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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39-49절 부활 때에 가질 새 몸[부활절] - 정대운 목사

by 재영구리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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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고전 15장 39~49절
설교제목 : 부활 때에 가질 새 몸[부활절]
설교자 : 정대운 목사님                        

「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에 속한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9절-49절)

1. 마른 뼈들의 환상
1) 죽음의 땅-- 침묵의 땅
하나님은 권능으로 에스겔을 데리고 어느 골짜기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그대로 번역하면 '여호와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에스겔을 붙잡으시고 어느 골짜기로 데려가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권능, 여호와의 손이 임재하는 것은 귀중한 사건입니다.
에스겔을 찾아오신 하나님, 하나님은 도대체 에스겔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했을까요?

에스겔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간 그 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뼈, 지천으로 널려있는 뼈들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이 간 그 골짜기는 죽음의 땅이요,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의 땅입니다.
그곳은 계절이 바뀌어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아무도 찾아오지 아니하는 곳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곳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곳으로 찾아가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죽음의 땅, 그 한가운데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골짜기에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에스겔 뿐입니다.
에스겔만이 살아서 그곳에 서 있습니다.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뼈가 끝도 모를 정도로 널려 있습니다.
그 뼈들 가운데 에스겔이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에스겔은 넓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뼈들을 보면서 슬픔과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뼈들은 보고 놀란 가슴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에스겔을 뼈들 사이로 지나가게 합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사방을 다니며 뼈들을 샅샅이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로 하여금 죽음을 확인하게 합니다.
그들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하십니다.
에스겔은 혹시라도 산 사람이 있을까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에는 "보니 그것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풍상에 퇴색한 하얀 뼈들이었습니다.

2)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 날 수 있겠느냐?
이 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십니다.
"인자야!" 우리 하나님은 에스겔을 언제나 이렇게 부르십니다.
죽음의 땅에서 고뇌하고 좌절한 에스겔을 다정한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침묵의 땅에서 맥이 풀린 에스겔을 포근한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왜 오랜 세월동안 햇볕과 비바람에 퇴색한 마른 뼈들을 살리려고 하실까요?
그것은 이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내 백성으로 삼으려고 여러 이적을 통해서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고,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인 내 백성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범죄 하다가
결국 멸망 당하고 무덤 같은 바벨론으로 끌려온, 이제는 지치고 상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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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살아 날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에스겔의 귓전에 하나님의 이 충격적인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에스겔의 대답은 "주 하나님, 주께서는 아십니다."입니다.
이 하얗게 마른 뼈들은 에스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릴 재간이 없는 것들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물음에 황당했을 것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는지 나는 모릅니다. 주님만이 아십니다.
사람은 살릴 능력이 없으나 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주님, 저 마른 뼈들과 같은 내 백성들, 희망 없는 내 백성들,
주의 영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내 백성들을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3) 너는 이 뼈들에게 대언하라.
하나님께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에스겔은 이 질문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 곳에 데려 온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죽은지 이미 오래 되어서 이제는 하얗게 마르고 마른 앙상한 뼈들로 남은 사람들을,
회복이 불가능한 그들을  살려내려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일을 대행할 사람으로, 이 놀라운 일의 증인으로 에스겔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의 음성으로 들려집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내가 너희에게 힘줄이 뻗치게 하고, 또 너희에게 살을 입히고
너희의 살갗을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이 참담한 죽음의 땅에 에스겔이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른 뼈들 위에 에스겔의 외치는 소리가 안타까운 음성으로 아침 이슬처럼 내려앉습니다.
에스겔은 행여 말소리가 닿지 않는 곳이 있을까? 해서 힘을 다해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뼈들이 있는 구석구석에, 저 깊은 곳에 있는 뼈들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외쳤습니다.

에스겔이 외칠 때에 무슨 소리가 났습니다.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들은 마른 뼈들이 듣습니다. 그 자리에서 순종합니다.
에스겔이 보니 그것은 뼈들이 서로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였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소리입니까? 이제는 죽음의 땅!!, 침묵의 땅이 아닙니다.
에스겔이 보니 그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살갗이 덮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른 뼈들이 다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 아직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산 사람이 아닙니다.
피가 통한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2. 썩지 않는 신령한 몸
1) 어리석은 사람이여!!
고린도교회에는 부활한 몸에 대해서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이해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 믿음의 차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셔야 해결됩니다.

사람들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 물이 되고 흙이 됩니다.
뼈들도 가루가 되어 그 원소들이 다 흩어질텐데 부활할 때 어떻게 한 몸이 됩니까?
또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죽어 그 몸이 물고기에게 다 뜯어 먹히거나
몸이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면 어떻게 그 조각 조각들이 모아집니까?"하고 묻습니다.
또 매장을 하면 썩어 흙으로 돌아가서 걱정이고,
불에 태우면 가루가 되고 재가되어서 몸의 부활을 의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불구자는 부활 때도 여전히 장애인으로 살아납니까?"하고 질문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헬라 철학의 이원론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거기 물들어 있습니다.
플라톤 이래의 헬라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저급하고 일시적이고 사멸되어 가는 존재인 육체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상하고 영원하고 죽지 않는 영혼입니다.
육체 속에 영혼이 들어와서 사는 기간은 지상에서 사는 생활이고,
이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의 육체와 분리되어서 빠져나가는 순간이 인간의 죽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분해되어서 재결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죽음 이후의 몸의 부활을 회의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인간은 영과 육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 전인(全人)으로 살다가 전인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도 본질적으로는 영생하는 존재가 아니하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도 인간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저급하고 일시적이고 사멸해 가는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은 전인으로서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새로운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영혼에만 충만하고 육체는 제외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자연의 질서--씨앗과 싹(새 몸)
여러분은 에스겔 37장 10절의 부활의 신비한 장면을 화면으로 보셨습니다.
하얗게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서로 짝을 맞추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그 위에 가죽이 덮입니다.
마른 뼈들이 형체를 갖춘 사람의 모양으로 되어 가는 그 놀라운 장면을
에스겔은 경악에 차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눈이 의심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땅은 이제 마른 뼈의 땅이 아닙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다시 살아나는 의지와 소리로 가득 찬 기적의 장소입니다.
에스겔은 이 장면을 넋이 빠진 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으로만 감격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부활장'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연에서 끌어온 이미지를 사용해서 부활의 몸, 신비한 몸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눈먼 사람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설명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소리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비유로 설명합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는 것을- 부활의  비유로 말합니다.

37절 말씀에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고 했습니다.
바울은 씨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여기 채송화 씨 하나와 해바라기 씨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씨를 땅에 심으면 씨는 썩어집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씨앗은 작지만 씨앗 자체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형체를 가지고 살아납니다.
조그마한 씨앗에서 큰 줄기와 잎과 꽃이 나오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채송화 씨앗을 심어서 해바라기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파종된 씨앗이 썩어서 식물로 자라는 것은 연속성은 있지만 그
모양은 씨앗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다릅니다.
바울은 이것을 신령한 몸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질서-- 신령한 몸
38절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 하나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창조주께서는 몸의 다양한 기능들을 안배하시는 것처럼,
자연 가운데도 혜택이 되는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농부는 이 질서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었으면 팥을 거둡니다.
밀을 심었는데 보리와 귀리가 자라나게 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40절에서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의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42절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무덤에 있는 것은 썩은 몸입니다. 무덤에서 몸이 썩어 없어지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은 썩지 않을 새로운 몸입니다.
43절에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라고 했습니다.  
죄의 도구가 되어버린 인간의 비천하고 낮은 몸이 무덤에 심겨졌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켜서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같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빌3:21)

44 상반절에서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은 아담처럼 땅에서 났으므로 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은 하늘에서 났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납니다.
씨앗은 썩지만 다른 아름다운 형태로 변화되어 자라나는 것입니다.
씨앗은 땅에 묻혀 죽지 아니하면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44하반절에서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연약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권세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강한 분입니다.

바울은 자연에서 끌어온 파종-추수의 원리를 죽은 자의 부활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심고- 산다>는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하나의 씨앗을 심으면 신비한 형체를 입고 살아나는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하고 욕된 몸을 심으면 새로운 형체,
부활의 몸,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
1) 몸의 부활- 연속성
씨앗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땅에 묻힌 씨와 그 후에 풍성한 열매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썩을 몸을 소유하고 있지만 미래의 부활의 세계에서는 썩지 아니할 존재로
다시 살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심고-사는>, 파종-추수의 예를 가지고 예증하고 있습니다.
심는 것이 없으면 사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욕되고 약한 몸으로 심지만 언젠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비천한 몸은
영광스럽고 강한 몸으로 살아나서 부활세계 -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지금은 육신의 몸으로 심지만 언젠가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 영원한 나라에서 살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더러운 행위를 하는 자는
부활세계에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두는 자연법칙은 오는 부활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육신의 몸을 심어 신령한 몸으로 산다는 바울의 설명은 진리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육신의 몸을 심어 신령한 영혼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몸의 존재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구원'이라는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몸이 없는 영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몸-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입니다.

2) 신령한 몸-- 불연속성
육신의 몸과 신령한 부활의 몸 사이에는 이렇게 분명한 불연속성이 있지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존재 질서는 다릅니다.

그래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혈과 육의 존재는 썩지 않는 영광스럽고 신비한 몸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후의 상태를 통해서 부활의 몸, 신령한 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몸의 형체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손과 발을 만져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보는 바와 같이 다 있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시 /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이 닫힌 방안에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를 잡수실 수 있는 신령한 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함께 식사하실 때에는
비로소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과 같이 흙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과 대화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령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22:23~ )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차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형상의 온전한 회복
육신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첫사람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45절에서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고, 육의 사람이요, 산 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사람이요, 살려주는 영입니다.
47절- 아담은 땅에서 태어나 흙에 속한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서 하늘에 속한 분입니다.

우리는 사실 아담의 후손으로 땅에서 났고, 땅에 속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는 아담의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믿음으로 두 번째 아담에게 속한 자가 되어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담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어 부활의 새 질서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담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에스겔에서는 '마른 뼈'라고 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상태입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갈 때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가 임재합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우리는
첫 열매인 주님의 부활처럼 신령한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
신령한 몸으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립니다.
정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하는 바울의 말은 옳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소망이 없고, 이생뿐이라면 저희의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저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욕된 것으로 심었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약한 것으로 심었지만, 그리스도안에서 강한 것으로 다시 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육의 몸으로 심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소망이 이생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재림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재림하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활의 신앙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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