되고 야당은 야당대로 수가 적다해서 무엇으로나 깽판을 놓고 정치인 국회에서 대화를 통해서 해야할 것을 길거리로 나가서 뛰고 구르고, 못된 자식 얻어맞고 길거리로 울고 고함치고 나가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제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인은 국회에서 우리 조국과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진지하게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합의해 나가야 될 것이요.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가만 두지 말고 정치인들을 지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가만히 참고만 있었습니다. 양털 깎는 자 앞에서 털을 깎이는 양처럼 아무 말도 안하고 오른 뺨을 치면 왼 뺨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정치인들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이 이상 더 우리 조국과 민족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라, 우리의 민족입니다. 이 상대 소수의 정치인들이 자기 원하는 대로 '이것이 국민의 뜻이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다.'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당겨서 우리를 발판으로 해서 자기 자신의 권력을 만족시키고 자기 자신의 출세욕을 만족시키는 이러한 일은 우리 한국에 다시는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요. 이러한 사람이 생겨날 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가만히 좌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우리 국민과 사회 혼란을 가져오는 요소들을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조국을 통일하고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서 뻗어나가야 할 것인데 이것을 파괴하는 사회적 혼란을 우리는 가만히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화염병이 나르고 최루탄이 쏘아지고 눈이 따가워서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이것을 보고도 우리는 외면하고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이 가만히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안된다.' 사회적인 혼란은 있어서는 '안된다.' 무엇이든지 대화로 이루어져야 되지 주먹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이것을 하지 말라고 일어나서 외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가만히 방관하고 있어서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민주적인 합의 개헌 위에 새워진 희망찬 민주 조국을 원합니다. 우리는 합의 개헌을 원합니다. 어떠한 독주도 원하지 않습니다. 여당의 독주도 원하지 않고 야당의 깽판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같이 토의해서 합의해서 좋은 개헌하여 좋은 나라 세우기를 주의 이름으로 우리 믿으십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때요. 조국을 위해서 울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127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조그마한 집도 여호와께서 세워주셔야 하는데 국가라는 거대한 집을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힘쓴다고 해서 지어지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 집을 짓게 해 주셔야 대한민국이라는 집이 올바르게 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지금 오늘날 우리 일천만 성도가 해야 할 것은 이 야훼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기도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조국이라는 집을 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이 조국과 민족을 세워주시옵소서. 바른 정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 조국과 민족이라는 성을 지켜주시지 안이하시면 우리 육십만 대군이 아무리 지켜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전쟁이 나서 다시 한번 초토화가 되면 우리의 모든 민족적인 기대가 어느 곳에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는 주야로 '하나님이여, 대한민국이라는 성을 지켜주시고 다시는 전화에 휘몰 리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오늘 기도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한국의 일천만 성도와 한국 교회가 그 역사이래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민족이 이제 살게된 이 토대 위에서 앞으로 승승장구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 조국과 민족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조국과 민족에 부과된 사명이요. 이것이 우리 교회에 부과된 사명인 것입니다.

 

아시안 게임의 찬란한 불은 꺼져가지마는 이제 여기에서 성령의 찬란한 불이 임하여야 될 때가 온 것입니다. 아시안 게임은 끝났어도 성령의 불은 여기에서 더 활활 타서 우리 개인과 가족이 구원을 받고, 우리 사회와 국가가 구원을 받고 이 성령의 불길이 바로 한국에서 전 30억 아시아인의 가슴 가슴속에 넘쳐 나서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어 영원한 영광과 생명을 얻는 자리로 우리가 이끌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소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자랑이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이 말세에 주님께서 이 사명을 주셔서 오대양 육대주에 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지고 깨어져서 사라져버릴 역사의 종말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사명을 다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어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조국과 우리 30억 아시아인의 구원을 위해서 전력으로 투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시안 게임을 허락해 주시고 우리 민족이 치료를 받고 민족에 저력과 민족의 가능성을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저 시골에 사는 사람까지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요번에 정신적인 거대한 변동을 체험하지 아니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와 같은 민족적인 변화를 가져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 축복을 주셔서 이 민족을 사용하시겠다는 결심이 서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을 알고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이때에 우리 교회가 일어나서 우리 집을 세우려는 야훼 하나님, 우리 성을 지켜주시는 야훼 하나님을 믿음과 기도로 일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믿으로 밀고 나가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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