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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가복음

마가복음 2장 1-12절 예수님의 VIP(5) 한 중풍병자 - 이동원 목사

by 재영구리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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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막 2장 1-12절
설교제목 : 예수님의 VIP(5)한 중풍병자
설교자 : 이동원 목사님

작년(2005년)5월 중국 고비사막에서 아시아 최초의 사막 마라톤 대회가 열린 일이 있었습니다. 약 253km 600리 길의 사막을 6박 7일 동안 22개국에서 온 90여명의 선수가 사막의 폭풍과 열사의 태양을 견디며 목숨을 걸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를 취재하던 기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두 명의 한국 선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시각 장애인 이용술씨와 서울 강북구 구청 직원 김경수씨였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253km 거의 내내를 함께 허리끈으로 묶고 달렸다고 합니다.(사진 참고) 이 경기를 취재한 조선일보 이 석우 기자는 “우정은 자연 속에서 이렇게 위대해 질수가 있는가”라는 기사를 남겼습니다.아마도 우정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글을 남긴 분은 고 함석헌 선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분의 유명한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 맡기며/맘 놓고 갈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탓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 놓고 떠나려 할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히 눈을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도 한 중풍병자를 위하여 여러 사람과 네 친구가 감행한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풍병은 당시만 해도 거의 불치병이었고, 일단 이 병에 걸리면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스스로도, 그리고 그의 가족도 이미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포기해 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의 VIP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친구들의 우정으로 그는 어느 날 뜻밖의 미래를 선물로 받습니다. 이웃 사랑 축제를 앞둔 오늘 우리는 이 중풍병자로 하여금 이런 선물을 받게 한 네 친구의 결단과 그가 받은 선물의 레슨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네 친구의 결단의 레슨을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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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네 친구의 결단은 믿음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고침 받을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있는 수단과 할수 있는 방법을 다하여 친구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 데리고 왔고 예수님을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결정적으로 고치신 이유를 성경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저희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저희의 무엇을 보셨다고요? 예, 맞습니다. 그들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웃 사랑 축제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VIP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믿음을 가질 것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내 가족, 내 친구 내 VIP가 아직은 예수님을 모르고 있지만, 아직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도 복음을 들으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믿음의 통로로 쓰셔서 우리의 VIP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대부분 한 영혼의 구원의 배후에는 그의 구원을 믿고 기도한 누군가의 믿음이 존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한 여 집사님이 자기 남편의 구원을 위해 일년을 작정하고 새벽마다 기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가는데도 남편은 좀처럼 변화의 징조를 보이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한번만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교회 좀 나와 달라고 호소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기도회에 가고자 막 집안을 나가려 하는데 현관의 남편 구두가 눈에 뜨이더랍니다. 그 순간 갑자기 한 영감이 스치더랍니다. 그날 새벽 그녀는 남편 구두를 싸가지고 교회에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당 제단 앞에 나아가 엎드려 이 부인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 남편의 구두부터 당신 존전에 나왔사오니 이제 이 구두 주인이 나오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슬며시 자기 한 짓이 스스로도 웃음이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그 순간 빙그레 웃으시는 주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주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생기더랍니다. 집에 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당신, 단단히 미쳤군”하더니 그 다음 주일부터 남편이 교회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그때 어떻게 날 따라 나올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소원하는 당신의 바램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믿음이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아니 주께서 그녀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본문에서 이 네 친구들의 결단의 창조성 혹은 모험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내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양이라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창조적이고 모험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붕을 뜯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팔레스틴의 지붕을 오늘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완벽한 현대 건축물의 지붕으로 연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평행으로 놓여진 목재들 위에 막대기를 엇갈려 놓고 그 위에 갈대, 나뭇가지 그리고 엉컹퀴등을 놓고 약간의 흙을 덮은 정도의 지붕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뜯는 것은 여전히 모험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붕을 뜯는 동안 흙 부스러기가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떨어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놀라며 이 웬 무식한 작태냐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를 살리겠다는 집념하나로 그들은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번 이웃 사랑 축제를 통해 여러분과 저의 사랑하는 이웃들이 참으로 주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면 모험을 시작하십시오. 그들이 복음을 들으러 축제의 장에 나아오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십시오.여기서 우리가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네 친구들의 결단의 또 하나의 특성은 희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냈습니다. 지붕을 뜯는 과정에서의 남들의 비난과 항의를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친구가 고침 받은 후 이들은 상당한 지붕 값도 보상의 차원에서 지불했을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위대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이웃 사랑 축제를 통해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이 구원받기를 진실로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희생의 값 지불을 각오하십시오. 여러분이 전도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식사를 함께 하십시오. 약간의 돈도 쓰십시오. 그 정도의 희생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명망있는 지식인이요 스포츠 스타였던 C.T. 스터드가 보장된 출세의 길을 버리고 잃어버린 영혼들의 전도를 위해 선교사의 길을 떠나갈 때 그를 아끼는 이들은 과연 그의 그런 희생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순하고 분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은 없습니다.” 이 가을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희생의 값을 지불할 결심이신가요?II. 그가 받은 선물의 레슨을 생각해 보십시오.자, 그러면 친구들의 희생으로 이 중풍병자가 얻은 선물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그 선물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얻는 선물이었고, 겉 사람과 속사람을 함께 행복하게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지상에서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선물은 현재 지향적이지만,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선물들이고, 겉 사람을 치장하는 선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내면까지 배려한 선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얻은 지상의 어떤 선물들과 비교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선물이었습니다.사실 본문의 네 친구들이 예수님을 통해 자기 친구 중풍병자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한 선물은 단지 중풍 병의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아온 그에게 예수께서 첫째로 선언하신 말씀은 중풍병의 치유 선언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5절을 보십시오. 그의 제일성은 무엇이었습니까? “---작은 자(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였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중풍병의 치유에 관심이 없으셨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11절에서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육체의 치유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육체라는 겉 사람의 치유보다 내면의 치유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임을 예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속사람의 치유 없이 인간은 겉 사람의 치창 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그분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 앞에 놀라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7절입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들의 반응은 결코 그릇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은 동일한 죄인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죄를 사할 권세를 갖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무지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자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소망이시고 예수가 구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열려오고 현재는 새로워집니다. 속사람이 치유되고 겉사람도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완벽한 선물, 최고의 선물, 유일한 선물이십니다.

 

CCC 김준곤 목사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백문 일답이 있습니다. 중세기 수도에 정진한 노 수도사가 진리를 깨우치고 세상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와 수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오직 하나-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염려에서 해방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사업에 성공하는 비밀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학업을 잘 성취하는 지름길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유명한 ‘백문 일답’입니다.삼 주일전 우리 교회에 오셔서 컴패숀 사역에 대해 말씀해 주신 컴패숀 대표인 서정인 목사님은 김준곤 목사님의 둘째 사위이십니다. 그가 결혼을 위해 장인될 김 준곤 목사님을 뵈옵게 되었을 때 잔뜩 긴장을 하고 대면을 했는데 김 목사님의 사위 후보에 대한 질문은 딱 하나였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서 목사님이 “죽도록 사랑합니다.”고 대답하자 김 목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됐네”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인생의 해답이시라면 그분 외에 인생에게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전할 유일한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전할 유일한 복음의 소식-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여러분의 친구들을 데려오실 준비가 되셨습니까?이 가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소중한 선물을 나누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세계 제1차 대전중에 남겨진 두 친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자라나 함께 징집을 받았고 함께 훈련받아 같은 부대에 배속되어 같은 전쟁터에서 싸웠습니다. 한 친구가 적과 싸우다가 고립되어 자기 참호로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온 사방은 적의 위협적인 포화아래 있어서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를 구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자살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가 참호에서 빠져 나오려 하자 분대장은 계속 그를 저지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상관이 한 눈을 파는 사이 그는 쏜살같이 친구를 행해 달려가 피를 흘리는 친구를 끌어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한 친구는 아군의 진지에 도달했을때 이미 숨을 넘긴 후 였고 자신마져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마지막 숨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화가난 분대장은 그를 노려보며 “그봐 자넨 쓸데 없는 일을 한거야”하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분대장님, 그러나 제가 그의 곁으로 달려 갔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구요, 친구야 난 네가 올 줄 알았어”앞으로 한 주간 요한 15:13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리고 다음 주일 우리의 친구를 데리고 그분 앞으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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