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유다서

유다서 1장 1-2절 성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 최덕훈 목사

재영구리 2023. 2. 20. 21:00
반응형

설교본문 : 유다서 1장 1-2절
설교제목 : 성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설교자 : 최덕훈 목사님 

 

아무나 성도라고 부른다면, 성도라는 직분이 무엇이 소중하겠습니까?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가 된 후에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지, 성도로서의 확신이나, 감사가 없으면, 모든 직분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즉 봉사나, 사명 감당하는 일들이 자신의 신앙을 잘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목회를 잘 하여 교회를 부흥시켰다고 해서, 그 목사의 믿음이 저절로 훌륭해지고,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사 스스로의 믿음 생활이 더욱 필요합니다. 모든 직분 받은 자들이나, 봉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일과 자신의 믿음을 잘 연결시켜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봉사요, 헌신이요, 감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봉사 자체가 믿음인 줄 알거나, 맡은 일 자체가 믿음이 되는 줄 아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도라는 직분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나, 예배에 참여하는 자 모두는,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성도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이나 지위가 어떠하든지, 언제나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귀한 성도들이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직분을 귀중히 여기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요한과 유다의 설명을 찾아보면서 말씀 속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성도의 신분은 매우 소중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로 설명해 봅니다. 두 사람은 물론 나중에는 같은 의미를 나타냅니다만, 자신의 처지에 따라, 약간 차이나는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사도요,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를 핍박하다가, 나중에 예수 믿어 사도가 된 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모태신앙을 가진 자와 같고, 바울은 개종한 신앙을 가진 자가 됩니다.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면, 베드로는 말씀으로 시작한 자요, 바울은 사건으로 시작한 자로 비교해도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에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다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예수를 믿은 자로 봅니다.

잘 아시는 바처럼,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를 극적으로 만납니다. 완전히 삶이 뒤집어져서,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이니, 사건으로 예수 믿게 된 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처음부터 예수를 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또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어떤 자신에게 있어 중요하고도,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 때문에 예수 믿기를 결심하고, 교회에 나온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자들을 자신의 성도로 부르시고, 소중히 여겨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성도라는 신분은 매우 소중합니다.

1. 베드로는 선택을 강조하여, 성도의 신분의 소중함을 증거합니다.

벧전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보내는 첫 번째 편지의 서두에서 분명하게 성도의 신분을 이와같이 정의하면서 인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본문은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또 성도는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도록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또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엄청난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성부께서 예정하시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성자에게 순종하게 하고, 죄 씻음 받게 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성도를 만세 전에 택하셨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강조하면서, 감격해합니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성도는 아버지의 선택을 받아,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거룩하게 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렇게 자신이 성도가 되었을 뿐 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거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예한 모든 성도들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나를 선택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면서 주께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바울은 관계를 강조하여, 성도의 신분의 소중함을 증거합니다.

롬 1:5-6,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표현에는 관계성이 담겨있습니다. 즉 예수는 주인이요, 자신은 예수의 소유물이라는 뜻이니, 예수와 자신의 관계가 주종관계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가 자신을 샀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빚진 자’라고 고백하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고 사도가 된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하신 한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뜻은 ‘다 갚았다’는 말도 됩니다. 자신의 죄값, 자신의 생명의 값, 자신의 삶 전체의 값을 주께서 대신 갚아주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자신을 사 주셨고, 자신은 예수에게 빚진 자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입니다. 사탄의 종이 되어서, 예수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신을 오히려 아무 값도 없이 대신 사 주셔서, 자신을 예수의 것으로 만들어 주셔서, 사탄의 종이 오히려 하나님의 종이 되고, 마귀의 자식이 오히려 예수의 소유가 되고, 아무 쓸모없는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에 유용한 종으로 만들어주심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의 삶이 옳은 줄로 여기고, 예수 믿는 자들과 교회에 대하여 강력하게 또는 은근한 핍박 세력으로 살았던 자신을 무조건 대신 사 주셔서, 예수 믿게 해 주신 사랑을 어찌 잊겠습니까?

바울도 물론 선택을 강조합니다. 부르심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강력하게 자신을 예수의 것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생명 다 바쳐서 주를 위하여 살아도 갚을 길 없는 빚진 자로 기쁨으로 살고자 합니다. 이렇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실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나를 예수의 것으로 만드사, 성도라는 소중한 신분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때마다 큰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예수처럼 소중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일 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성도의 삶을 강조합니다. 1절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또는 2절의 영원한 생명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요한은 예수에 대하여 들었고, 보았고, 손으로 만졌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요한은 예수를 체험했다고 증거합니다. 예수에 대하여 들었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들은 것도 되고,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는 뜻도 됩니다. 예수를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뜻도 되고, 예수에 대하여 확실한 체험이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리고 예수를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와 예수 말씀에 대한 확실한 증거와 깨달음과 체험이 있는 자가 성도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성도는 내가 깨달은 대로, 내가 본 대로, 내가 체험한 대로 예수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왜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까? 예수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은 윤리에 걸맞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 윤리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나라에 알맞는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까? 그들이 비윤리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확실하게 윤리적이요, 세상법으로 보나, 교회법으로 보나, 거의 완벽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들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강조하신 것은 이런 세상 윤리와 법도를 오히려 뛰어넘어 의와 인과 신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 알맞은 삶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처럼 사는 성도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예수에 대하여 들었고, 예수를 보았고, 예수를 만졌기 때문에, 예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가 얼마나 소중한 삶을 사셨습니까? 자신의 것을 다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셨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 놓으신 분이니, 소중하고도 소중한 분입니다. 이런 예수를 만졌습니까? 이런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이런 예수에 대하여 들으셨습니까? 그러면 예수처럼 소중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영광돌려야 합니다. 예수처럼 살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큰 축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보장은 너무 소중합니다.

유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젖동생 유다가 기록한 말씀에 나타난 성도의 모습은 거의 감동적입니다. 유다는 다른 성경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표현으로 성도를 정의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은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유다도 성도를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부연하여 설명했습니다. 성도는 부르심도 받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있는 행복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표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물론 이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가 지켜주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맥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키시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입은 자 성도들을 지키시는 것인가?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분명히 부르심을 입은 자인 성도들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문장의 흐름으로 볼 때에 성도를 지키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왜 예수 때문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보실 때마다, 성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르심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흘리신 그 보혈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 한 방울이라도 헛되이 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성도들을 보존하십니다.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내가 귀중해서가 오히려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귀중해서, 성도들을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성도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종종 건강이 자신을 낙심하게 만들고, 재물과 직장과 자녀와 세상과 주변이 자신의 힘을 빠지게 만들어도, 결코 예수의 보혈을 인한 하나님의 지키심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의 찬양을 올려야 합니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겠다는 찬양을 힘차게 부를 때마다 주께서 큰 축복과 능력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 바울이 강조한 예수 그리스도의 것과 같은 너무나 소중한 성도의 신분을 기억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직분과 신분과 명예보다도 소중한 성도라는 신분에 넘치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때마다 주의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답게, 예수처럼 소중한 삶을 살 때마다, 주변에 복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며, 스스로도 감격하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는 표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방에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보장이 언제나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 바라보고 나아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성도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