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26, 15장 26-27절 성령님, 진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 옥한흠 목사
설교제목 : 성령님, 진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설교본문 : 요한복음 14:26,15:26-27,16:7-15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어 령 교수가 쓴 「아들이여 이 산하 를」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속 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나옵니 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가꾸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 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어떤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 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를 만 나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아니면 밖에 내 놓고 주무세요?"
그 할아버지는 질문을 받고 금방 대답을 할 수 없 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을 못한 일인데 오늘밤에 한번 자 보고 대답 해주마."하고는 그냥 돌려보냈 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에 수염하 고 씨름을 했습니다. 이불 속에 넣 고 자니 답답하고 내놓고 자니 이상 하고 밤새도록 수염을 가지고 씨름 을 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그 수염이 잘 때 이불 속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미처 생각을 못했다가 이제 그것을 의식 하니까 그렇게 불편하더라는 이야기 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가끔 이런 할 아버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십니다. 모든 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내가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지 밖에 계시 는지 하고 질문을 하면 선뜻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펴 놓고 있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내가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성령 받았는 지 안 받았는지를 마치 답안지를 놓 고 채점하듯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 록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비추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이 말씀 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성 령하고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하 는 것을 느끼게 되면 마음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십 시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성령 이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우선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보십 시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 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 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 십니다. 여기서 진리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16장 13 절을 보십시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 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 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리라."
성령은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런 데 그 진리의 내용은 성령 자기 자 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듣는 것만 가지고 말합 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들려주시 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가 들려주시 는 진리만을 성령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장래 일에 대 해서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장 래 일이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하 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14절에서는 또 이런 말을 했 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 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 음이니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 고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다고 했습 니다.
여러분 성령에 대해 조금 정리가 되실 줄 압니다. 성령은 진리를 말 하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그리고 진 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은 자기 자신을 놓고는 말씀을 많이 않 으십니다. 아무리 성경을 이리 저리 읽어보아도 성령이 자기를 놓고 무 슨 이야기하신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 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 스도를 찬송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 령이 하시는 특별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입니다. 가끔 보면 성령 충만이 바로 예수 충만이라는 진리 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교회 안에 예수편이 있고 성령편이 있는 것처럼 어떤 사 람은
"예수님, 예수님"하고 기도하 고, 어떤 사람은
"성령님, 성령님"하 고 부릅니다. 또 어떤 목사는 「성 령님, 안녕하세요?」하는 책을 써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을 불 러야 될지, 예수를 불러야 될지 한 참 헷갈리게 만든 그런 경우도 있습 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님은 다 한 하나님이시니까 누구 이름을 불러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법칙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아버 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 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또 누구의 이름으 로 기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 가끔 가다 가 '예수님, 도와주세요' 하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누가 우리 의 연약함을 돕느라 기도합니까? 성 령입니다. 성령이 우리가 기도하도 록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움 을 받아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끔 '성 령님, 도와주세요.' 하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만 무작정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님, 성령님'하고 기도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기도입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시 고 우리로 하여금 진리 되신 예수님 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입니다. 이것이 방금 읽은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리라
다음으로 우리가 살필 것은 성령 이 우리에게 오시면 무엇을 하시느 냐, 어떤 일을 하시느냐 하는 것입 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 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 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십 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 절을 한번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 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 이요."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 합니 다. 예수님을 전파하게 합니다. 예수 님을 간증하게 합니다. 이것은 성령 이 하시는 독특한 사역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예수를 증거 하면 이 세상에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납니다. 16장 8절을 보십 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그 다음에,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먼저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 시면 그 증거의 말씀을 듣는 세상 사람들이 책망을 받는 일이 일어납 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가책을 받 게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가책을 받 게 만듭니까? 첫째는, 죄에 대하여 가책을 받게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을 보십시오.
"죄에 대하여라 함 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무엇이 죄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 입니다. 세상 사람은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 이 오셔서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나 님의 말씀, 곧 복음을 듣게 하시면 당장 가책이 와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보내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게 하신 예수 그리 스도가 나의 구원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분을 박대했구나. 그분을 안 믿었구나. 그분을 30년이 지나도록 이때까지 내 마음에 영접하지 않았 구나. 내가 큰 죄를 범했다. 정말 하 나님 앞에 큰 죄인이구나.'하고 깨 닫게 만듭니다. 이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의에 대해서 가책을 받 게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 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 요."
의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 가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의입니 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의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뭔가 선한 것을 한 것을 들고 나와 가지 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기를 바라 고 은근히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 나 하나님은 그것을 전부 쓰레기통 에 던지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 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선한 일 을 많이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휴지 조각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거룩하 신 하나님 앞에 그까짓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의라는 말입니다. 그래 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주셨습 니다.
"네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이 의를 꼭 네가 소유하고 와야 한 다."
그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 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 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의의 옷 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 님이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아 주시 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의가 되신다는 것을 모릅 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 '내가 지금까 지 믿고 있던 의는 아무 쓸모가 없 구나. 예수님만이 나의 의구나. 이 예수님을 붙들어야 되겠다. 믿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 니다.
셋째는, 심판에 대하여 가책을 받게 됩니다. 심판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 이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 으로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 다. 지금 우리 눈에는 세상에 아무 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라!"고 외쳤기 때문 에 그 음성을 듣지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 여 있습니다. 이 세상 임금 사탄은 이미 심판을 받아서 하늘에서 쫓겨 나와서 지금 세상에 추락되었습니 다. 지금 집행 유예를 받고 있을 뿐 이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되 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 을 증거 하면 사람들이 마음에 '내 가 예수 안 믿은 게 죄구나. 예수님 만이 나의 의구나.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구나.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 믿어야 되겠다.' 하는 가책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을 보십 시오. 제자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외 치자마자 사람들이
"형제들아. 우리 가 어찌할꾜?"
하면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이 하시 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오셔서 진리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시 고, 진리를 증거 하십니다. 이 세 가 지가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 니다.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
이제 드디어 주님이 예언하신 성 령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제자들 도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의 영 적인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성령 받기 전에는 제자 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웠습니 까? 예수님의 말씀을 도대체 알아듣 지를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 장만 봐도 그런 장면이 몇 번 나오 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 시겠다고 말씀하니까 베드로가 무엇 이라고 말했습니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요13:36) 도무지 이해 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기 위 해서 십자가의 길을 들어선다고 말 씀하실 때 빌립은 무엇이라고 말했 습니까?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14:8) 완전히 동문 서답 아닙니까?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 의 형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캄캄 해 가지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을 제대로 이해를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 하나 하나의 의미를 전혀 깨우치지를 못했습니 다. 어두움에 갇혀 있었지요. 우리가 가끔 전도하러 나가서 사회적으로는 박사라고 하는 분들도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을 이야기하면 도무지 알 아듣지 못하는 것을 우리 가끔 보지 않습니까? 심령이 캄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 셔서 그들을 감동하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금까지 그들의 마 음에 의문사로 남아 있었던 것이 감 탄사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이전 까지 퀘스천 마크만 달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의문들에 대해 해답 을 얻게 되니까 의문사들이 '와!' 하는 감탄사로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교훈들과 눈 으로 보았던 표적과 이적 기사가 무 엇을 의미하는가를 환하게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 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셨는지 설명 을 안 해주어도 그들은 다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짧은 기간인 데도 나중에 성령 충만해서 설교 할 때 구약에 있는 시편과 요엘서를 꿰 뚫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지 않습니 까? 언제 베드로가 구약 성경을 그 렇게 공부해 가지고 해박해졌을까 요? 공부할 틈이 없었을 뿐더러 공 부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구약 성경이라고 하면 큰 두루마리 였는데, 이런 것은 성전이나 회당에 나 있었지, 개인은 소유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어디에 가서 구 약을 펴놓고 일일이 공부한다는 것 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가 시편과 요엘서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을 얼마나 힘있게 증거 합니까?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 활을 여러분이 몰라서 그러는 것입 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모든 것 을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 울이십시오. 내가 다 설명해 주겠습 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가 갑자기 그렇게 변했습니까? 성 령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 자 초자연적인 기억력이 살아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가 계속 말씀을 듣고 있는 요한복음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신 지 60년 후 내지 70년 후에 기록 된 성경입니다. 이 책을 쓴 요한은 이미 나이가 80에서 90에 들어가는 고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리가 요한복음을 읽으면 마치 예수 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생생하게 받아 쓴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것 은 상상도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요 한복음이 예수님이 떠나신 지 60년 내지 70년 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모든 학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사 실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의심의 여 지가 없는 일입니다. 60년 내지 70 년이 지난 후에 그것도 나이가 90에 가까운 고령의 사람이 그때 일을 펜 으로 기록한다고 할 때 어떻게 이처 럼 상세하고, 세밀하고, 정확하게 기 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 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니고는 절 대 불가능합니다. 성령이 제자들에 게 임하자마자 이처럼 예수님의 말 씀을 기억나게 하는 역사가 있었습 니다.
또 성령이 임하자마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모 든 사람을 향하여
"이 예수를 하나 님이 살리신 지라 우리가 다 이 일 에 증인이로다"(행3:15)라고 외치면 서 예수를 믿으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예 수님이 성령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 이 진리였다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들을 통해서 입증된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나를 가 르칠 것이요, 나를 기억하게 하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제자들에게 그대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조명해 주시는 성령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 자연 이 런 질문이 생깁니다. '제자들에게 일 어난 이 사건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가? 제자들이 받은 성령을 우리도 받았는데 제자들에게 일어났 던 그 초자연적인 기억력이라든지 예수님이 하신 일과 눈으로 본 모든 것에 대해서 깨달음이 왔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신비한 일들 이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 씀 드린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 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하 신 일을 일컬어서 흔히 신학적으로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베일 에 가리워 있던 것을 하나님이 열어 서 보게 함으로서 제자들은 오묘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들 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을 직접 목격하고 만났습니다. 예수 님의 모든 이적 기사들을 다 보았습 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 니다. 성령이 임하시자마자 그들은 그 모든 것의 의미를 꿰뚫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사실들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겼습 니다. 그래서 기록된 것이 우리가 들고 있는 신약 성경 아닙니까? 그 러나 이와 같은 계시는 제자들에게 만 해당되는 성령의 영감입니다. 제 자들이 간 다음에는 계시를 받는 영 감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경 말씀이 완성되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거의 18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들고 있는 이 66권 성경 외 에 성경이 더 추가된 것이 없습니 다. 만약에 누군가 추가했다면 이것 은 이단이지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하신 일은 계시였습니다. 그들은 그 계시로 인해 보고들은 모 든 것을 깨달았고,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으로 남겼던 것입니다(딤 후3:16). 제자들에게 일어나는 그런 초자연적인 기억력은 오늘 우리에게 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여러 분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성령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실까요?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실 까요? 우리에게도 기억 나게 하실 까요? 우리에게도 증거 하게 하실 까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보 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해서 진리를 깨달았지만 우리는 제자들이 기록해 서 남겨 놓은 계시의 말씀을 근거해 서 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기억하고, 증거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것이 차이점입니다. 제자들은 기록 된 말씀의 근거가 없이 하나님의 진 리를 깨달았지만 우리는 기록된 성 경 말씀을 근거해서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배우고, 깨닫고, 기억하 고,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 의 이와 같은 역사를 놓고 신학적으 로 '조명'(illumination)이라고 말합 니다. 무대에 가면 조명 장치가 있 지 않습니까? 적당한 빛을 밝혀서 그 무대의 연출을 효과적으로 만드 는 것이 조명의 역할입니다. 마찬가 지로 성령께서도 우리가 기록된 말 씀을 손에 들고 펼 때마다 우리 마 음 눈을 열어서 그 말씀을 환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조명이라 고 그럽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 을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 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셔서 말씀 에 기록해 놓은 모든 축복들을 알도 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 주셨 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어거스틴이 성령의 조명을 설명 하기 위해 알아듣기 쉬운 비유를 한 가지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을 가 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보기 위해서 는 빛이 필요합니다. 빛이 비치기만 하면 우리는 눈을 뜨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 음의 눈은 우리 스스로 떴다 감았다 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은 성령이 오셔서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이것 을 '조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아니하면, 성령이 감동 하셔서 열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 는 성경을 천 번을 읽어도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칼빈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한번 성령의 손에 의해 끌려서 하나님 말 씀 앞으로 나가게 되면 우리의 지성 과 마음은 높은 경지로 들려 올라갑 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시력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비밀한 일 을 깨닫고 그 말씀을 기뻐할 수 있 는 경지로 끌어 올려집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시력을 가지고 이전에는 보려고 해도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하 던 것을 지금은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을 조명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성령 받으셨으면 이와 같은 성령의 조명이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펴놓고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빛을 비친 듯 밝게 깨달아지고 기억나고 그 말씀을 통 해서 마음에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 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 받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설교 듣는 모습 을 보면 여러분 모두가 성령을 받으 신 분인 줄을 저는 확신할 수 있습 니다. 성령이 마음을 열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지 않으면 이런 설교를 못 듣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수한 이야기를 가지고 울렸다 웃 겼다 하는 설교 같으면 성령 받은 사람이나 안 받은 사람이나 웃고 즐 거워하겠지만 옥 목사처럼 이렇게 재미없는 설교를 그것도 어떤 때는 40분, 50분씩 하면 참 보통 고역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심정 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일 날 집에 돌아가면 우리 어 머니는 가끔 제게 이런 핀잔을 주십 니다.
"너, 설교 좀 짧게 해라. 20분 만 해라."
제 건강을 걱정해서 하시 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지만 설교라 는 것이 무슨 순서를 채우는 어떤 형식이 아닌 이상, 설교를 통해 성 도들이 은혜를 입으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그 영혼이 힘을 잃고 죽게 될 만큼 중요한 것인 이상, 마치 어 떤 일을 해치우듯이 그렇게 가볍게 설교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 니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도록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 까? 그런데 옥 목사의 재주로는 도 무지 20분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 분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서 그 말씀 이 하나의 핵 폭탄처럼 터지는 역사 가 나타나기를 사모하면서 자꾸 시 간을 끌면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입장에서 40분 동 안 설교를 듣고 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웬만하면 다 고개 숙이고 잡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이 거의 없습 니다. 모든 분들이 눈을 아주 똑바 로 뜨고 저를 이렇게 쳐다보고 계십 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온다는 말이 지요. 또 어떤 분은 고개를 끄덕끄 덕합니다. 성령이 그 마음에 조명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것을 보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구나. 나에게 세 상의 영을 받도록 하지 않고 성령을 받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다 알게 하시는 구나.'하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막 떨립니다. 흥분을 합니다. 성령을 주 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 다.
성령의 조명을 잘 받으려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 의 조명을 좀더 잘 받을 수 있을까 요?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 다. 성령이 비록 우리 안에 계시기 는 하지만 우리가 성령을 어떻게 대 우하느냐에 따라서, 성령이 우리 마 음의 눈을 활짝 열어주시기도 하고, 침침하게 내버려두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성 령이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힐 수 있도록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펴기만 하면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영광스러운 음 성을 들으면서 우리 영혼이 기뻐 뛰 는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 니까? 누구 말대로 우리 세포가 춤 을 추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면 얼마 나 좋겠습니까?
개인적인 이야기라 죄송합니다만 저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 외국에 나가든지 하 면 조금 시간을 내어서 엉뚱한 데를 갑니다. 차를 몰고 제가 원하는 곳 에 가서 5시 내지 5시 반까지 준비 하고 앉아 있으려면 적어도 아침 4 시 이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장엄 한 태양이 어두움의 장막을 열어제 치고 찬란하게 솟구치는 그 장면과 아침 태양에서 퍼지는 황금 햇살이 온 천지를 장식하는 그 장엄함은 그 시간에 안가면 못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찍는 사진들 가운 데 참 감동적인 사진들이 많이 나옵 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잠자고 있지만 피곤한 몸을 끌고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어떤 산 위에나 아니면 들판 아무도 없는 데 앉아 기다리면서 기도합니다. 그 러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그 장면을 보고, 또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 다. '늦잠 자는 사람은 죽었다 깨도 이런 영광스러운 장면은 못 본다. 부지런하게 일어나는 사람만이 이것 은 즐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특 별한 은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 령을 모시고 살기는 하지만 정말로 성령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 마 음을 환히 밝혀주는 이런 황홀한 은 혜는 우리가 태도를 바르게 가질 때 만 가능합니다.
첫째로, 지도자들로부터 여러분 이 부지런히 배우셔야 됩니다. 하나 님께서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신 것 은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 도자는 매일자기가 남을 가르쳐야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연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 도자들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 경에는 지도를 받지 않아도 읽자마 자 금방 깨달아지는 아주 기본적인 말씀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굉장 히 어려운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안 배우면 모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수양관에서 제자훈련 지도자 컨벤션을 하면서 저는 어떤 강사로부터 희한한 말을 들었습니 다. 어떤 부흥사가 어떤 교회에 와 서 집회를 인도하신 일이 있는데, 며칠은 설교를 잘 하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 다.
"신명기 22장 5절에 보면, '하나 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 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 한 자니라' 하는 말씀이 있지 않습 니까? 제가 목사 생활을 오래 했지 만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이 말씀 의 의미를 깨닫고 보니 '내가 잘못 했구나. 내가 잘못 가르쳤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교인들에게 다시 지시 를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 옷을 입 으면 안 된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 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는 여자가 바지 입고 오는 일은 절 대 허용할 수 없다. 여자는 치마를 입을 것이요, 남자는 바지를 입을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하 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려고 여 자가 바지를 입고 나오는 법이 없습 니다. 이 교회도 이 말씀대로 순종 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되는 지도자도 이렇게 헷갈릴 때가 있습 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 안에서 구약에 있는 모든 율법 이 완성되었는데, 이 마당에 무슨 옷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교역자도 구약과 신약의 계시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잘못 가 르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평신도가 안 배워서 되겠습니까? 그 런데 교회 안에 보면 예수 믿은 지 오래되신 분일수록 잘 안 배웁니다. 다 안다는 것이지요. 상당히 중요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배우는데 게으릅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 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배우십시오. 그래야만 성령이 우리 마음을 항상 밝게 비춰줍니다.
둘째로, 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리 십시오. 성경을 편다고 해서 금방 깨닫습니까? '주여, 가르쳐 주옵소 서' 라고 한두 마디 기도한다고 금 방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 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텔레비전의 연속 극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매일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아직 방 영 시간도 되기 전에 연신 시간을 체크하고, '오늘 저녁에는 그 아가 씨가 어떻게 될까?'하고 궁금해하면 서 마음이 벌써 거기에 가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 님의 말씀을 놓고 그렇게 마음을 주 는 일이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이런 명령 이 있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사모하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 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 요, 젖이요, 영혼의 우유입니다. 그 리고 '사모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 에피포테오'(epipotheo)인데, 얻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듯이 사모한다 는 뜻입니다. 시편 42편 1절에 보면 물을 찾는 사슴이야기가 나오지 않 습니까?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 물을 찾기에 갈급 함 같이 내 영혼 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이 '갈급하다'는 말이 바로 '신령한 젖 을 사모하라'고 할 때 '사모하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목이 타서 물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모하면 그 런 심령에는 성령의 태양이 떠오릅 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큰 기쁨을 맛봅니다. 살아 계신 예 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만나는 행 복과 감격을 맛봅니다. 그러나 말씀 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서 형식으로 한두 줄 읽고 넘어가는 식으로 해서 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은혜를 절 대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주일학교 소년부 학생들이 수양관에서 성경 읽기 캠 프를 했습니다. 마침 제가 수양관에 있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 봤습니 다. 300명이 넘는 소년부 학생들이 누가복음하고 사도행전부터 요한계 시록까지, 그러니까 신약의 거의 전 부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목요일부 터 토요일까지 3일 동안 성경을 놓 고 읽어내는데, 제가 참 놀랐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어린애들에게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나?'하고 생각했는 데, 들어가 보고 제 생각이 잘못됐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펴놓 고, 어린애들이 읽기 쉬운 현대어 성경을 펴놓고 앞쪽 강단에 교사 두 분이 앉아 가지고 차례대로 읽으면 애들이 어떤 때는 같이 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들으면서 읽기도 했습니 다. 제가 옆에 가서 어떤 학생 뒤에 서서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이 놈 이 얼마만큼 잘 읽나?' 하고 봤더니 빨간 연필을 들고 읽다가 자기 마음 에 드는 데는 쫙 밑줄을 긋고, 또 긋고 하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이었 습니다.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제 가 옆에 와서 서 있는 것도 모를 정 도였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하 나님, 우리 한국이 소망이 있습니다. 이 어린 자녀들이 자라면 이 나라가 소망이 있습니다.'하고 감사했습니 다. 성령이 그 어린 순진한 마음을 환하게 비취니까 그 말씀이 마음속 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뭔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까 연필을 긋 지, 긋고 싶다고 그을 수 있나요? 그래도 뭔가 깨달아지니까 쑥쑥 긋 는 것이 아닙니까? 참 놀라운 이야 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음을 열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 는 고통의 뿌리는 경제문제가 아닙 니다. 직업 문제나 실업 문제도 아 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영혼의 문 제입니다. 영혼이 기아를 당하고 있 습니다. 영혼이 배고파하고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속 사람이 강건할 수 있는 양식을 먹지 를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쓸 데 없는 신문지를 들고 씨름하고, 쓸 데 없는 책을 가지고 마음속의 허전함을 매 꾸어 보려고 애를 씁니 다. 그러다가 그것으로도 안 되면 마약으로 가고, 술집으로 가고, 도박 으로 가고, 여자로 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내면의 세계가 병이 들었습 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40일 동안 금식하고 그야말로 기절을 할 정도 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그 배고픈 것을 가지고 계속 도전했 지 않습니까?
"너, 배고프지? 돌 가 지고 떡을 만들어 먹어라."
요즈음 우리가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니 까 마귀가 와서 이 경제문제를 가지 고 계속 흔들지 않습니까?
"너, 이 래서 어떻게 살 거냐? 월급이 반으 로 줄었는데 어떻게 살 거냐? 너, 내일 모레 직장을 잃으면 너 어떻게 될 거냐?"
계속 흔들잖아요? 그러니 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셨지만 마귀가 배고픈 문제를 가지고 흔들 때 이렇게 대답 하시지 않았습니다.
"나, 죽겠다. 나 좀 살려줘. 떡 좀 가지고 오라."
주 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 다. 내가 아무리 배가 고파 지금 죽 을 지경이라도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예수 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양보하 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의 건강 을 회복하고 내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면 영도 살고 육도 사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 말씀이 내 영혼을 소생시킬 때까지 하나님 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성령에게 의 존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는 순간, 그렇게 걱정스러 웠던 것이 별로 걱정이 안 됩니다. 그렇게 무거웠던 십자가가 가벼워지 는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살 까를 생각하기만 하면 돌아버릴 것 같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없어 집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꼭 붙들고 계시는 것을 느낍니다.
"내일 염려 는 내일 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 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이 말씀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 게 되면 그 사람은 담대해 집니다. 우리 고통의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 니라 속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먹지 못해서 내면의 세계 가 기갈을 당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은혜의 말씀이 너희 를 든든히 세우리라."하신 약속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 러면 그 모든 문제를 담대하게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순종하십시오. 말씀을 깨 달았으면 그 다음에는 순종해야 됩 니다. 말씀이 내 마음의 밭에 뿌려 지면 뿌리가 내리고 자라야 됩니다. 자란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순 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그 결과 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확장 됩니다. 엄청난 축복이 옵니다. 요한 복음 14장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 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 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신다고 했습 니까?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사 랑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 님의 특별한 사랑을 체험한다는 말 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이 누구입니까? 자기가 원하는 사랑 을 마음에 담은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으면 세 상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그에게 자기를 나 타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나타낸 다'는 말을 집에 가서 한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보여 주실 까요? 보는 사람만이 알지요. 예수님을 한번 만 나 보십시오. 온 세상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성령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근거하여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진리 를 기억나게 하시고, 진리를 순종하 게 하시고, 진리를 증거 하게 하십 니다. 여러분 모두 이 성령을 모시 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 로 삼아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아름다운 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