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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1-4절 성령충만과 방언 - 조용기 목사 설교

by 재영구리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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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행2:1-4
설교제목 : 성령충만과 방언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은 성령강림 절기입니다. 왜 성령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강림하셨는지 그것을 우리 함께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유월절을 지난 후 50일째가 되면 첫 추수 열매를 하나님께 예물로 바치는 오순절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장사된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저희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저희 보는 데서 승천해 가셨습니다.

그후 120여명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한 열흘동안 마음을 다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있을 때 오순절날이 이르렀었습니다. 유월절부터 50일이 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들이 모인 자리에 갑자기 성령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방에 가득한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그들에게 임한 이유는 역사와 인간 생명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기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에 잡힌 인생에게 큰 생명의 생기로 오셔서 사망을 철폐하고 생기로 온 세계에 가득하게 하겠다는 성령의 역사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성령께서 이 땅에서 역사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캄캄한 세상에 삶의 참된 빛을 비추어 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은 더러움을 태웁니다. 모든 인생 가운데 부정과 부패와 우상과 사신을 섬기는 더러움을 다 불태워 버리고 청결하게 해 줄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길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우리 모든 사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으로 활활 타게 할 것을 예표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 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외국어를 하려고 할지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외국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하나님 성령이 임하셨을 때는 사람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배우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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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성령충만과 방언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또 성령충만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실 때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마치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술취한 사람같이 보였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2절로 13절에 보면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여러분, 술을 조금 마신 사람은 술이 몸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술이 몸을 주장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술을 많이 먹어서 술이 취하게 되면 완전히 술이 사람을 지배해서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술취함에 비유한다면 예수를 믿고 중생한 사람은 마치 술을 조금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이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만 성령이 완전히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으면 마치 술취한 사람같이 술이 완전히 사람을 점령하고 술이 완전히 사람을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를 완전히 채우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중생의 영으로 와서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마음속에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경을 깨닫게 되고 기도하게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빛이 비취지 아니하면 우리 사람의 힘으로써는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이제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아 방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표적의 방언과 은사의 방언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했다는 표적으로서 우리 입에 방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 방언을 계속 우리가 말하게 되면 이것은 은사의 방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항상 기도할 때마다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방언이나 처음 성령세례 받을 때는 표적의 방언으로 성령이 충만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성령충만함 받고 난 다음 나중 계속해서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이것은 은사의 방언으로서 방언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저 개인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는 병 고치는 은혜까지 체험했습니다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루피 리처드 목사님이었는데 주일 교회에만 가면 성령세례 받으라고 자꾸 강조를 하는데 나는 아무리 기도해도 성령세례가 오지 않습니다. 1년 내내 주님께 부르짖어도 성령세례 받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제가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동안에 삼각산에 가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소나무를 부여안고 몸부림쳐 기도하다가 성령세례를 받고 말은 것입니다. 저가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입술이 떨리고 혀가 꼬부라지면서 나는 한국말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입에서는 끊임없이 방언이 넘쳐 나왔습니다. 그 방언은 내 스스로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혀를 사로잡아서 성령이 함께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 방언의 은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원에 가서 굴속에서 기도할 때도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도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도 여러분 강단에 서기 전에 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방언하는 이익이 무엇인가?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방언은 알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그것 자꾸 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므로 방언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필요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익이 되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성령충만을 받고 우리가 얻는 표적의 방언 이후, 은사의 방언을 말하게 될 때 이 방언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이 오순절 날에 우리는 간절히 한번 마음을 다 해서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면 사람 들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듣는 곳에서 사람 들으라고 방언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혀를 통해서 하나님께 비밀로

우리의 모든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밀이라는 것은 사람이 알아들으면 비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두 사람 간에 말할 때 비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밀을 말하자면 친해져야 비밀을 말하는 것이지 원수들하고 비밀을 말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 붙잡고 비밀을 말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가까운 사람끼리 동지가 된 사람끼리 비밀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과 대단히 가깝게 되고 하나님과 한자리에 있게 되고 하나님 속에 내가, 내가 하나님 속에 들어가는 이러한 곳에 있어야 비밀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께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별 도리 없이 여러분이 하나님 속으로, 하나님이 여러분 속으로 들어와서 지극히 친밀하고 가까워져서 비밀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방언 기도를 하면 여러분이 곧장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대면해서 마귀도 듣지 못합니다. 사람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만 이야기하는 지극히 친밀하고 비밀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밀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마귀도 그 내용을 깨달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 말하기를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했는데 덕이란 헬라어로 오이코도메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이코 도메오라고 말한 것은 오이코이라는 것은 집이고 데모란 짓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자기의 신앙의 집을 벽돌 한장, 한장, 한장 자꾸 놓아서 높이 쌓아올라가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면 자기의 신앙의 집이 점점 크게 지어져 가고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신앙의 뜨거운 열정이 마음속에 생깁니다. 방언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하심을 마음속에 느끼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하게 되면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이 자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신앙의 집을 점점점점 자라게 하는 것이요, 예언을 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 듣게 하는 것은 교회가 점점 그 예언을 듣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의 신앙이 성장하게 하는 것이요, 예언 즉 설교말씀은 성도의 신앙을 자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웁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보면 저가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했을 때는 신앙이 마음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확신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 많이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이 하나님 사업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방언은 통역을 통해서 그 내용을 하나님이 알아듣게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방언은 하나님께서 통역하는 은사를 주시면 방언의 내용을 통역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번 신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방언 통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 학생들이 다 모여서 강단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고 저 앞자리에서 어떤 여자 한사람이 와서 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방언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방언기도가 딱 그치더니만 방언 통역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저 앞자리에서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 여자는 방언을 말한다고 하나 그건 방언이 아니고 마귀의 방언이다! 지금 그 입을 열어서 나를 욕을 하고 있으니까 네가 가서 저 여자를 중지시키고 그 귀신을 쫓아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를 알지도 못합니다. 불을 끄고 캄캄한 그런 우리 강단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기에 저가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니까 그 여자가 한 오십대 된 여자가 앉아서 입으로 방언을 말하고 있는데 아주 흉악하고 듣기 싫은 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쳐라" 그러니까 딱 그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평생에 처음으로 그런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귀신을 쫓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귀신아 나가라! 그러니까 안나간다 그래요 아! 기가 막혀 나가라면 나갈 줄 알았는데 안나간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제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방언 통역을 통해서 그렇게 분명히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제가 체험을 했었습니다.

이러므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저는 많은 방언 통역을 했습니다. 저 개인의 방언 통역도 하고 다른 사람이 방언을 말할 때 그 방언의 내역을 알아서 통역하기도 하고 그 방언 통역이 또 예언처럼 되어서 많은 유익을 갖다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통역하기를 구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역을 주시면 통역을 하면 방언으로 예배하고 찬미하고 감사하고 격려하는 말을 이웃에서 듣고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이냐? 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영으로 찬미한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으로 찬미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철야기도 할 때 여러분 오래오래 우리말로 다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얼마 안가면 기도할 재료가 끊어집니다. 그러면 기도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대로 졸고 있으면 안되쟎아요? 이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한국말로 기도하다가 그 다음 지치면 또 방언으로 기도하고 한국말로 찬송하다가 또 지치면 방언으로 찬송하고 이러기 때문에 24시간이 아니라 1주일도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입술과 혀를 주님께 맡겨 놓으면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쫓아 방언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이것은 한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열 시간도 좋고 계속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날 오래 기도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길 원하는 사람은 방언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는 말로 기도하면 30분에서 1시간쯤 기도하고 나면 기도할 재료가 다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 모르고 두리번 두리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 방언으로 찬미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어서 아는 말로 하는 기도와 사이사이에 넣으면 지치지 않고 피곤치 않게 오래오래 방언으로 기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우리 위해서 기도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우리 교회 자매님 간증을 들었는데 그가 부흥회 낮 공부 시간에 가서 앉았는데 강사님의 설교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속에서 불안하고 고통이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알지 못합니다. 이래서 엎드려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면서 그는 간절히 간절히 방언으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속이 시원해지거든.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있지 않다가 그 남편이 얼굴이 백지장같이 되어서 들어오더랍니다. 남편은 버스 운전사인데 아니 여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일찍 들어오냐고 하니까 말도 말어 오늘 버스를 운전해가다가 경사진 곳을 갔는데 엔진이 꺼졌어. 그래서 손님들 다 내리게 하고 돌을 받쳐 놓고 엔진 뚜껑을 열어 보고 난 다음에 안에 들어와서 엔진을 걸려고 하는데 돌이 튕겨져 나오고 차가 그대로 뒤로 물러가서 벼랑으로 그냥 가는데 뭐 순식간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차가 뒷바퀴도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벼랑에 앞바퀴만 벼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구사일생으로 차에서 기어나와서 생명을 구출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안 붙드셨으면 뒤로 물러가는 차가 벼랑에 그대로 떨어지지 앞바퀴가 벼랑에 걸릴 턱이 없다!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여보! 내가 오늘 부흥회 나가서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방언으로 그냥 한없이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성령께서 미리 우리를 통해서 탄식하면서 기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어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언하는 유익은 대단히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주실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때가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방언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방언은 안식과 상쾌함을 주십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절에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곤비합니까? 사람들이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삽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참지 못합니다. 분개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쉽게 살인하고 상처를 줍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이렇게 조급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며 곤비합니까? 그것은 마음속에 병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마음에 여유가 없고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걸려서 이 마음속에 병이 꽉 들어찼습니다. 이 마음의 병을 누가 고칩니까? 여러분 오늘 성경은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마음에 안식과 상쾌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언은 마치 빗자루와 같아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여러 가지 상처 입은 마음들을 쓸어내는 것입니다. 전부 쓸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 집에 가면 다락이 있지 않습니까? 다락에 사람들은 여러가지 것을 많이 넣어둡니다. 다락에 생선 같은 것을 넣어 놓으면 방안에 생선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는지 모릅니다. 다락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왜 이 집에 생선 비린내가 이렇게 나냐? 그럽니다. 그러나 다락문을 열어보면 다락에 생선 마른 생선들을 가득 넣었습니다. 그럼 전부 다 소지해서 내어버리면 비린내가 없어집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다락이 있습니다. 우리 현재의 의식 밑에 잠재의식이라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현재의식이 깨닫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10의 1이라면 잠재의식은 10분의 9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슬픔과 고통 괴로움, 염려, 근심, 슬픔 이런 것을 우리는 다 이 속에 밀어 넣습니다. 마음에 다락 속에 밀어 넣기 때문에 마음의 다락 속에 온갖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이 심리적인 병이 되어서 나옵니다. 그래서 조급하고 슬프고 괴롭고 행복하지 않고 화내고 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이 다락을 누가 청소합니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께서 다락 속에 들어가서 이것을 청소해 내는 것입니다. 쓸어내 버립니다. 이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치료함을 받습니다. 마음속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쾌해지고 마음에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하여 다른 방언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항상 치료함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을까요? 이미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 또 재충만을 받은 사람도 많지만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미 내 속에 내주하고 계신 것을 알아야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는다니까 없는 성령을 하늘에서 불러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성령은 여러분 속에 들어가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미 성령이 여러분 속에 와서 계시지만 그러나 성령이 전세방으로 들어와 있지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집도 주인이 집을 차지한 것과 그 집에 전세로 들어간 것과 틀리지요? 성령이 중생했을 때는 마치 전세방에 들어온 사람처럼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와 계시지만 여러분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마음속에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교통을 막는 어떤 죄라도 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는데 이 성령이 내 속에 전세방으로 들어와 계시지 않고 완전히 주인으로 나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막는 여러가지 마음속의 죄악을 모두 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기억나는 모든 죄는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모두 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을 때 성령님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본주의적인 자아를 깨뜨려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내 주장으로 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나요? 그러므로 나를 깨뜨리고 나를 죽이고 나를 하나님 앞에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처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나니" 이러므로 나의 생애 속에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든 삶을 다 회개하고 자복하고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주 성령께만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내 자신을 완전히 내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간절히 사모함으로 간구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을 받으려면 목말라야 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급히 찾는 것처럼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성령 달라고 부르짖어서 갈급하게 갈급하게 부르짖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 어떤 구역장님은 성령 받고 싶어서 매일 같이 성령 달라고 직장에서나 집에 돌아오거나 성령 주시옵소서 간절히 구했는데 하루 아침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 밥상을 갖다놓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만 성령이 임하여 가지고서 밥도 다 내어 치워 버리고 그냥 방언을 하고 성령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디엘 무디 목사 같은 사람은 너무너무 성령이 충만하고 싶어서 일어서나 앉으나 성령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그 복잡한 뉴욕거리를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양 사방에 걸어가고 자동차 소리가 요란스러운데 갑자기 길거리에 걸어가는데 성령이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막 기도가 터져 나오고 하니까 그는 빨리 뛰어가서 자기 친구 집을 문을 두드려서 그 친구집 방을 빌려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데 성령이 너무 쏟아지므로 감당하지 못해서 하나님이여! 손을 그쳐 주시옵소서 내가 못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언제나 임하시는 것입니다. 주무시다가 성령 받는 사람이 있어요. 밥 잡수시다가, 길거리에 걸어가다가, 부엌에서 밥하다가, 우리가 갈급한 심정만 가지면 언제고 성령께서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반드시 충만함 주실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39절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시지만 그러나 간절히 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한번 충만함 받은 사람은 또 거듭 재충만, 재충만, 재충만을 받아서 성령충만함 가운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우리의 신앙이 용솟음치고 우리의 신앙이 언제나 불붙고 뜨거운 가운데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은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전에는 잊혀진 사건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성령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온 우주적인 세계적인 전 역사를 통하여 유일하신 구원의 주가 되는 사건으로 변화시키고 확정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사건은 성령이 손에 들려야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고난 당하신 의미를 우리에게 밝히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교회를 세우시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마침내 오늘 한국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오늘 여의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세우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다실 강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성령께서는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충만히 채우시고 우리를 깨우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위로하게 해주시고 우리를 꾸짖어 주시고 우리를 성결케 해주시고 우리를 자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우 편에 계시지만 성령은 오순절날 이후로 오늘 교회에 와서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 날에 우리는 또 다시 제자들이 받은 성령충만과 같이 이미 우리 속에 와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히 충만히 채우셔서 우리가 다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서 성령에 잡혀서 살아가고 성령의 능력으로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지 이미 2000년이 되옵니다. 2000년 전 오순절날 이 땅에 오신 성령께서는 지금까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길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케 하는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시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우리 성도들을 채워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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