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고린도전서 2:1-5
설교제목 : 성령의 능력과 기도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우리 모두가 한 주 후에 다가오 는 '더불어 한길 축제'를 위해서 다 시 한번 오늘 주신 말씀을 우리가 듣고 묵상하면서 영적으로 무장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결심을 하는 시간 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 라에는 동남아를 위시해서 중국, 심 지어 중동에서까지 돈 좀 벌어 보겠 다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36만명 가까이 된다고 그러는데, 그들이 들 어와 가지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3D업종에 종사하면서 인간적인 대 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엄청난 고 통을 겪고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 니다. 제가 언제 설교할 수 있는 기 회가 되면 몇 가지 말씀도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무튼 너무 처절한 형 편에서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고 많 은 사람들이 병신도 되고 죽어 나가 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느날 김포공항에는 인도네시아 로부터 돈 벌기 위해서 들어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 다. JUWONDO라고 하는 인도네시 아 젊은이인데, 그가 공항에서 전송 나온 어느 집사님과 작별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집사님, 제가 돈 벌러 한국에 왔다가 예수 그리스 도를 만났습니다. 모슬렘인 부모, 형 제, 동족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저는 돌아갑니다. 복음을 전하다 생명을 바쳐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 르니까 그때 제가 주님을 배신하지 않도록 집사님 꼭 기도해 주세요."
하고는 둘이서 포옹을 하고 그는 떠 났습니다. 한 두달 후에 전화로 그 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 동안 전도를 열심히 해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 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어느 주간에는 모슬렘을 믿 던 자기 가족 6명이 한꺼번에 예수 믿고 돌아오는 큰 기쁨을 맛보았다 고 전화에 아주 흥분된 소리로 전하 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을 제가 접하 고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이 몇 마디 의 전도를 듣고 예수 믿는 일만큼 신기한 것이 있습니까? 정말 신기한 일이지요. 잠깐 동안 흥분하고 감동 을 받고 끝나는 일 같으면 흔히 있 는 일이니까 별 것 아닙니다만 몇 마디 전하는 전도를 받고 예수 그리 스도를 마음에 모신 다음에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거요. 그래서 돈 벌 러 왔던 사람이 그것 다 집어 치우 고 전도하겠다고 자기 고국으로 돌 아갑니다. 그리고 가서는 생명 걸고 전도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얼마 나 희한하세요? 우리는 주변에서 하 도 많이 보니까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일 지 모르지만 이것만큼 희한한 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전도는 정말 희한한 일이고, 우리 사람들이 상상을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어떤 심지를 갖 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증명해 줍니다. 그는 전도의 도사 아닙니까? 평생을 전도하는데 바쳤 으니까 그의 말을 우리는 귀 담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첫째가 뭐 냐 하면 전도하는데 무용지물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무용지물이 라고 하면 여러분 무슨 뜻인지 잘 아시죠. 첫째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 움은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1절을 보면 이런 말 씀하지 않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 아갔을 때' 그 말입니다. 그래서 '하 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말과 지 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했 다.' 그랬습니다. 왜 말과 지혜의 아 름다움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느 냐? 쓸데 없는 일인 줄 알았기 때문 에 그래요.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취지는 말도 필요 없다. 지혜도 소 용 없다 그 말이 아니예요.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입니다. 이 아름다움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 다. 말의 아름다움, 지혜의 아름다움 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후페로케' 라고 하는 헬라어 말인데 탁월하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수하다, 뛰어 나다 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주 말이 우수한 사람들 있잖아요. 정치가나 철학자들이 옛날에 사람들 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들의 달변을 가지고 사람들을 휘어 잡지요. 웅변 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놓 지요.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많은 연습을 합니다. 말 연습을 하고, 웅 변 연습을 하고, 또 많은 철학적인 지식을 그들이 습득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달변과 지식을 가지고 사 람들을 휘어 잡는 거요. 그게 옛날 사람들이 군중을 이끌어 가는 하나 의 방법이었거든요. 바울은 그와 같 은 짓은 전도에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에 자신이 어떤 달 견이나 철학적인 지식이나, 이런 것 을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다 가는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던 것 입니다. 아마 제가 볼 때는 아테네 에서 그가 전도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 큰 교훈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고린도에 오기 전에 그는 아테네에서 전도를 했는데, 아 테네 사람들이 굉장히 종교성이 강 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들을 좀 설득시키기 위해서 유식한 철학적인 논리를 가지고 바울이 접 근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 믿은 사람 불과 다섯 손 가락도 안돼요. 사실은 실패를 했다 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그렇게 참담한 자기 모습을 가지고 고린도 로 들어오면서 그는 마음 속으로 작 심을 한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철 학적인 이야기, 사람들에게 좀 유식 하게 보이는 그런 말은 안하겠어.' 하고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4절에 보면 그의 결심이 또 한번 나타나지 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겠다.' 결 심했어요. 그러므로 이 말과 지혜의 탁월함을 가지고 전도하겠다 하는 생각은 아예 우리가 던져 버려야 합 니다. 무용지물이예요.
또 하나 무용지물이라고 그가 말 하는 것 있습니다. 자신감, 사람의 자신감, 이것도 쓸 데가 없다고 말 을 합니다. 여러분, 바울 지금 고린 도에 와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 까? 3절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거할 때에' 어떻게 했어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이 세 마디를 종합하면 바울의 모습이 어 떤 모습인지 대충 우리가 짐작이 가 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자신감이라 는 것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 는 지경이요. 발발 떨고 있는 것입 니다. 이 말을 우리가 오해를 하면 안돼요. 바울이 사람들이 두려워서 문 밖에도 못 나가고 떨고 있다는 말도 아니고 자기가 잘못하다가는 생명을 잃을지 모른다고 하는 어떤 공포심에 질려 있었다는 말이 아닙 니다. 그 말이 아니예요. 바울은 그 렇게 비겁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러 면 여기에서 심히 떨고 심히 두려워 했다는 말이 뭐냐? 고린도는 로마제 국에서 아주 악명 높은 도시였습니 다. 항구 도시고, 돈 많고 배 타는 사람들 많이 드나들고 무역 많이 하 고 이러니까 자연히 그런 도시의 특 징 있지 않습니까? 도덕적으로 굉장 히 좀 질이 낮아요. 사람들의 윤리 의식이 희박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종교성이 많아서 그런지 오만가지 잡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 도시에 살았어요. 그러므로 영적 으로 캄캄한 암흑이었어요.
자, 도덕적으로도 매우 질이 낮고 영적으로도 캄캄한 도성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번도 들 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도성에 바울이 혼자 들어왔어요. 예 수 증거하기 위해 왔다 그 말이요. 여러분, 무슨 힘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자기가 자신감 을 가지고 '난 할 수 있다.' 소리 쳐 도 그건 못하는 거예요. 무슨 재주 입니까? 못 하는 거요. 그러니까 야, 내가 어떻게 이 큰 도성을 상대로 해서 복음을 전하느냐? 생각할 때마 다 자신은 부적합한 존재다. 자신은 무능한 존재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 다. 하나님 앞에 죄송했어요. '하나 님, 이 도성에 많은 사람들 구원해 야 되는데 이 부족한 종은 너무너무 이 일에 적합하지 못합니다.' 이렇 게 생각하니까 자신감이 하나도 없 는 거요. 그래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가 결심을 했습 니다. '좋다. 내가 기를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을 가지고 덤빈 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에 는 철저히 죽자. 철저히 죽자. 그저 발발발발 떨다가 나중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완전히 포기하 자.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자. 그 러면 하나님이 뭔가 하시지 않겠느 냐?' 이런 심정을 가진 것입니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복음 전하는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울이 오늘 본문을 가지고 또 한 가지 이야기 합니다. 전도를 할 때 꼭 필요한 것 두 가지 가 있다고 합니다. 무용지물 두 가 지가 있는가 하면 꼭 필요한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복음이예요. 여러분 2절 다시 한번 봅시다. 우리 큰 소리로 한번 읽어 볼까요? 2절입 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 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이 말을 쉽게 바 꾸면 '나는 고린도에 와 가지고는 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오직 예수의 부활, 오직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하나님 의 선물, 이것만 전하리라. 그 외에 는 나는 전혀 관심 없어.' 그 이야 기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했을까 요? 인간의 어떤 달변이나 설득은 아무 소용이 없고 그 대신 바울이 놀랜 것은 뭐냐 하면 예수 이름을 전하는 데는 사람이 획가닥 획가닥 바뀐다 그 말이요. '예수님 십자가 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믿습니 까?' 설명도 별로 하지 않았는데 ' 예, 믿겠습니다.' 하더니 그 다음에 그 사람의 마음에 엄청난 지진이 일 어나더니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아 오는 일들이 바울이 너무 봤어요.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복음 밖에 없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십자가와 부활, 이것 밖에 중요한 것 없다. 그는 그렇게 확신을 한 것 입니다. 이게 사실 아니요?
베드로가 무슨 지식 있는 사람입 니까? 세상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 입니까? 저 갈릴리 어부, 무식한 사 람,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서 외치 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온 집이 정 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 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 예수를 믿으라.' 외칠 때에 그 폭도 와 같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회 개하고 돌아와서 하루에 3천명 남자 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놀라운 기적을 보지 않았습니까? 복음이 능 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자기 자신이 나중에 또 경험 하지요. 빌립보에 가 가지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나중에 는 그에게 전도할 기회가 생겼지 않 습니까?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 예 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한 마디에 간 수 집안이 다 예수 믿고 돌아오는가 하면 그 빌립보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복음이 능력이 있어 요.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거예요. '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예 그냥 다른 것은 관심도 두지 아니하려고 한다. 나는 그 이상의 다른 말은 하 고 싶지도 않다.' 하는 그 이야기입 니다.
요즘에 보면 한국 강단 좀 걱정 스러운 데가 많아요. 복음의 알맹이 가 빠진 설교가 많아요. 복음의 지 식이 올바르게 전달되는 설교라기 보다는 그저 설교자의 어떤 호소, 감정적인 호소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 설교가 너무 많 아요. 물론 이것도 좋습니다.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 청중이 우는 것도 좋고, 우스운 이야기를 할 때, 청중 들이 배꼽을 쥐고 웃는 것도 좋고, 감정적인 호소에 따라서 청중이 반 응하는 것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복음이 빠져 버리면 그것은 다 쓸데 없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 에 기분 좋게 웃고, 어떤 때는 기분 좋게 울고 나갑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그런 설 교 듣고 나가서 실컷 울고 웃었다. 그것은 한증탕에 잠깐 들어갔다 나 오는 거요. 오히려 얼굴만 벌게 가 지고 사람들한테 이상하게 보여요. 중요한 것은 뭐냐? 예수의 복음 듣 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강단 이 이 복음 회복해야 돼요. 복음이 사람을 바꾸거든요.
죠나단 에드워드라고 하면 미국 기독교 교회가 자랑하는 위대한 설 교자요, 철학자요, 신학자였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잖 아요? 1700년대 사람이었습니다만 그는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설교를 종이에다가 적어와 가 지고 호롱불 옆에서 읽었어요. 주일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읽었어요. 여러분,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제가 지금 써 와서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 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가 평생 을 그렇게 설교를 읽었는데, 이 설 교를 읽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 이런 말, 저런 말이 많았어요. 왜 그가 그 랬을까? 그런데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 뭐냐 하면 '행여나 성령이 말 씀하라고 하는 그 말씀을 내가 옆에 제쳐 놓고 원고 없이 내가 설교 하 다가는 나도 모르게 내 소리를 할 지 모른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설교 원고에 적힌 말씀만 전하리라. 복음 만 전하리라.' 이것이 그의 신조였 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설교 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우 일 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가 ' 진노하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 인들'이라고 하는 유명한 설교가 있 습니다. 그 설교 원문을 제가 읽어 봤어요. '진노하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 신학교에서 강의 듣 는 것 같아요. 얼마나 딱딱한지요. 그 설교를 종이에 써 가지고 와서 호롱불 옆에 놓고 읽었어요. 읽었는 데, 여러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 들이 모두가 다 뒤집어져 버렸어요. 숨겨 놓았던 죄악들, 그 동안 하나 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외식하던 모 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다 회개하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아우성을 쳤어 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미국의 저 유명한 대각성 전도 운동의 불씨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와 같은 능력 이 나타났는가? 달변이어서 그랬는 가? 아니예요. 무슨 유식한 지식을 전해서 그랬는가? 아니예요. 설교자 로서의 아주 유능한 테크닉을 동원 해서 그랬는가? 아니예요. 단순히 복음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복음이 중요한 거요.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전도 꼭 필요한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4절을 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 로 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다같 이요.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으로 했다.'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했다. 여기서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복 음을 전하든지 설교를 하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전혀 들을 것 같지 않던 사람이 귀를 쫑긋하고 듣는 모 습 있지요? 이건 성령이 그 사람에 게 역사해서 드러나는 일종의 demonstration이예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전도 하는 말을 들었지만 '별루다' 하고 들었는데 오늘 따라서 어느 집사님 이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고 깨달아 지고 고 개가 끄덕거려지고 나중에는 나도 믿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성령의 나타나심이예요. 희한 한 일이예요. 이런 일은 사람이 조 작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쇼 한다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셔서 다 알지 않아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 할 때 사람들이 믿는 것,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옥 목사가 하는 말, 사람 말 같지 않은데 저거 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가 보다. 사실 인가 보다.' 하고 느껴지니까 귀를 기울이는 거요.
여러분 누가 그 사람을 그렇게 귀를 기울이도록 설득할 수 있습니 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무슨 말로 설득을 시키겠습니까? 자신 있 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 는데, 그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당 신을 위해서 죽은 것이요. 그 말 도 대체 납득이 될 만큼 설명을 하라면 우리가 설명을 몇 권을 들고 와야 되겠어요? 자신이 없는 일이요. 게 다가 그분이 삼일 만에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건, 수 천년 전에 있었던 사건, 여러분 그 것을 무슨 재주로 증명을 하겠어요. 그리고 그 유대인 젊은 청년, 어떻 게 보면 정치범으로 몰려서 십자가 에 처형 당한 초라한 청년이 하나님 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전 인류의 구원자 되셨다는 것을 무슨 재주로 설득 시키고 믿게 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경 배하게 만들겠습니까?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자신 있어요? 이것 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예요. 우 리도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예수 믿고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지, 누가 나를 그런 식으로 설득시 켜서 이 자리에 나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것은 불가 능한 일입니다. 한번은 속을 수 있 어요. 두 번도 속을 수 있어요. 그러 나 평생을 속을 수는 없는 것입니 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복음 의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 속에 믿 음을 싹트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5절 보세요.
"너희 믿음 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이 말은 사람들의 어떤 설득이나 사 람들의 설명하는 지식 때문에 생긴 믿음이 아니고 그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함이니 라."
성령의 능력 때문에 내가 믿게 된 거요. 이게 어떻게 사람의 일입 니까?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이 이런 말 을 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전도 자의 웅변에 달려 있지 않다. 만일 웅변에 있다면 전도는 사람이 믿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복음의 능력 은 설교자의 학식에 달려 있지 않 다. 만일 그렇다면 전도는 인간의 지혜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가 혀가 녹이 슬 때까지 전하고 허 파가 다 소모되어 죽을 때까지 증거 한다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이 하나 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여 영혼 을 변화 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도 구 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필수적인 두 가지, 하나는 복음, 하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두 가지를 세상 사람들은 제일 우습 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 장18절에 뭐라고 그랬어요? 십자가 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 하게 보인다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십자가 이야기하면 픽픽 웃잖아요. 제일 미련한 것이 우리가 전도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을 하니 얼마 나 여러분 아이러니컬 합니까? 또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령의 역사, 세상 사람들이 압니 까? 몰라요. 고린도전서2장14절 보 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 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 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 도 못하나니.' 그랬어요. 다 미련해 서, 우리가 성령의 능력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해요. 그리고 전도라고 하는 방법 도 얼마나 미련합니까? 고린도전서1 장21절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 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를 기뻐하셨도다."
그러니까 전도라 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미련 하기 끝이 없는 방법이예요. 사람들 이 보아도 그 무식한 할머니 와서 전도지 들고 예수 믿으라고 하는 말, 저거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몇 사람이나 전도할까? 한 사람도 예수 믿고 돌아올 것 같지 않지요? 얼마 나 미련하게 보입니까? 그래서 나도 한번 물었어요. 지하철에 가가지고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전도지 전해 주는 것, '요사이는 저렇게 전도하 는 시대가 아닌데 저 사람들 왜 저 러나?' 어떤 때는 우리도 그런 마음 이 들잖아요? 좀 신사 답지 못하다 이런 생각도 하구요. 그런데 한번 제가 물어봤어요. '도대체 하루에 몇 사람이나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겠 다고 약속합니까?' '목사님, 말씀 마세요. 안 믿을 것 같지요? 어떤 때는 10명도 옵니다."
몰라요. 놀라 운 일이예요.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십자가, 우습게 보는 전도, 우 습게 보는 성령, 이것이 전도 하는 데 있어서 필수요건이라는 것입니 다. 우리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더불어 한길 축제'를 한 주 앞두고 시급하 게 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 이 애타게 기다리시는 영혼들을 우 리가 전도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 는 이 놀라운 축제,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될 것이냐?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는 전 염려하 지 않아요. 사랑의교회 성도들 치고 복음 필요 없다, 복음 듣기 싫다, 복 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런 말 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복음에 대해서는 제가 염려하지 않아요. 그 러나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우리 가 좀더 좀 더 사모하고 그 능력으 로 무장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합 니다. 우리는 먼저 성령을 바로 알 고 믿어야 됩니다. 성령은 누구십니 까? 성령은 예수님을 능력 있게 하 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 름 붓듯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 로 예수님을 아무도 이기지 못했습 니다. 마귀도 못 이겼습니다. 바리새 인들도 못 이겼습니다. 나중에는 돌 맹이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예 수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감히 상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성령이 그에게 기름 붓듯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누구십 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 들 가운데서 다시 그리스도를 살렸 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누구십니까? 증인 된 우리에게, 복음을 들고 나 가는 우리들에게 권세를 주시는 하 나님의 영이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은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성령이 누구십니까? 성령은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 리가 전도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말 씀을 듣는 그들에게 역사하셔서 그 들의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고백 하게 만듭니다. 이 성령의 은혜를 우리가 좀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 경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자 치고 기도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 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 꿇고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기 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 님 아버지여, 계시의 영을 주시옵소 서. 마음의 눈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밝혀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옵소 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 여 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에베 소 교인들이 알도록 하옵소서.' 하 고 에베소1장16절, 19절 그는 열심 히 기도하는 내용을 적어 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120명 의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여 그들을 충만하게 채우시고 능력을 덧 입혀 주실 때까지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성령의 능력을 받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 다. 대안이 없어요. 다른 대안이 없 습니다. 자신감도 소용이 없고 달변 도 소용없고 인간적인 지혜도 소용 없는 마당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능력 있게 하시 는 성령, 이것 밖에 없다 말이요. 그 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communication이 아닙니다. 전도는 confrontation입니다. confrontation 이 뭡니까? 영적 전쟁이란 말이요. 전도는 전쟁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에 있습니까? 그 이유가 어디 있어 요? 여러분 고린도후서로 넘어 가세 요. 고린도후서4장3절, 4절 우리 봅 니다. 잘 보세요.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우리 복음을 듣지 못하 고 받지 못하면 그 말이요.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이제 4절 '그 중에 이 세상신이' 사탄, 마귀, 더러운 영, 귀신, 이 모두가 이 세상 신이요. '이 세상신이 믿지 아니하 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 혼 미케 한다는 말은 눈을 가려놓는다 는 뜻입니다. 도대체 보지 못하게 딱 가려놔요. '눈을 혼미케 하여 그 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 취지 못하게 함이니.' 쉽게 말하면 복음을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듣지 못하도록 아예 눈을 가려 놓는 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영 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의 눈을 가려놓고 십자가도 보지 못 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 활의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듭 니다. 전도자가 가서 예수의 이름을 전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느냐? 악한 영들이 그들의 마음을 가려놓 고 있기 때문이 그래요.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가 뭡니까? '오, 하나님이시여, 저 우리 주변에 있는 우리 이웃 사람들의 눈을 가려 놓고 마음을 혼미케 한 그 악령의 역사를 쫓아 주시옵소서.' 이게 기 도입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주시옵 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성령이 강 합니까? 악령이 강합니까? 성령이 강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 서 예수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 가지고 그 마음을 얽어 매고 있는 어두움의 권세를 쫓아주시는 것입니 다. 그래서 복음이 그들의 귀에 들 어가는 것이요. 기도가 얼마나 중요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기 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 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 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 는 적하고 싸우는 것 아닙니다. 눈 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과 싸우는 것 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도에서 우리가 이 기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길 수 가 없어요. 복음 들고 나갈 때 성령 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 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 서 바울이 뭐라고 그랬어요? 에베소 6장18절, 1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 령 안에서 기도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 기도를 하되 쉬지 말 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이 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 라.' 얼마나 기도가 중요합니까? 우 리 모두 기도해야 돼요.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 다.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기 도는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기도는 악령의 권세를 묶어버립니다. 기도 는 혼미한 심령에 진리의 빛을 비춥 니다. 믿습니까? 이게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증거 되면 기가 막힌 일들이 일어나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 복음을 들고 나가서 기도하면서 전하면 성령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지 고 역사를 하는데, 듣는 자들의 마 음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지요. 이 이야기 다 하려면 끝이 없 잖아요. 제가 최근의 본 책 가운데 서 아주 실감 나는 이야기를 하나 보았습니다.
평생 교도소 선교에 몸을 바친 론 박사와 찰스 콜슨박사가 한 이야 기입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가 어디 있느냐? 그들에 게 물었더니 아프리카 잠비아에 있 는 중범죄 교도소라고 합니다. 최고 악질들만 수감되어 있는 특수 감옥 인데, 교도소 안에다가 또 교도소를 만든 거요. 온통 굵은 철망으로 뒤 덮인 커다란 야생동물 우리 같은 그 런 고약한 곳입니다. 사방 5미터 정 도 되는 작은 운동장이 있는데 그 운동장 옆에 감방들이 주욱 늘어서 있어요. 그 좁은 방에서 무려 23시 간이나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것입 니다. 눕기도 서로 불편할 정도로 방에 비해서 너무 많은 죄수들이 그 속에 갇혀 있는 거요. 23시간 갇혀 있고, 겨우 1시간은 그 5미터 정도 되는 마당에 나와 가지고 몸을 좀 푸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 까? 변기조차 없었어요. 식기에다 똥과 오줌을 받아 내야 돼요. 아프 리카의 그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에 철판으로 된 감옥이 후끈후끈 달아 오르면 역겹고 구역질 나는 공기 때 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옥 입니다. 한마디로 인간 지옥이지요. 거기에 어떻게 인간이 살고 있나? 상상도 못하지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죄수들에게 어느 누군지 무명의 전도자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수 용된 사람이 한 120명 정도 되는데 80여명이 예수 믿은 거요. 그 80여 명 가운데서 35명은 이미 사형 집행 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들이예 요. 자기들끼리 신경질 내고 견디지 못해서 치고 박고 싸우고 살인극이 벌어져도 속 시원하지 아니할 그런 지옥 속에서 그들이 복음을 들었어 요.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 지! 그래서 그 소문을 듣고 론 박사 와 찰스 콜슨 박사가 그 감옥을 특 별 신청해서 면회를 갔답니다. 문이 열렸어요. 손님이 오셨으니까 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120명 가운데서 80 여명이 우르르 일어서더래요. 서더 니 벽에 줄을 서서 정열을 하드랍니 다. 그러더니 신호를 하니까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4부로 말이죠. 찬양하는데 그 지옥 같은 끔찍한 환경 속에서 그렇게 평 화롭고 차분한 표정을 가지고 찬양 하는 그들을 볼 때 이게 정말 꿈인 지 현실인지 혼돈할 정도로 기이한 일이 그들의 눈 앞에 벌어진 것입니 다. 평강이 넘치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이 서 있는 뒷 벽에 무슨 그림이 있는 것처럼 보였 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니까 그 뒷 벽에다 숯검정으로 아주 정교하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려 놓았습니 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80여 명의 죄수들이 서서 4부 코러스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그 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방문한 두 사람은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계 시는 것을 그들이 실제로 보게 되었 어요. 그들이 80여 명이지만 그 가 운데 예수님이 서 계시는 것을 그들 이 보았어요. 온몸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의 흥분을 그들은 느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서서 찬양하시 고, 그들과 함께 거기 계시면서 그 들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함께 나 누시고 뿐만 아니라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기쁨과 능력을 제공 하고 계시는 것을 그들이 보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깨달았다고 합니다. 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 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는 말을 했을까? 그 말을 그들이 비 로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의 주님 외에는 그들을 저렇게 변화 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복음의 능력 을 여러분 압니까? 이 능력을 안다 면 나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 안됩니 다. 우리 이번 '더불어 한길 축제' 앞에 놓고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고 여러분 마음에 떠오르는 태신자 찾 아 가세요. 여러분 마음에 떠오르는 이웃을 찾으세요. 엄청난 일이 그들 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의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놓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회복시 켜 줄 수 있습니다. 병든 사회를 치 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합니 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완성 시킬 수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 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보 고 전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달변도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자신감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 들고 성령에게 의존 하면서 우리가 나가기만 하면 큰 이 적이 일어납니다. 이 일에 여러분 함께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 니다. 복음의 증인 됩시다. 우리 이 웃들 예수가 없기 때문에 비참한 사 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설교 하러 들어오기 전에 지난 주 설교를 듣고 사창가에 들어 가서 전도를 한 형제의 간증문이 저 의 팩스에 들어와 있어요. 그것 보 고도 제가 놀랐어요. 오늘 이 시간 그 이야기는 안 하겠어요. 여러분, 사람이 악해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니 요. 사람이 악해서 세상이 비참해 지는 것 아닙니다. 사람은 항상 악 했어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앞으 로도 악할 거예요.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악해질 거예요. 그게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게 이유가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는 데 있는 거요. 복음의 능 력이 살아있는데, 성령의 역사가 오 늘도 사랑의교회에 있는데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 바울처럼 기도하면서 이 복음 들고 우리 이웃에게 하늘의 영광, 하늘의 행복을 안겨 주는 주의 자녀 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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