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14-15절 에녹 - 최덕훈 목사
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4-15절
설교제목 : 에녹
설교자 : 최덕훈 목사님
히 11장은 소위 믿음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8절 이하에서 등장합니다. 즉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전에 대단히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 3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가 그들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했는지의 여부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처절하고 그리고 완악하고 나아가서 패역한 시대요, 타락한 시대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과 시대를 믿음으로 뛰어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굴하지 않고, 그 시대적 환경을 이겨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악인들이 결과만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오히려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위하여 노력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간마다 만족하고, 언제나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서 열심히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황도 그들의 환경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분명하게 우리의 신앙의 모범이 되고도 남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유다는 에녹을 언급합니다. 유 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와 같은 구약의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을 열거하던 유다가 갑자기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에녹을 등장시킵니다. 히 11:5에서 에녹은 하나님께로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다고 했는데, 우리도 그와 동일한 신앙적 목표를 정해 놓고 살아야 옳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에녹을 믿음의 전형으로 삼아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정의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말씀 속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에녹입니다.
창 5장 21-24절까지가 에녹에 관한 기록입니다. 에녹은 365세를 살았는데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그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증거합니다. 창 5:21-2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에녹의 믿음을 하나님과 동행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일단 동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설명하기를, 암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했습니다. 즉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최소한 두 사람의 뜻이 동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남들이 멸시하는 자와 동행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에녹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었던 때라, 어쩌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으로까지 보일 수 있었습니다. 에녹의 시대는 어떤 때입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형제 반목의 시대였습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도덕적 불균형이 시작되고,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하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최초로 두발가인이 무기를 만들었으니, 전쟁을 선호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던 때에 에녹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아가서 자기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맞추어서 동행했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의 결단이라고 칭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성경속에서 찾아봅니다.
우선 민 6장의 나실인의 서약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민 6:8, ‘자기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자면 ‘거룩해야’ 합니다. 나실인이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하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계속 동행하는 믿음은 자기가 사는 날 동안 ‘자기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믿음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레위 족속과 세운 언약의 말씀 중에 나타나는 말씀을 봅니다. 말 2: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진리와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믿음이 필요하고, 화평과 정직의 열매가 있는 삶도 필요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레위 족속의 믿음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경우입니다. 눅 24:15-16을 보면, 예수께서 ‘동행하여 주시나 깨닫지 못하는 믿음’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동행하면서도 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께 책망을 들었습니까? 눅 24:21-22, 실망과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실망이나 불신을 멀리해야 합니다.
에녹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300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얼마나 길고도, 아름답고도, 귀중한 삶의 모습입니까? 성도여! 에녹처럼 동행하는 믿음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과연 필요합니다. 결국 동행하는 믿음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리고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완전한 영생이 회복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혹 육신의 죽음은 맛보더라도 ‘영생이 있으니’, 죽음을 보지 않음과 같은 축복을 누리는 것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의 에녹의 믿음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유대인이 기록한 히브리서의 에녹입니다.
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마디로 에녹의 믿음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의 믿음을 우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창세기의 에녹은 동행하는 다소 수동적인 삶이었지만, 히브리서의 에녹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늘 나아가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송축하는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이 왜 아니 기뻐하시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하는 삶과 연결되어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가듯 사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의 성전에서만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업의 현장과 가정 그리고 나의 죄악된 삶의 현장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원하지 않는 모습은 없습니까? 에녹과 같이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은 그러므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상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상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행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행했다는 평가가 있을 때에 상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전능자시요, 우리는 그의 그늘 아래서만 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상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능자로 믿는다는 것이니,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는 에녹의 믿음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언제, 어디에서나 예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동시에 예배하는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믿을 때에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림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유대가 기록한 유다서의 에녹입니다.
유 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에녹에 관하여 놀라운 믿음의 정의를 했습니다. 유다는 에녹의 믿음을 예언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유다는 에녹을 최초의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약의 인물 중에 예수의 재림을 예언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유독 에녹이 예수에 대하여 초림도 아니요, 재림에 대하여 예언했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실 것을 제대로 예언했습니다. 바울이 주의 재림을 예언한 것과 동일합니다. 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유다는 에녹이 예수께서 재림하심이 뭇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 유 1: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는 과연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구원자 예수를 넘어서서, 심판자 예수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그 믿음의 안목은 엄청납니다. 에녹의 시대에 초림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예수를 바라보았다고 해도 굉장한 믿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구원을 넘어서서 온 세상의 경건치 않은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에녹 당시의 사람들 모두가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노아의 홍수로 온 세상이 심판받지 않았습니까? 이런 여러 일들을 살펴보면, 에녹은 당장의 심판도 알았을 뿐 아니라, 마지막 때의 심판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심판의 와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멀리 바라보고 있습니까? 에녹은 수천 년 후에나 있을 일을 바라보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먼 일을 바라보고 삽니까? 그 먼 일을 바라보기 때문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유다가 구약 전체 속에서 가인과 고라와 발람을 비판하면서 에녹을 중간에 삽입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에녹 당시에나 유다 당시 그리고 오늘날에도 다같이 동일하게 에녹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근시안적인 믿음을 버리십시오. 보다 멀리 바라보고, 보다 담대한 믿음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십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에녹은 주님의 재림을 예언했으니, 언약의 회복자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으니, 임마누엘의 회복자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으니,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자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영생의 회복자입니다. 오늘날에 이런 회복자가 필요합니다. 충분히 우리에게도 이런 회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서 놀라운 회복이 자신과 그 주변에 나타나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능력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에녹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