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언제 기도할 마음이 생기는가?
설교본문 : 사무엘하 7:25-29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삼하7장25-29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 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 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 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 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 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 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 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 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 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 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 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 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 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 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 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 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 서 하니라
지금은 우리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전심을 다해서 쉬 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갈멜산 꼭대기 에서 땅바닥에 엎드린 채 무 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간절히 기도 했던 엘리야처럼 기도해야 합 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기 도할 제목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목사인 저 자신만 해도 개인적으로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 제목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1시간을 기도해도 기도 제목 하나 하나에 대해 불과 1,2분 정도밖에 할애하 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의 경제 상황 때 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아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기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국가 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만일 정책 하나라도 잘못 선택할 경우 나라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 있습니 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도 우리는 기도하 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도전 앞에 놓여 있습니다. 피터 와 그너(Peter Wagner) 박사는 미국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을 가르치는 유명 한 교수입니다. 얼마 전에 저 는 그가 최근 한국에 와서 강 의한 내용을 들어 본 적이 있 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듣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본 것이니까 어떤 면에서 좀더 객관성 있는 이 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는 1990년대 들어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온 사방에 불 교와 무속이 판을 치게된 원 인을 기도의 부재에서 찾았습 니다. 한국 교회가 한참 불이 붙어 부흥하고, 산골짜기마다 기도하는 소리로 메워 지고, 교회마다 기도의 불길이 왕성 하게 타오르던 때인 1960,70,80년대에는 전통적인 무속이나 불교가 완전히 기독 교에 압도되어 맥도 못 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교회 성장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 교회가 영적인 무기력에 빠지게 되 고, 또 경제적인 상황의 호전 으로 편안한 생활을 구가하게 된 성도들이 기도를 잘 안 하 게 되자 무속과 불교가 전통 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기세 를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즈음 텔레비전이나 신 문, 잡지에서 점과 굿, 운세 따위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기 사를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 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 않습 니까? 주택가 깊숙이 절이 들 어서서 난리 법석을 떨고 있 지 않습니까? 또 군대는 군대 대로 군승들이 얼마나 판을 치고 있습니까? 이 모든 상황 들은 교회가 그만큼 영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것입니다. 옳 은 말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심각한 영적 인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둘째치 고 라도 어떻게 이러한 영적 인 도전 앞에 우리가 기도하 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신 을 똑바로 차리고 기도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 국 교회를 보십시오. 지난 수 십 년 동안 미국은 세계 제 일류 국가로서 독보적인 번영 을 누려왔습니다. 이렇게 평 안한 삶을 사는 분위기에서 몇십 년을 지내오는 동안 미 국 교회의 목사들 역시 기도 에 대한 열의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어떤 통계를 보니까 미국 교회 목 사 4명 중 1명은 하루 10분 정도밖에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국 교회 목사들의 25퍼센트는 하루 10 분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 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 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하 지 않으면 결국은 망하게 된 다는 것에는 미국 교회나 한 국 교회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영적인 도전들을 심 각하게 받아들이고 기도하기 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기도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으면서 도 이상하게 입이 열리지 않 아 기도하지 못 하시는 분들 이 꽤 많습니다. 기도는 마음 이 움직여야 할 수 있는 것입 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억지로 입을 연다고 할 지라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 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말을 저울로 달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 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러 한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마 귀는 우리의 마음을 닫음으로 우리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안 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가 기 도를 안 해도 편안하게 느끼 도록 만듭니다. 불행하게도 교회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는 마귀의 이러한 수법에 넘어가 서 '모여서 기도하자'고 하면 몹시 불편해 하면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핑계를 찾는 사람들 이 적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도 그렇습니다. '용의 눈물' 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이 빠져 쳐다보면서 '가정예배 드리자, 기도하자'고 하면 이 리 비틀고 저리 비틉니다. 믿 음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용의 눈물' 보자 하면 '매일 봐도 그게 그 소린데' 하며 별로 시답잖게 여기고 '기도 하자' 하면 '아멘, 기도해야 지'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왜 이토 록 우리의 심령이 거꾸로 되 어 버렸습니까? 성령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시기보다 악한 영이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잘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을 열고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 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 한 가지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습 니다. 본문 27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 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어떤 이 유 때문에 다윗은 갑자기 기 도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라 기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 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하나 님 앞에 소리를 지르며 간절 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그런 마음을 가 지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매 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다윗 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냐 고 반문할 지 모릅니다. 다윗 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고 또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럴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 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러나 로마서15장 4절을 보십 시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 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 여 기록된 것이니."
성경에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된다 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 를 그의 이야기로만 볼 수 없 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 니다. 우리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나 자 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 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윗과 같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될까 하는 마 음을 가지고 말씀에 귀 기울 이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 다보면 땀 흘리고 씨를 뿌리 는 고단한 여정을 걷게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시 기를 다 지낸 후에 노래하며 추수하고 행복을 누리는 때가 있습니다. 다윗 역시 그러했 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면서 그야말로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을 가는 농부처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사울 왕 에게 쫓겨다니는 동안 인생의 밑바닥 생활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뼈저리게 겪어 보았습 니다. 그리고 왕이 된 다음에 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 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회복 하기 위해서 거의 매일 전쟁 터에서 싸움을 하며 피를 흘 려야 되는 그런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 생스러운 생활도 한 20여 년 지나고 나니까 드디어 그에게 도 노래하며 추수하는 아름다 운 행복의 때가 찾아왔습니 다. 새로 건축한 백향목 궁궐 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궁녀 들의 시중을 받으며 아주 편 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맞게 된 것입니다(삼하7:2).
일반적으로 볼 때 어려운 형편에서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던 사람이 사는 형편이 과 거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나아지거나 모종의 권력을 얻 게 되면 대부분 그 동안 즐기 지 못한 인생을 이제 좀 즐겨 보자는 식으로 흐르게 마련입 니다. 왜 갑자기 집을 다시 짓는다고 아우성을 칩니까? 왜 멀쩡한 자동차를 최고급 외제 승용차로 바꿉니까? 왜 수백, 수천 만원 짜리 옷을 걸치고 뻐기고 다닙니까? 왜 갑자기 과거에 가난할 때 만 났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온갖 거드름을 피웁니까? 그 동안 고생한 자기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입니 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심리로 빠집니다. 지난 15년 가까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억 만 장자나 되는 양 요란을 떨 었던 것도 이러한 심리와 무 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조금 살만 해지니까 보 상 심리가 작용해서 '이제 마 음껏 먹고 즐겨보자'라며 허 세를 피운 것입니다. 물론 얼 마나 못살았으면 그렇게 했겠 는가 하고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그러한 허세 때문 에 국제적으로 얼마나 큰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는 그와 같은 행동의 결말이 어떠하다는 것을 뼈저리고 체 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보통 사람 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앉아 서 온 천하의 영화를 자기 손 에 쥐고 마음껏 즐기고 누려 볼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완전 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사 무엘하 7장 1-2절을 보십시 오.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다윗왕으로 하 여금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 실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 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 향목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잘 살게 되자 하나님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궤, 다시 말 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곳이 텐트 안에 있 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은 백향 목 궁궐을 지어 놓고 사는데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텐트 안에 계신다는 것이 마음에 못내 걸렸던 것입니다.
그는 평안한 삶 속에서 안 주하며 자기 만족을 추구하며 즐기다가 자기 인생을 마감하 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이 만큼 복을 누 리게 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 든 일이 형통하고 시간적으로 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 니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할까? 내가 이제는 이 일에 전념해야 되겠다'고 생 각했습니다. 가난하고 바쁠 때 마음은 있었지만 할 수 없 었던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었 던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 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 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 나님의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 놓으면 온 세계 열방이 예루 살렘을 방문할 때마다 이스라 엘의 하나님은 크시도다 하며 경배할 것이 않겠는가? 그렇 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서 얼마나 큰 영광을 받겠는가? 나의 부와 건강과 능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높이 기 위한 성전을 짓자.'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던 것입니 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는 완전히 다른 사고 틀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잘 살게 되면 자기 생각을 먼저 하게 마련인데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 생각을 먼저 하고 하나님의 집을 짓 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 닙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평 소 신앙 생활도 성실하게 잘 하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다 고 자주 말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 려운 시련기를 딛고 성공하고 잘 될 때 자기 생각 보다 하 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내놓는다든지,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그런 고상한 목적을 먼 저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요? 대부분은 자기 생각이나 자식 생각, 자기 집 꾸밀 생각을 먼저 하는 것입 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 님 생각을 자기 생각보다 앞 세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각 역시 그러해야 할 것 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러한 마음을 읽으시고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 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네 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 고? 좋다. 그러나 너는 손에 피가 많은 사람이야. 전쟁에 서 너무 피를 많이 흘렸기 때 문에 그 피 묻은 손을 가지고 내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는 없어. 그 대신 네 아들이 짓 도록 해 주마. 그러나 내가 네 마음의 생각을 보니 참 갸 륵하다. 다윗아.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 터 받은 약속을 이렇게 요약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27 절). 할렐루야! 이 얼마나 기 가 막히는 일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 하자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세워주 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 다.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축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 집을 잘 세운다 한들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 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짜로, 값없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 한다든지, 우리에게서 가져가 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진실 된 마 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 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세워주신다는 말은 구체 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까요? 9절 이하에 그 내 용이 나오는데 간단하게 요약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 저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만 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 어 주리라"(9절).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다윗에 게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 다.
"너를 모든 대적에서 벗 어나 평안케 하리라"(11절). 그의 나라도 평안하고 가정도 평안하도록 해주시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다스 리는 나라를 위하여 후손들에 게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 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 리라"(12절). 다윗의 후손들 이 그 나라를 이어서 다스리 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마 지막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위가 영원토록 견고케 되리라 는 것입니다.
"네 집과 네 나 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 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 리라"(16절). 이 얼마나 놀라 운 약속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말에는 이와 같이 엄청난 축 복들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다윗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겠습니까? 오늘 우리 역시 우 리의 이름이 존귀케 되기를 원합니다. 명예를 얻기를 원 합니다. 우리 중에서 평생 남 에게 욕먹으며 살다가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 집을 평안하게 해 주시기 를 소원하지 않는 사람도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우리의 앞 길을 평탄하게 해주시고 견고 하게 해주시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손들을 축복하셔서 대 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하시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 다면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의 집을 세우겠다는 소원을 앞세워야 합니다. 마태복음 6 장 3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 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 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 름을 영화롭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여,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어떻게 하면 내 짧은 인생을 통해서 하나 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는 일생동안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짧은 인생, 젊음 가기 전 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 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데 조금이라도 쓰임 받을 수 있 습니까? 내 직업, 내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온 열방 가운데 높임을 받으시 고, 경배를 받으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 마음을 보 시고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 내 가정을 사용해 주옵소서. 내 사업도 사용해 주옵소서. 내 젊음과 내 재능도 사용해 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하나 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하는 사람의 마음 가짐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 의 집을 먼저 세우려 하면 하 나님이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 는 축복이 우리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순 서를 바꾸지 마시기를 바랍니 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우리 가 자기 생각만 하고 '주시옵 소서. 주시옵소서.'라고 구할 때도 하나님은 주십니다. 너 무 불쌍하기도 하고, 너무 어 리기도 하고 해서 주시는 것 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철없이 '달라 달라' 하면 주고 싶지 않아도 줄 때가 있지 않습니 까? 철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 러분, 날마다 자기 집과 자기 생각, 자기 자식, 자기 건강, 이런 것들만 구했음에도 하나 님이 잘 주실 때는 이것 하나 만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 다. '내가 이만큼 철이 없구 나.' 우리가 인간적으로 볼 때도 철이 들어야 자식이 부 모 걱정을 먼저 하지 않습니 까? 우리가 영적으로 조금 성 장하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을 먼저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 님은 우리 집을 세워 주신다 는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집 을 세우시는 것이 얼마나 중 요합니까? 우리 중에서 자기 스스로 자기 집을 완전히 완 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 다. 그럴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유 능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쌓 아놓고 사는 사람이라도, 아 무리 장수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집을 자기가 완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 러분의 남편을 보십시오. 여 러분이 꿈꿔왔던 바로 그 사 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또 여 러분이 낳아서 키운 자식은 어떻습니까? 자식이 여러분의 뜻대로 다 됐다는 사람이 있 으면 어디 손들어보십시오. 아무리 내가 집을 잘 짓고 싶 어도 안 되는 영역이 있는 것 입니다.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됩니다. 아내나 남편도 내 맘 대로 안됩니다. 심지어 내 인 생도 내 맘대로 주무르지 못 합니다. 한 이삼십 년 전에 여러분이 젊을 때 생각했던 것들을 돌이켜 보십시오. 그 생각대로 이룬 것이 과연 몇 이나 됩니까? 모든 것을 내 능력과 내 힘과 내 목표를 가 지고 달성하는 것 같아도 실 제로 그 모든 꿈을 완성해 내 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집을 완성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할렐루야! 시편 127:1을 보십 시오."여호와께서 집을 세우 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우리가 우리 집을 지을 때는 적당한 높이, 그저 벽을 쌓는 정도만 할뿐 입니다. 그 위에 지붕을 덮고 모든 공정을 끝내어 집이 완 공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 다. 내 자식의 장래도 하나님 이 끝맺음 해주셔야 됩니다. 우리 부부의 장래도 하나님이 끝맺음 해주셔야 됩니다. 그 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성 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집을 세워 주시는 것이 중요한 것 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사 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히 교만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아직도 인 생을 잘 모르는 어리석은 사 람일 것입니다. 제 말에 비위 가 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 르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저도 인생을 살만큼 살아 보 았기에 이 말씀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 로의 힘으로 우리 집을 다 완 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완성해 주셔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다윗이 하나 님으로부터
"내가 네 집을 세 워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은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다 윗은 그 약속을 듣자마자 너 무 흥분한 나머지 가만히 앉 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8 절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여호와 앞'이란 하나님의 궤 가 있는 텐트를 말합니다. 다 윗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 나 아가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격에 벅차 오르는 마 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 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 셨나이까?...."
그 기도가 18 절에서부터 29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한가 지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 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 면 기도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7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 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 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 리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자마 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불 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집을 세워주시 겠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 인가?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 을 수 있는가? 지금 당장 하 나님 앞에 달려 가 감사 드리 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꼭 내 집을 세워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 드리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충동을 느낀 것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윗처 럼 마음이 달려가는 기도를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나 님이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을 위해 주시는 약속을 찾아내십 시오. 그 약속의 말씀을 들으 십시오. 다윗에게 주신 이 말 씀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와 닿는다면 바로 이 말씀은 여러분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 님의 약속인 줄 믿으시기 바 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별 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하 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먼저 위하는 마음으 로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읽 다보면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통해서든지 여러분 자신을 위 해서 준비하신 축복의 약속을 듣게 하고 보게 하십니다. 그 약속을 받기만 하면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어닥치게 됩니다. 성 경을 통해서 약속을 듣는 것 이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유성기 혹 은 축음기가 무엇인지 모르시 는 분은 안 계실 줄 압니다. 요즘이야 CD 플레이어가 보편 화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축음 기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축 음기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잊 혀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빅트롤라 축음기 회사 에서 나오는 LP판마다 그려져 있던 이상한 마크입니다. 옛 날 스피커는 나팔처럼 생겼지 않습니까? 그 나팔처럼 생긴 스피커가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앞에 개 한 마리가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그런 마크입니 다. 굉장히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심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창기 유성기는 잡음이 참 많았습니다. 바늘이 쌕쌕하며 판을 갉아먹는 소리가 노래 소리 못지 않게 크게 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고안해 낸 것이 나팔스피커에 개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바 로 이 마크입니다. 개는 수많 은 사람들이 떠드는 요란한 시장 바닥에서도 꼭 한 사람 의 소리만 듣습니다. 아무리 잡음이 많고 사람들이 떠들어 도 자기 주인의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습니다. 마찬가 지로 유성기에서 잡음도 많이 들려오겠지만 개처럼 귀를 기 울이고 노래 소리만 골라 들 으라는 것입니다. 멜로디만 듣는 귀가 있으면 설사 잡음 이 많다 해도 충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굉 장히 의미가 깊은 그림이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주인의 음성만 듣는 개의 귀를 가져야 됩니 다. '하나님, 내가 주님의 영 광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또 열 심히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 이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그의 약속의 음성을 들 려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주인의 음성을 듣고자 귀를 쫑긋하고 기다리는 개처럼 우 리가 하나님의 약속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 씀 앞에 앉으면 우리 각자에 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네 집 을 세우리라."고 하시는 약속 을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 니다.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받 으면 그 다음부터는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절로 생깁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 나 간절한 마음으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 까? 25-6절을 보십시오. 자기 집을 세워주시겠다는 하나님 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가 얼마나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 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 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 로 행하사....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 옵소서."
28-9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하 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 까?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 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 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 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 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 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 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 소서."
얼마나 자신 있게 기 도합니까? 우리도 이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 속을 붙들기만 하면 우리도 이렇게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모세가 그 와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다 니엘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면서 매달렸습니다.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여 말씀하 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우리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 소서."라고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링컨 역시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어려움 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 속을 붙들고 매달렸다고 합니 다. 지금도 워싱턴에 가면 링 컨이 애독하던 성경이 한 권 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 성경 에 보면 손때 묻은 자국이 특 별히 나 있는 데가 있다고 합 니다. 바로 시편 34편 4절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여호와 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 지셨도다."
만인의 자유와 평 등을 위해 남북 전쟁을 일으 켜 놓고 그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어떤 때는 공포 에 짓눌렸겠습니까? 그럴 때 마다 그는 시편34편 4절 말씀 을 펴놓고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 다.
"하나님, 내가 구하면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신 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 약속을 의지하오니 내 마 음을 편안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은 보증수표 입니다. 절대 부도가 나는 법 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십시 오. 하나님의 약속을 휴지처 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지 마 십시오. 활용하십시오. 하나 님은 자기 자녀들이 약속을 가지고 자기 앞에 나와서
"하 나님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 습니까? 사무엘하를 보세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시편에 보세요. 로마서를 보 세요...."
하면서 때를 쓰며 매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애들이 그런 식으로 와서 계속 매달리면 귀찮아하 고 역정을 냅니다. 아무리 사 랑하는 아들딸이라도
"아빠, 어제 자전거 사준다고 그랬잖 아? 오늘 사주세요."하고 아 침저녁으로 매달리면 처음에 는 좋게 말하다가도 나중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 리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자기의 약속을 주장하며 매달리면 귀 찮아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좋 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 변에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여 하나님이 자 기 집을 세워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성 가시게 굴면 굴수록 좋아하시 는 분입니다. 다윗처럼 성가 시게 할 수록 더 좋아하십니 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 분,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 니다. 저는 오늘 정말 기도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 때 우 리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마음에 잘 담고 그대로 실천하면 다윗처 럼 기도의 왕이 될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집을 짓기를 먼저 소원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그 주변만 생각 하는 자기 지향적인 사고의 틀을 하나님 지향적인 사고의 틀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하 나님,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이 름을 영화롭게 할까요?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은데 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싶은데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조용히 읽으면 그런 사람에게 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네 집을 세우리라."
하시는 음성을 듣 게 하시든지 아니면 각자에게 가장 필요 적절한 약속의 말 씀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 럴 때 우리 마음에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불일 듯 일어나 게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 니다.
"하나님, 내게 이런 놀 라운 약속을 주시니 감사합니 다. 그 약속을 반드시 내게 이루어주십시오."
하고 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자기 약속의 말씀을 붙들 고 나와서 보채는 사람을 기 뻐하시고 그 약속대로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 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 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이요 뜻입니다(살전5:17). 그 러나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기 쁨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모 든 가능성을 마련해 두고 계 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 쁨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 리 사고가 자꾸만 하나님 중 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돌 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하나님 중 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킵 시다. 그럴 때 우리 모두 놀 라운 기도의 사람이 될 것입 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내 가 잘되고 가정이 잘되고 나 라가 잘되고 하나님이 놀랍게 영광 받으시는 새로운 미래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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