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마16장18-19, 엡5장25-27.
설교제목 :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17)교회 사랑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평소에 교회를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교회에 대하여 차라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에 의해 독일이 미쳐 돌아갈 무렵, 소위 독일 ‘고백 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와 신앙고백 그리고 그들의 외로운 항거를 지켜보던 그는 교회에 대한 평소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아터 코크래인(Arthur Cochrane)이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히틀러 치하의 교회의 고백”(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이라는 책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잡지에 기고했던 성명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나치 혁명이 한참일 때 자유에의 헌신을 가르치던 대학들이 히틀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기대하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대학은 입을 봉하고 말았다. 이제 나는 자유를 지지하는 수많은 논설을 써온 신문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치 혁명 단 몇 주 만에 언론들조차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히틀러의 계획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전에 나는 교회에 대하여 어떤 형태라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참된 지성과 진정한 도덕적 자유를 위하여 나치와 맞서 분연히 항거하며 외롭게 싸우고 있는 저 교회에 대하여 나는 엄청난 애정과 감탄을 느끼고 있다. 한때 내가 무시하던 교회에 대하여 이제 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바이다.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다.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정직하게 말하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던 때는 없었습니다. 아마 그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교회 또한 세상에서 그 존재가 소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어두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 빛을 통하여 세상의 소망일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소망이어야 하고 세상의 빛이어야 할 교회-교회가 때로는 주님의 기대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지만 교회의 존재가 지속되어 온 유일한 원인은 교회의 주인 때문인 것을 아십니까?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마태16:18에서 예수께서는 친히 교회를 가르쳐 ‘나의 교회’(My church)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그 교회를 사랑하다고 고백하기 훨씬 전에 그는 이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십니다. 아니 교회사랑은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며 존재의 이유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은 우리 지구촌 교회가 1994년 새해 첫 주 교회 탄생 예배를 드리고 나서 몇 달이 지난 후인 1994년 5월 마지막 주일에 교회가 탄생한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교회 창립 선언을 한 것을 기념하는 교회 창립 13년째 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주일 오늘 오후에는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는 임직식을 갖고 금주 수요일 부터는 우리 교회의 목회 비전이요 철학인 셀 컨퍼런스 축제를 갖게 됩니다. 이에 앞서 우리들의 교회 사랑이 어디에 근거한 것이며 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교회사랑-무엇 때문이어야 합니까?
1.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그분의 미숀을 확인할 때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눅19:10의 선언처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개인 개인들을 구원하시는데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심이 또한 그의 미숀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의 본문인 마태16:18에서 한줌 밖에 안 되는 제자들 앞에서 그리고 아직도 미성숙하기만 했던 제자 베드로를 향해 교회 창립을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베드로는 한 개인에 불과했지만 그가 주님 앞에 엎디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고 고백하자 그의 고백에서 용기를 얻으신 주님은 이 한 사람의 헌신에서 교회의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구원의 복음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뻐할 일이지만 교회의 존재는 의미 없는 다수가 아닌 진정으로 헌신된 소수에 의존해 왔다는 것이 교회사의 레슨입니다. 어느 개척 교회 목사님의 고백을 접한 일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회 개척을 하면서 매일 매일 자기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축호전도를 하고 교회 개척을 알리고 전도 편지를 돌리는 등 최선을 다했음에도 일년이 지나간 시점에서 교인라곤 주일 학교 어린이 몇 명뿐 아직 장년은 한명도 모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실망이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리며 이 목사님은 “주님, 이 장소가 잘못된 것입니까? 교회 문을 닫아야 합니까? 아니면 한 번 더 장소를 옮겨야 합니까? 일년이 지났는데 교인은 아직 한명도 없습니다.”하고 울었답니다. 아침에 사모님이 편지 한통을 건네주어 뜯어보았더니 초등학교 2학년 주일 학교학생이 쓴 편지였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찬 바람 부는 날에도 전도지를 돌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기는 안 드셨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힘을 내셔요” 그날 아침 목사님은 그 어린 학생을 훌륭한 자기 교회 교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 어린 영혼에게서 자기 교회의 미래를 새롭게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모든 주의 교회들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지구촌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갈릴리의 젊은 어부들과 갈릴리 해변 작은 마을 가버나움에서 그렇게 교회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할 이유-주께서 교회를 세우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2.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시고자 당신의 생명을 버려주셨다고 증거 합니다. 오늘의 또 하나의 본문인 엡5:25의 바울 사도의 증언을 읽어 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여기 ‘자신을 주심’이라는 말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희생의 결과로 오늘의 우리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행20:28에서 교회를 가르쳐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산 것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습니다. 그러면 자기 생명을 주고 산 교회를 주께서 어떻게 사랑 안하실수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질문을 좁혀 보겠습니다. 정말 지구촌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 누구일까요? 그동안 교회를 위하여 진지한 희생을 하신 분들,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헌신하고 희생을 하신 분들입니다. 교회는 이런 분들에 의해 지켜지고 존속되고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해 보십시오. 제가 처음 목회를 하던 시골 교회 한 과부 아주머니 집사님이 종종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분은 본래 마을에서 인색하기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마을 어떤 일이도 돈을 안내놓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별명이 ‘노랭이 과부 아줌마’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어느 주일 예배 헌금시간에 펑펑 소리 내어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우시는 타이밍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예배 시간에 눈물 흘리는 시간은 기도 시간 아니면 설교 시간인데 이 분은 헌금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일에도 돈 주머니를 열지 않던 이 분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위해 처음 돈 지갑을 열면서 스스로 감격하여 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분은 나중 그 교회에서 기둥 같은 중요한 직분 자가 되셨습니다. 헌신하는 자가 공동체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교회-그 교회가 또한 저와 여러분의 사랑하는 영혼의 신부이기를 기도하십시다.
3.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도 주께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고 성도들을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살아계심을 어떻게 인지하고 경험합니까? 우리의 예배, 우리의 교제, 우리의 기도 응답의 마당이야 말로 그분을 만나는 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거룩한 체험의 공동체인 주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최고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다시 마태16:19을 보십시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카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열쇠를 교황 베드로의 ‘수위권’(primacy)이라고 해석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는 개인 지도자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로 대표되어지고 고백되어지는 교회 공동체의 믿음의 실천으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저는 마태18:18-19을 통해 그 의미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18:18말씀에 보면 마태16:19과 정확하게 같은 내용이 기술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런데 그 다음 마태18:19에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두 사람이 땅에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교회 공동체내에서의 서로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매고 푸는 위대한 경험을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 교회로 모일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내어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거기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18:20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약속하신 그대로입니다.미국에 존경받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출석하던 워싱톤 교회 사무실에 어느 날 전화가 울렸습니다. “이번 주일 대통령께서 교회에 출석하실 것으로 기대하십니까?”라는 전화였다고 합니다. 사무원이 유명한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출석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확실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출석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분-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교회는 교회 되어지고 우리들 그의 자녀들은 모든 좌절을 디디고 일어나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미국에 우리처럼 셀 교회(가정 교회)를 강조하는 어떤 교회를 방문하는 중에 이런 감동적인 간증을 접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여 성도가 이혼을 결심하고 도장 찍기 전 마지막으로 허탈한 심정이 되어 새벽 예배를 나갔다고 합니다. 다른 성도들 만나는 것이 부담되어 새벽 예배가 끝나는 시각을 선택하여 아침 조금 늦게 교회에 나갔는데 한 분이 교회당 앞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두런 두런 들리는데 들어보니 자기를 위한 기도였다고 합니다. 같은 목장에 속한 목자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벌써 여러 날 금식하고 이 부부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이 부부를 이혼하도록 버려두시겠습니까?” 그 순간 이 분의 가슴을 때린 생각이 이랬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누구이기에 이 분이 우리 부부를 위해 금식하기 까지 하고 기도한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쉽게 이혼을 결심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너무나 쉽게 이혼을 결심한 자신이 뉘우쳐 지면서 그 분은 통곡의 기도 끝에 결심하고 남편과 화해하여 이제는 잘 살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영광이요, 목장 교회의 존재 이유인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이런 공동체를 어떻게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사랑하는 지구촌 성도 여러분, 이런 교회를 우리도 사랑하고 다시 한번 교회 사역에 헌신하며 우리 교회가 진정 민족을 치유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도록 계속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사도 바울은 엡5:27에서 그가 사랑하는 교회가 주님의 눈부신 신부가 되어 거룩한 공동체로 주 앞에 서게 될 것을 소망한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바로 그 소망이 또한 창립 1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지구촌 교회 공동체의 고백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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