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37-43절 미래를 창조하는 그림 - 조용기 목사
설교본문 : 창 30장 37-43절
설교제목 : 미래를 창조하는 그림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겁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며‥‥‥" (창세기 30 : 37 ~ 43)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 그저 잠잠하게 내적, 심령적인 한계 내에서 믿는 사람과 영육간 에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기적을 가져오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좇아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기적적인 신앙생활 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윤리와 도덕과 철학과 종교 의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용서의 문을,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소망의 문을, 병든 자에게 치료의 문을,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배불리 먹게 하시는 복의 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 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역사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로 감이니라."(요한복음 14 : 1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므로 주님을 믿는 백성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윤리와 도덕적인 신앙의 규범 이상의,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창조하며 생산하는 기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전히 환경의 지배를 받고 슬픔과 운명의 노예가 된 채 질질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지 그 비결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믿은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봅시시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우리들에게 마음의 창조적인 그림을 그 려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기적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 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 12 : 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재산 과 노비를 거느리고 떠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시련이 다가와 가나안 땅으로 기근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도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는 회개를 하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택하여 애굽으로 내려가 죄악과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곤욕을 당하였습니다. 아내를 빼앗기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 다 하나님께서 돌이키시매 깊이 참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 니다. 가나안에 온 뒤 하나님께서 복 주심으로 아브라함의 소떼와 양떼가 늘어났으며 롯의 양떼 와 소떼도 늘어났습니다. 좁은 땅에서 가축이 많아지자 두 집의 목자 사이에 우물 물과 목초 때문에 시비가 붙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롯에게 "우리는 한 골육인데, 두 집 목자가 다투면 이방인들에 게 덕이 되지 못하니 우리 서로 떨어져 살자. 네가 동쪽을 택하면 나는 서쪽을, 네가 북쪽을 택하면 나는 남쪽을 태하겠다."라고 말하자, 롯은 사면을 둘러보고 편편하고 물이 풍부한 요 단들을 택했습니다. 롯이 떠난 뒤 메마른 산지에 남게 된 아브라함이 앞으로 살아 갈 일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조카를 보내가 하나님께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 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세 기 13 : 14 ~ 17)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의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 시기 전에 먼저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도장을 새기듯 새기 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 청사진을 그리게 하 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복지를 주시기 전에 바라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라보는 것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볼까요? 우리의 환경을 바라볼 까요? 육신의 감각을 바라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볼 가나안 땅을 주셨 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가나안 땅은 바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바라보며 이 말씀에 기록된 약속들을 우리 마 음속에 분명하게 그릴 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좇아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 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성도들의 생활이 침체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나안 복지인 성경을 바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세 상을 바라보고 억압당하며 절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삶을 주실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에 속한 삶은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걸어가지만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바라봄으로 위대한 복을 상속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아 그 땅을 상속받게 되었고 거부 가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을 때에도 먼저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75 세 때 하나님께 아들을 주십사고 기도를 하였는데 25년 후인 100세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아 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아들 을 뚜렷하게 그리게 하신 후 아들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집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을 밖으로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 하늘을 쳐다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 함이 밤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는 별들이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육안으로는 6,000개의 별을 셀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감격하여 눈앞이 흐려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별들이 자기의 자손으로 변하는 그름을 마음속에 그리고 나니 그 자손 들이 "아버지"하고 부르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한낮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티끌을 보게 하신 뒤 "티끌처럼 네 자손이 많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티끌을 바라보자 티끌이 일기에 그의 자손으로 변하여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자기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지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그 그림대로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적을 행하실 때 마음속에 먼저 그림을 그리게 하신 후 그림대로 역사하십니다.
야곱
창세기 30장 37절부터 43절까지에 보면 마음에 꿈을 그림으로 승리한 야곱의 이야기가 나 옵니다. 야곱은 깨어지기 전까지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아버지가 장자에게 축복할 때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것을 이용하여 자기가 장자라고 거짓말을 하여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형이 야곱을 죽이려고 하므로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고 속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나이 40세가 되어 자녀까지 있었지만 빈털터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의 운명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야곱의 마음속은 열등의식, 좌절감,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자 야곱으로 인해 부자가 된 외삼촌이 만 류합니다. 이에 야곱은 그대로 머물되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외삼촌의 양 떼와 소떼중에서 얼룩 무늬와 점 있는 짐승은 다 골라내고 나머지 짐승을 자기가 키우는데 이중에서 얼룩무늬와 점 있는 짐승이 생기면 자기의 임금으로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외삼촌은 어리석은 야곱이라 생각하고 뛸 듯이 좋아했습니다. 외삼촌은 얼룩 무늬와 점 있는 짐승을 제하면 얼룩 무늬와 점 있는 새끼가 태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로 외삼촌의 양떼, 소떼 중에서 얼룩 무늬나 점 있는 짐승은 따로 떼어내고 야곱은 나머지 짐승을 치기로 했습니다. 얼룩 무늬와 점 있는 짐승을 골라 내고 나머지 순수한 색깔의 짐승만이 있는데 얼룩 무늬와 점 있는 짐승이 생길 것 같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계시를 좇아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가지를 꺾어 서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짐승들이 물을 먹고 새끼를 배는 곳에 세 워 놓았습니다.
짐승들이 그 곳에 와서 물을 먹고 새끼를 가지는데 새끼를 낳고 보니 얼룩 무늬와 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이 성경을 읽을 때 매우 놀랐습니다. 짐승들이 얼룩덜룩한 가지를 본다고 해서 얼룩이와 점 있는 새끼를 낳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야곱이 얼룩덜룩한 가지를 새끼를 배는 짐승 앞에 둔 것은 짐승들이 보라 고 둔 것이 아니라, 야곱 자신이 마음속에 짐승들이 얼룩이와 점 있는 새끼를 낳는 그림을 뚜렷하게 그리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얼룩덜룩한 가지를 보면서 얼룩이와 점 있는 양떼와 소떼의 주인이 된 그림을 그려 그의 마음속의 그림이 변화되자, 성령은 그 믿음대로 모든 짐승들의 유전 인자를 변화시켜 낳는 새끼마다 얼룩 무늬와 점이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한 떼, 두 떼 수많은 짐 승을 거느린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잘 살아 보려고 애썼 을 때에는 언제나 패배하였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속에 창조적인 그림을 그리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