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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하나님께 꺾여진 사람 - 조용기 목사 설교

by 재영구리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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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하나님께 꺾여진 사람
설교본문 :  고후 12: 7-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꺽여진 사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말은 그 부리는 사람대로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해서는 조련사가 반드시 그 기를 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가 꺽이지 않은 말은 수레를 끈다든지 사람을 태운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맹렬히 뛰고 날뛰며 반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도 하나님께 승복하고 복종하며 쓰임 받기 위해서는 아집과 고집, 오만과 반항심이 꺽여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야생마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사용하실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용하시기 전에 반듯이 꺽으시는 것입니다. 꺽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들을 어떻게 꺽었는가를 생각해 보고 우리 삶을 비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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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종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75세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꿈을 주셔서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한 약속과 그만한 꿈울 주셨으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은 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맹렬하게 아브라함을 꺽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12장 1절로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라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큰 축복을 받아서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그가 왔으니 '에라 복 받아라' 이렇게 해서 복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반드시 꺽어놓고 난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약속과 축복이 그의 생활 속에 직접 이루기 전에 하나님은 꺽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들어가보니 그 곳에는 젖과 꿀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기근입니다. 비가 오지 않고 태양이 내려 쪼이고 모든 산천초목은 다 불타 버리고 우물물은 다 말라 버리고 짐승에게 먹일 풀도 마실 물도 없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 수없습니다. 자기가 하란을 떠날 때 가져온 양식은 얼마 안있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자기 아내와 롯을 데리고 애굽으로 살기 위해서 내려갔습니다. 이런 시련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그렇게 큰 축복의 언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땅 가나안에 왔는데 가나안이 이와 같이 기근에 처해서 그가 절망에 처하고 좌절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가나안에 들어온 아브라함을 꺽었습니다. 그는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시고 복 준다고 하시고 난 다음에 복은 커녕 이렇게 화를 주시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그는 어리벙벙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내려가자마자 설상가상으로 업친데 덮친 격으로 바로가 그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만 사라를 취하여서 아내로 삼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한다 하셨는데, 복은 커녕 이 지경에 애굽에 내려와서 아내까지 빼앗기는 절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당한 좌절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꺾어지고 깨어졌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자기의 앞날을 헤쳐갈 수 없습니다. 오직 그가 할 것은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께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와 같이 깨어지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그 아내를 다시 복구시켜 주셨고 그는 그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바로에게서 많은 종과 말과 짐승과 은금을 얻어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데로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성경에 보면 창세기 24장 35절로 36절에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증거하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이와 같이 창성하게 된 아브라함의 모습을 그의 종이 간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깨어져서 하나님께 승복했나 하면 창세기 22장 1절로 2절을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때 그는 두말하지 아니하고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가서 그는 그를 묶고 목을 손으로 잡고 칼로서 목을 따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아 그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외치지 아니했었으면 그 아들의 목을 찢고 피를 흘려서 번제로 드렸을 것입니다. 아브함은 이제는 전적으로 꺽여져서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이 된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은 단숨에 꺽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복 주고 복 주며 은혜를 주고 은혜를 줄 후사로 삼았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데리고 모리아 산에 와서 제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이 너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고 말을 할 때에 이삭은 불순종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삭의 나이가 17,8살쯤 되었는데, 아브라함은 벌써 나이가 100살이 훨씬 넘었습니다. 아버지, 노망하셨습니까? 아니, 나를 잡아서 제물을 드리다니요?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리고 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아 버립니다. 아버지는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이삭은 청년이요, 아버지는 아주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랬으면 아버지의 손을 떨쳐버리고 도망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고 말씀하실 때 이삭은 그 마음속에 격렬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도망을 칠 것이냐? 순종할 것이냐?

아버지를 제거할 것이냐? 아버지 손에 자기를 맡길 것이냐? 그는 맹렬한 정신적인 투쟁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서 꺽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 놓았습니다. 단숨에 이삭은 꺾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일생동안 가장 시련이 없이 크게 복을 주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꺽이는데 기나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는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외아저씨 집에 가서 속고 속이고 이와 같이 교활하고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을 쓰기 위해서는 그가 나이가 근 40이 다 되었을 때 외아저씨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다음에 얍복 나룻터에서 하나님께서는 꺽으셨습니다. 뒤에는 외아저씨가 몰래 짐승을 데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고 해서 뒤에 뛰어와서 나중에 잡았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얍복 나룻터에 가니까 앞에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절치부심하여 준비하고 있다가 그가 죽이러 온다고 했습니다. 앞에는 형의 400인의 군대가 오고 뒤에는 외아저씨가 너는 돌아오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그는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는 올 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양떼와 모든 짐승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처자들도 다 건너게 하고 자기만 얍복강 이 건너편에 앉아서 다가올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만일 형이 와서 자기를 죽이려면 짐승을 빼앗고 처자들을 칼로 죽이면 자기는 도망을 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밤에 천사가 와서 그하고 씨름을 했습니다. 너는 건너가서 처자와 함께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힘을 합치라고 했는데 그는 건너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칩니다. 나는 내 목숨이라도 살겠다. 천사는 건너가라 자기는 건너가지 않겠다고 하고. 그러고 실랑이를 하고 씨름을 해서 아침까지 하나 야곱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손을 들어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절름발이가 되어 버립니다. 절음발이가 되자 천사를 부여잡고 나는 이제 도망을 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 내게 복 주지 아니하면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그래서 천사가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한 것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시고 그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아침 해가 뜰 때 그는 완전히 깨어진 사람이 되어 쩔뚝쩔뚝 절름발이가 되어서 그는 얍복 나룻터를 건넜습니다. 완전히 깨어진 사람, 꺽여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모든 가족들 최선두에 서서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400인의 군대를 거느린 형을 향해서 걸어갔었습니다. 하나님은 꺽인 사람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를 죽이는 대신에 오히려 말에서 내려서 목을 어긋 대고 눈물을 흘리고 사랑으로써 그를 영접하게 해 주시고 그 다음 하나님 야곱에게 복을 주셔서 그를 창대케 하고 왕성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사용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그 놀라운 축복과 언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축복과 언약이 실제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맹렬하게 그들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꺽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린 신약에도 보면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수님의 12제자를 택했지만 그 12제자가 맹렬하게 꺽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부모 처자를 다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3년여 동안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 운명을 맡겼는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만 것입니다. 그들의 좌절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고향 산천에 돌아갈 수도 없고 그 곳에 남아 있을 수도 없고 그들은 절망적인 밤을 맞이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아주 격렬하게 꺽이는 그런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그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좌절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저주하고 맹세하고 부인했습니다. 그런 그가 마음에 좌절과 꺽임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오순절 이후에 성령을 받고 제자들이 나가서 이제 나가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려고 할 때도 하나님은 꺽었습니다.

베드로는 헤롯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젠 내일이면 끌려가서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양손과 양발을 쇠사슬에 묶이고 또 양팔을 군인들이 팔짱을 끼고 밤에 잠을 잡니다. 네사람씩 네 부대에 맡겨서 무려 16명의 군인이 베드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그는 끌려나가서 이제 사형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앞두고 그날 밤에 베드로는 완전히 좌절하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온전히 주님께 내어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그런데 밤중에 천사가 와서 그 옆구리를 발로써 차기 때문에 쇠고랑이 자연적으로 풀려 떨어졌습니다. 천사가 하는 말이 빨리 일어나서 신발 끈을 묶고 옷을 입으라 옷을 입으니까 따라 나와라 천사를 따라 나오는데 첫째 파수군 있는데 오니까 쇠문이 저절로 열리고 파수군은 눈 뜬 채 가만히 서 있어도 못 봅니다. 두번째 또 철문에 나오니까 거기에도 철문이 스스로 열리고 파순군이 눈을 뜬 체 서 있어도 베드로가 지나가는데도 못 보고 그럽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끌어내어서 길거리를 데리고 나오니까 비로소 그가 꿈이나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체험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오른팔 같은 수제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주어서만이 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꺽이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여러분 사도 바울 선생도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사용한 종입니까? 그러나 그는 기세 당당하여 예수 교인들을 잡아죽이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

다가 다메섹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었습니다. 하늘에서 태양같이 밝은 빛이 비취고 그리고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지고 자기도 말에서 떨어져서 땅에서 엎드러졌는데 하늘에서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뉘시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일어났을 때 그는 장님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걸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빛을 찾아 그는 허덕였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이끌어서 직가라는 곳에 들어가서 어느 집에 들어가 사흘동안 그는 금식하면서 부르었습니다. 거기에서 그 스스로 가는 인생길이 꺽였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서 지독하게 유대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기독교 박멸 운동의 선봉장이었는데 그는 꺽였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이 다 밝아져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

져서 치료받고 그는 물로 세례 받고 성령세례 받아서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질이 너무 강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를 계속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무시무시한 가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마귀를 하나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마귀가 바울을 쳤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동원해서 마귀가 바울을 치고 감옥에 들어가게 하고 헐벗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고통을 당하게 했었습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마귀가 내 곁을 떠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가 약할 때 내가 너의 안에서 강하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래서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맹렬하게 꺽었습니다. 바울만큼 감옥에 많이 들어가고 많이 얻어맞고 많이 환난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이 사용한 주의 종이 없습니다. 한 머리로 하나님은 꺽으시고 또 꺽인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꺽고 사용하시고 꺽고 사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말하기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용하기를 원하실 때 주님은 반드시 꺽으신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저는 저의 스스로의 40년의 목회 생활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맹렬하게 꺽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17살 때 폐병에 걸려서 쓰러졌을 때 그것은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에 큰 좌절이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17살이면 한참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슴이 벅차올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모이면 모두 꿈에 대한 얘기를 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폐병 걸려서 쓰러져 좌절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모든 희망을 빼앗겼습니다. 내일도 없습니다. 이제는 희망도 없습니다. 이제는 죽음 밖에는 앞에 닥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친구들은 책봇다리를 들고 학교에 가는데 이제 학교도 가지 못하고 드러누워서 죽음과 사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 있을 때 마음의 좌절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느낀 것은 제가 폐병에서 겨우 회복되었을 때 친구들은 다 대학을 가는데 저는 머리를

이만큼 길러 가지고 폐병 휴양하러 시골에 가서 혼자 앉아 있으니까 그때 마음에 다가오는 좌절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이젠 하나 버림받은 낡은 휴지 쪽지와 같이 되었구나 하는 그 절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꺽이니까 갈 데가 없습니다. 예수 밖에 믿을 데가 없습니다. 사람도 믿을 수 없고 자기도 믿을 수가 없고 그 때 전도된 예수 그리스도 밖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맹렬하게 꺽어서 주님께서 예수를 믿게끔 만드신 것을 체험했습니다.그리고 제가 1958년도에 불광동에 개척하고 교인들이 한 300명 되어갈 때 입대를 했습다. 군대에 가서 맹렬한 훈련을 받고 군복무를 하는 동안에 무시무시하게 하나님께서 꺽으셨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군대를 제대하면 목회 그만하고 미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저를 꺽으셨습니다. 제가 탈장이 되어서 수도 육군 병원에 엠블란스에 실려가서 8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8시간만에 수술에서 깨어나서 나왔을 때 또 폐렴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육군 병원에 약이 없었습니다. 링겔도 마이신도 전부 사와야 놔주지 군대에서 나오는 약은 군의관들이 다 훔쳐먹어 버립니다. 머리 아픈 사람은 머리에다가 마큐롬 빨간 약 발라주고 배 아프다고 하면 배에다가 마큐름 발라주고 마큐름이 만병 약이에요. 그 때 군의관 하시던 분이 여기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둑놈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병세를 보면 안 죽어갈 동료들이 많이 죽어갔습니다. 부자들은 약을 사오니까 그 약을 놔주지만 가난한 시골 청년, 돈이 없

는 사람들은 입원한 그대로 약하나 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갔습니다. 그 부류 속에 속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약하나 쓸 돈도 없고 죽어가는데 최자실 목사님이 매일 같이 그 시체실 앞에서 꿇어 앉아 철야 기도하면서 조전도사 이 시체실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방문병이 내게 와서 저 여자 누구냐고 물어요. 밤마다 조전도사 시체실에 못 들어간다고 여기서 앉아 울고 있으니 누구냐고 물어요. 그때 최 목사님의 기도로써 내가 살아났습니다. 그때 꺽였어요. 그때 완전히 꺽여서 하나님 살던지 죽든지 성하던지 망하던지 흥하던지 쇠하던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그러고 1964년도에 우리 서대문에 와서 교회가 꽤 부흥

이 되고 한 3000명 되었을 때 마음이 또 교만해지니까 강단에서 설교하다 쓰러져서 그때 이후로 신경쇠약증이 걸려서 25년의 긴 세월 동안 저의 몸에 가시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르지만 그 강단에 섰을 때 그 어지러움, 자꾸 쓰러지려고 하는 것,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런 해외여행 가도 늘 쓰러지려고 하고 걸어가도 늘 어지러워서 쓰러지려고 그래서 그것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꼭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하십니다. 네가 약한 자일 때 내가 강함이라, 이 어지러움의 가시 이것이 몸에 박혀서 정말로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이 어지러움의 가시에서 해방된 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어지럽고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수없이 부르짖고 매달리고 매달린 것입니다. 결국은 그를 통해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되고 하나님께

많이 매달리게 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은총도 많이 받고 축복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저의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 보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낮추게 하시고 복종케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의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꺽습니다. 꺽는다는 것은 여러분 쓰다듬어서 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꺽을 때는 맹렬하게 달려들어서 인정 사정없이 꺽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아픈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쓰다듬고 살살 꺽을 바에야 누가 고통스럽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께서 적게 사용할 사람은 적게 꺽고 많이 사용할 사람은 많이 꺽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안 꺽이고 사용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복을 주시지만 복을 주는 만큼 다른 면에서는 주님께서 꺽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이러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없는 고통 속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마치 원수가 된 것처럼 맹렬히 다가와서 여러분을 꺽을 때 그럴 때 여러분께서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버리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더욱 순종하고 복종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주께서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럴 때 낙심하지 말고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고 더욱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십시요. 꺽일 때 떠나가면 버림받습니다. 꺽일 때 더욱 감사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꺽인 후에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모든 넘치는 풍성 축복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적인 복종이 필요합니다. 복종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사용합니까? 일어서라 앉고 앉으라는데 서고 가라는데 오고 오라는데 가고 하면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꺽어야만 됩니다.

성경에는 그 아들이라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물론 순종하지요.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습이 다시 한번 재확인된 것입니다. 아들도 그렇게 했는데, 인간으로 순리적으로는 순종을 배우지 않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은 말로 잘 타일러 순리적으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꺽이는 아픔을 통해서만 항복하고 믿음과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그릇은 작게 꺽으시고 큰 그릇은 크게 꺽으시는 것입니다. 꺽이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 생활할 수 없으며 꺽이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고 작게 꺽으실 때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고 항복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고 복종하고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는 그 그릇에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이 믿고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지금까지 걸어오는 삶 속에 크고 작게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면서 내 아버지 좌절도 하고 꺽일 때가 많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꺽어서 주님께서 귀하게 쓰려고 하시지 사랑하지 아니하면 꺽지 아니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님 앞에서 꺽임을 당할 때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회개하고 깨어지고 순종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복종하고 더욱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는 그릇들이 되어서 그 이후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귀한 일군들이 다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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