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1-12절 방주로 들어가라 - 하용조 목사 설교
설교본문 : 창7:1~12
설교제목 : 방주로 들어가라
설교자 : 하용조 목사님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백20년 동안 신실하게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기는 쉽습니다. 누가 들어도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방주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모양의 방주를 1백20년 동안 짓고 있는 노아를 어느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행하는 것 믿음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 중에 가장 이해되지 않는 말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어느 한 청년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7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방주를 다 지은 노아에게 하나님은 ‘너와 네 집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복입니다. 날이 좋고 심판이 없을 때에는 방주 안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에 심판이 임할 때에는 방주에 들어가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장 1절을 보면 노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6장에서는 노아를 가리켜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장1절에서 또 다시 하나님은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변함이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도 변함없는 신앙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폭풍과 비바람이 치고, 회사가 망하고, 자녀들에게 어려움이 생길지라도, 건강에 위기가 올지라도 여러분의 믿음이 변함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내가 너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너는 내 앞에서 의로웠다’고 평가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노아는 자기가 지은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6장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1백20년 전에 노아에게 ‘내가 세상을 심판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세상에 죄가 관영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옛 것은 버려야 새 것이 나옵니다. 노아시대에는 물로 심판을 받았지만 노아시대 이후 인류가 쌓은 죄는 불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 통해 구원 약속해
하나님은 의로운 노아를 통해 구원을 계획하시고 방주를 지어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약속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인간은 배신합니다. 아무리 신실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한 두 번은 배신하고 몇 번씩은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몇천년을 지나도 배신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구약은 옛 적의 약속을 말하며 신약은 새로운 약속을 신약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신약의 약속은 앞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라는 사람을 택하여 구원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불의 심판이 올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노아입니다. 노아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자신도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과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변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 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 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보존케하라
6장 19절을 보십시오.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하나님은 동물의 모든 종을 보존케 하기 위하여 암수 한 마리씩 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정결한 짐승은 일곱 마리씩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제사 위한 정결한 짐승 일곱쌍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방주는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방주는 그리스도인의 현주소입니다. 방주 안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방주에 들어가는 자만이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며 구원을 받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마리씩을 데리고 들어가 라고 말했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번식을 더 많이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짝을 지어 데리고 들어간 이유는 종족보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결한 짐승 일곱쌍은 제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결한 짐승이란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한 짐승을 의미합니다. 제사는 방주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갖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에게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광 가운데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예배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의 몸을 정결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산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제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동물의 피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참 제사는 아벨은 비록 에덴동산을 쫓겨난 죄인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죄인으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곳은 감옥도 영광의 자리로 변합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과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할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을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