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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26장 26-28절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10) 감사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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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 26장 26~28절, 요 11장 40~42절

설교제목 :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10) 감사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한 크리스찬 작가요 심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권두언으로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스태프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 캐롤은 또한 홀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 효율적인 치료책을 못찾고 있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집안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 언제 시간을 내어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염려가 됩니다. 저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제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증세가 어떻게 내 관절을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 잘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나의 아내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입니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 저는 ‘땡큐 테라피’(Thank-you therapy)라고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단 베이커(Don Baker)라는 분이 자신의 책 ‘땡큐 테라피’를 소개하며 한 말입니다.

그런데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땡큐 테라피’를 자신의 평생에 적용하며 사신 분이셨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는 예수님의 또 하나의 거룩한 습관인 감사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나타난 일상의 자취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언제 어떻게 감사하며 우리의 일생을 살 것인가를 학습하고자 합니다.

첫째 질문은, ‘언제 감사할 것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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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을 취하기 전 감사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식사 전에 반드시 기도하십니까? 꼭 매끼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본문인 최후 만찬의 장에서 27절에 보면 예수께서 또 잔을 가지사--무엇을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감사기도를 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앞서 그분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 주님이시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이 땅에 생존의 은혜를 누림을 인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인류들이 생존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적은 은혜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처럼 문명사의 기적을 이룬 21세기에도 유엔식량농업기고(FAO, 2003년 통계)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세계인구 가운데 8억 4천 2백만이 기아인구라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의 14%, 그러니까 7~8명 중 한 사람은 하루 한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매년 약 2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존 현실이라면 우리가 한 끼의 식량을 앞에 놓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는 얼마나 절실한 일상의 기도이겠습니까? 가정이든 직장이든 식사 전에 기도하심으로 나의 생존의 원천이 그분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나처럼 먹지 못하는 이웃들에게도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축복을 인지할 때 감사하십시오.

우리 말 성경번역에서 예수께서 식사 전에 ‘감사하셨다’를 많은 경우 ‘축사하시고’라고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신약성경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식량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하셨고, 그래서 그분의 식전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나누어지기를 소원하신 ‘축복의 기도’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기도는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병이어 기적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4:19의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리포트를 다시 읽어보십시오. “무리를 명하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감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사실 이 상황에서의 감사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지 않았습니까? 무리들의 필요는 엄청났는데(마태복음 14:21에는 먹는 사람이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그러니까 실제로 2만 명 가까운 군중들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아이가 가져온 점심은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의 정체는 차라리 ‘감사의 기적’이라고 할만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한 자루의 촛불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축복임을 인지할 때 예수님처럼 즉각적으로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또 다른 축복과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3. 삶의 위기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 감사하셨습니까? 그는 식사 전에 그리고 축복을 인지하셨을 때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언제 감사하셨을까요? 그는 위기 앞에서 감사하셨습니다. 오늘의 두 개의 본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두 개의 본문이 다 삶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본문인 마태복음 26장은 소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의 예수님의 감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당신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떡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부서져야 할 그의 몸이셨습니다. 그것이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잔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흘리셔야 할 그의 피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태복음 26:28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이런 당신 자신의 인생의 최대 최후의 위기인 죽음의 위기 앞에서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둘째 본문인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의 사랑스런 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친구가 병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친구의 죽음이 친구의 부활의 현장이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슬픈 것이고 아픈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이내 감사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1을 읽어 보십시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죽음의 마당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실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본문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과 연결됩니다. 어떻게 그분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셨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질문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축복을 인지하는 소위 축복된 순간만이 아닌 어떤 삶의 위기,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 질문(결론적 질문)은,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그 대답은 난해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 성경적 대답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슬프고 아픈 상황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 다스리고 있음을 믿으시면 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을 믿으시면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확신위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고 믿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것을 믿으셨기에 십자가의 피의 잔도 감사로 받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친구의 죽음조차도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르치는 도구가 될 것을 믿으셨기에 감사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의 상황 배후에 존재하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오늘은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되지만 내일에 보여지고 이루어질 그 선하신 뜻을 믿을 수만 있다면 바울 사도가 가르친 그대로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의 말씀을 같이 보실까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 설교 서두에 언급한 소위 ‘땡큐 테라피’는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처방인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고난을 승리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 사는 기적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종려주일의 메시지를 감사 테라피(치유법)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제이 데니스(Jay Dennis)라는 한 설교자가 소개하는 ‘감사 테라피’의 위력을 증언해 드림으로 이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들어보십시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억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목장 모임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나누는 기도의 마당일 뿐 아니라, 감사를 나누는 목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도를 나눌 수 있는 목장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도를 올려드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기도에 선하신 응답이 이루어 질 것을 믿기에 감사하는 목장-이런 목장이야말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테이블처럼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의 마당이 될 것을 믿습니다. 감사하십시다. 감사를 습관화 하십시다. 그러면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도 호산나를 외치던 예루살렘의 아이들처럼 큰소리로 외쳐보십시다. “감사합니다. 주님/Thank You-Lord"라고.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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