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20-33절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 옥한흠 목사

재영구리 2023. 3. 3. 10:10
반응형

설교제목 :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설교본문 : 요한복음 12:20-33
설교자 : 옥한흠 목사님


제가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을 따 라서 수없이 불렀던 찬송가들 중에 지금도 부를 때마다 진한 감동에 빠 져들게 하는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블랜디(Blandy)가 작곡한 '예수 나 를 오라 하네'라는 찬송입니다. 어 릴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어 른들을 따라 불렀지만 나중에 철이 들어 그 가사에 담겨 있는 심각한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후로는 비 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 찬송을 불렀 던 기억이 납니다. 이 찬송의 가사 를 한번 보십시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 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려네."

원래의 영어 가사를 보면 훨씬 더 실감나는 내용입니다.

"십자가를 지 고 나를 좇으라고 하시는 주의 부르 심 들리네. 그가 인도하는 대로 어 디든 나는 가리라. 항상 그와 함께 가리라."

2절 가사는 훨씬 더 비장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 지/ 주와 함께 가려네."

가사의 의 미를 깊이 깨닫고 있지 못하는 사람 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부 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심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 찬 송가 가사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 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려 고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들을 앞에 놓고, 특히 자신이 예루살렘에 입성 할 때

"호산나 이스라엘 왕이여!"라 며 환호하던 그 군중들을 앞에 놓고 비장한 말씀을 한 마디 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 라!"

다시 말하면

"너희가 나를 섬 기려고 하면 나를 따라 오라"는 것 입니다. 우리를 긴장감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코 단순하다고 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쁘게 받지 못하고 부담 스러워 하는 믿음 약한 분들도 상당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일반적으로 현 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으십 시오."라는 말은 부담 없이 받습니 다.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쉽게 합 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까? 주님을 따라갈 각오가 되 어 있습니까?"라고 하면 매우 부담 스러워 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렇다 고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락방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합니다. 나름대로 크고 작은 일 들로 봉사하느라 교회를 제 집 드나 들듯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 님을 섬기며 따라야 한다는 말에는 마음을 활짝 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쉼을 얻기를 바라 면서도 예수님이 메라고 하시는 멍 에는 별로 메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가는 일에는 가능하면 뒷전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모순된 행 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 로 들어오실 때 무리가 뭐라고 소리 쳤습니까? 손을 들고

"호산나 이스 라엘의 왕이시여!"하며 환호하지 않 았습니까? 여기서 '이스라엘의 왕' 이라는 말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작 은 영토의 왕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라는 말이요, 전 우주를 다스리 는 영원하신 왕이라는 말인 것입니 다. 우리 중에 그들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들 예 수님을 왕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 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왕 되신 예 수님을 따르고 섬겨야 하지 않겠습 니까? 입으로는 예수님을 왕으로 믿 고 고백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분을 섬기고 따르기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 지는 몇몇 대선 주자들 주변에 대학 교수들과 세계 명문대 석박사 학위 를 가진 석학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 다고 합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 은 정치 분야를 지원하고,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경제 분야를 지원하 고, 기타 자기 전공을 따라 적절한 영역을 맡아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 들은 어떤 경우에는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며칠 밤을 새기도 합니 다. 월급이나 보수를 받고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 전히 무보수로 일합니다. 그러나 우 리는 왜 그들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인물이 대권 을 손에 쥘 날이 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리게 될 영광이 곧 자신의 영광이 될 수 있다고 믿 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헌신하려는 사람들 이 이와 같이 줄지어 서는데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왕이 되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그분을 섬기 고 따르기를 자원하지 않는다면 그 가 아무리 멋진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도 그의 믿음을 정상적인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안 통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의 대통령에게 우리 가 소망을 둘 수 있을까요? 그가 우 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는 새 대통령을 뽑아 놓고 반년이 채 가기도 전에 실망하며 불평불만 을 늘어놓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서 꿈과 미래를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지극히 높은 보좌에 앉으셔 서 정의와 사랑과 자비로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사망도 없고, 아 픔도, 눈물도 없는 그 나라만이 우 리의 꿈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그렇 다면 우리가 누구를 섬기고 따라야 할지는 너무나 자명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이미 몰락의 길로 달 려가고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보십 시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 니다.

"이제 이 세상에 심판이 이르 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 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안 남은 줄 알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 다. 이 세상의 임금들은 사탄의 권 세 아래서 온갖 부정과 압제를 자행 하며 자기의 욕심을 채웁니다. 그러 나 그 역사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권 치고 무 너지지 않는 정권은 하나도 없습니 다. 우리가 이런 세상 나라와 그 임 금을 위해 몸바칠 이유가 어디에 있 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32절을 보 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땅에 서 들린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주 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을 의미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가리키고 있 습니다. 조금 있으면 주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재림하실 것입니 다. 그리고 모든 족속 중에서 구원 받은 백성들이 구름 떼와 같이 주님 앞으로 몰려 들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가 대망 하던 하나님 나라가 우 리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 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완전하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느 나라 임금을 위해서 섬 기고 따라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수년을 믿었음에 도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청산 유수처럼 말하지만 '예수님을 섬기 고 따르십시오.'라는 말을 부담스러 워 하는 분이 계신다면 저는 감히 이렇게 권고하고 싶습니다.

"안 믿 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세상 끝 날까지 그런 믿음 가지고 살 생 각은 추호도 하지 마십시오."

종이 되라

26절로 다시 돌아갑시다. 예수님 은 자기를 둘러싼 무리들에게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여기서 '섬 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코네오 '로 '집사가 되다'라는 뜻입니다. 집사는 시중을 드는 종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다시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이 되 어 나를 섬기기를 원하는가? 그렇다 면 나를 따르라!"

저는 '나를 따르 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 처럼 종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이 세 상에 귀족이나 왕자처럼 고귀한 신 분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으로서 누리던 그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종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2:6,7)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짓눌리는 우리를 구원하 시기 위해 친히 종의 모습으로 내려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계실 동안 하나님한테 죽도록 충성 하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그는 이따 금 자신을 가리켜 '종'으로 표현하 시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7 절을 보십시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그는 이 세상에 서 시종일관 종의 삶을 사셨던 것입 니다. 스승 되신 주님이 우리를 구 원하시려고 한 평생을 종으로 사셨 다면 그의 제자 된 우리 역시 종으 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자라면 당연히 스승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종으로서 하나님께 얼 마나 철저히 순종하셨는지는 본문 2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계 셨습니다. 인간 치고 죽음 앞에서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 아 무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 을 입고 계셨기에 마찬가지였습니 다. 그는 자기 마음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 니 무슨 말을 하리요."

말로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두렵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이렇게 기도 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여, 나 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 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솔직한 심정이었습 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고백했습 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자기가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그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으로서 죽기까지 순 종하신 예수님은 더 나아가 자기를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종이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7절 이하에서 종의 일상을 비 유로 들며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종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 습니다. 이 비유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머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만 해도 우리 나라에는 '머 슴'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한창 바쁜 농번기가 되 면 머슴뿐만 아니라 주인까지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합니다. 해가 져 어두워지면 주인과 머슴이 다 집으 로 돌아옵니다. 주인은 집에 들어서 자마자 우물가로 가서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상 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머슴은 사정 이 다릅니다. 그가 하루 종일 들에 서 일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마루에 걸터앉아 마음놓고 쉬고 있을 수 없 습니다. 여자들은 당장 부엌으로 들 어가서 불을 때고 저녁을 지어야 하 고, 남자들은 농기구를 정리해서 헛 간에 들이고 장작을 패거나 물을 나 르는 등 기타 허드렛일을 해야 합니 다. 그러다 보면 앉아서 쉬기는커녕 얼굴 한번 제대로 씻을 틈도 없습니 다. 저녁밥이 다 준비되면 상을 차 려서 날라야 합니다. 곁에 대기하고 있다가 밥이나 반찬이나 물을 가져 오라는 주인의 잔심부름 시중도 들 어야 합니다. 머슴들은 주인 식구들 이 식사를 다 끝내고 편안히 쉴 때 에야 비로소 부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습니 다. 그렇다고 해서 여유 있게 노닥 거리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 닙니다. 먹고 나면 산더미 같은 설 거지 그릇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다 끝내야만 드디어 몸을 씻고 자리에 누울 수 있습니 다. 이게 머슴의 삶입니다.

그렇다고 주인이 그에게 수고했 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머슴은 원래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 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의 입 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7장1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 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라."

종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무슨 사례나 칭찬을 바라지 않는 법입니 다. 주인이 매정하다고 섭섭해하지 도 않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섬기는 자가 바로 종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모두가 자기에게 이와 같은 종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 고 섬길 것을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세상에서 하 나님을 위해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 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일

그러면 예수님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위해서 종으로 충성하셨을까 요?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그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하늘로 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 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 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 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 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충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버 지의 뜻이란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 하사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구원하는 것이었 습니다. 마태복음18장14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 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어린 아이 하나라도 구 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하는 것은 하 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 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까지도 빠짐 없이 구원하시고자 충성을 다했습니 다.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는 이 일 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는 오 늘 본문 23절에서도 분명히 나타납 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 렘에 온 헬라 사람들이 빌립을 통해 면회를 요청해 오자 주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 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 도다!"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얼 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헬라 사 람 몇 사람이 자기를 만나고 싶어한 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주 님이 이렇게 흥분하셨던 것일까요? 장차 이루어질 일을 내다 보셨기 때 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면 그때부터 모든 민족이 하 나님 나라로 들어오는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시온의 대 로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헬 라 사람들의 면회 요청은 단순한 사 건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헬라 인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방문은 머지 않아 모든 족속에게 구원의 문 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을 예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이 성 취될 그 날이 가까웠음을 보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그 만 큼 소중히 여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으로서 우리 역시 주 님처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의 뜻을 이루기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아직도 예수를 모른 채 죄 에 빠져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전심 전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서 영원히 저주받은 영혼을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일보다 더 중 요한 일은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 아 래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업에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보다도 더 앞세워야 할 소중한 일 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가 되어 자기의 젊음을 송두리째 불태우며 복 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만큼 위대한 사람은 없다고 할 것입니 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교사나 전도자들만큼 큰 존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앞세 우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정에다 우선권을 두고 정성을 쏟으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학문 에 생명을 걸고 노력하면 세계적으 로 명성을 날리는 학자가 될 수 있 습니다. 사업에 모든 정력과 시간을 쏟으면 기업가로서 기반을 든든히 닦아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일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입니다. 행복한 가정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명성을 얻게 된 학문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사업에서 이룬 성공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것이 되려면 하나님이 가장 중 요하게 여기시는 그 일과 연관되어 야 합니다. 우리가 왜 가정을 소중 히 여겨야 합니까? 이웃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적 인 분위기를 가지고 자녀들을 잘 키 우려고 합니까? 이 자녀가 다음에 자라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 니다. 우리가 왜 사업을 하기 위해 밤낮 정신없이 뛰어다닙니까? 하나 님이 물질을 주시면 그 물질 가지고 복음 사업을 위해서 기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불신자들 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우 리의 사업이나 가정, 학문과 연계가 될 때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 3장 24에서 바울은 노예 생활을 하는 사 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노 예가 섬기는 자는 자기 주인이지 예 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 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후 에 자기 동료들을 예수 믿게 했습니 다. 그들 가운데서 좀 똑똑한 사람 들은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주인 의 자녀들을 예수 믿게 했습니다. 이 자녀들을 통해서 주인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로마 제국이 300년 동안 기독교를 핍박했 지만 이러한 복음 사역은 끊임없이 이어져 나중에는 천하의 박해자 네 로 황제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자가 상당수가 생겨났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된 루트는 바로 이들 노예들이었던 것 입니다. 이들을 통해 퍼지게 된 복 음은 드디어 300년 후에 대제국 로 마를 완전히 삼키기에 이르렀던 것 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신분과 직 업이 비천한 노예라 할지라도 하나 님 나라를 위해,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의 삶을 이용하니 까 노예 생활 자체가 주님을 섬기는 가치 있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 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 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업, 재능, 젊음, 재물이 주님께서 죽도록 충성 하셨던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직간 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까? 그렇다 면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 시는 의미 있는 삶이요, 주님을 섬 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세상을 구원하는 일과는 별로 관 계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당신은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명 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 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루기 위해 예수님처럼 종되기를 싫 어하는 자는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 람입니다. 그렇게 살다 나중에 주님 앞에 무슨 면목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썩는 밀 알이 되라

둘째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처럼 썩는 밀알이 되어 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한 알의 썩는 밀 알 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시 말해 서 죽도록 충성하셨습니다. 24-5절 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 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 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 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것이 예수님이 종으 로 충성하신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우리도 예 수님처럼 썩는 밀 알이 되어야 한다 는 뜻인 것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늦가을 이 되면 아버지께서 밭에 보리 종자 를 뿌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씨앗들은 흙 속에 떨어져 있다가 혹 한이 되기 전에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잎새들은 작 고 가냘픈 모습으로 한겨울을 난 다 음 봄기운이 도는 2월 말경부터 왕 성하게 자라납니다. 저는 가끔 호기 심을 못 이겨 4,5센티미터에 불과한 새싹들을 쑥 뽑아 보았습니다. 그러 면 뿌리 채 딸려 올라옵니다. 그 뿌 리에는 종자로 뿌려졌던 보리 껍질 이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 다. 종자 속에 있던 알맹이는 새싹 을 내는데 자양분으로 다 사용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썩 어 싹을 틔운 한 알의 밀 알은 사오 월이 되면 누런 보리 이삭들을 풍성 히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 있습니까?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 의 보리 알 때문에 그런 풍성한 열 매를 맺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에서는 보리보다 밀을 많이 재배하고 있었습 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썩는 밀 알의 비유를 가지고 자기를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 를 가지는 말씀인지를 설명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 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많 은 열매를 맺기 위해 한 알의 밀 알 이 되어 썩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내가 십자가에 죽노라. 내가 죽어야 만 세상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구름 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 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십자가를 무서워 하여 회피한다면 이 세상에서 한 사 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말씀대로 행동에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제자들인 우리한테 자 기의 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내 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십자가에 서 죽었던 것처럼 너희도 많을 열매 를 얻기 위해 한 알의 썩는 밀 알이 되어 죽어야 한다."

'나를 따르라'는 말속에는 이러한 요구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알의 썩어지는 밀 알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 을 의미할까요? 본문 25절을 보세 요.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는 말씀 이 나옵니다. 이것은 썩는 밀 알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좀더 분 명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생명'은 헬라어로 '프쉬케'(psyche)인데, '목 숨'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이외에도 '자아', '뜻', '의지', '소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미워하라'는 말은 우리의 뜻이나 소원을 부인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에서는 이것을 '자기를 부인하는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 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 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기 위해 자기의 소원이나 뜻은 다 부정하고 죽였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 르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의 모든 것 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 이 곧 썩는 밀 알이 되는 길입니다.

찰스 스터드는 100여 년 전에 영 국에 살았던 사람으로 갑부의 아들 이자,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수재요,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크리 켓의 대스타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몰 려드는 바람에 식사도 제때 챙겨 먹 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야말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리 던 젊은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가정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무디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자연히 그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의 삶은 놀랍게 변했습니다. 자기가 이제 껏 누려왔던 인기나 명문 대학 출신 이라는 자부심, 집안이 부유하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같은 것들이 너무나 시시하게 여겨졌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 보 다 더 보람된 일은 없다는 것을 깨 달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젊음을 바치고자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 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버지께서 세상 을 떠나시게 되었고 그는 3만 파운 드가 넘는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습 니다. 그 당시의 파운드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유산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받은 유산을 몽땅 무디성경학교와 조지 뮬러의 고아원과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단체에 헌금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 아내와 함께 중국에서 18년 동안을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이후 6년 동안을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이렇게 장기간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선교하다 부부가 다 중한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양차 영국에 귀국했습니다. 영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스터드는 어떤 집회에 참석했다 가 그 곳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 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 었습니다.

"식인종이 선교사를 기다 립니다!"

당시 그는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천식을 앓게 되어 15년 동안을 고생해온 터 라 몸이 몹시 허약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벌써50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로 가려 고 하자 주변에 있던 거의 모든 사 람들이 만류했습니다. 그의 부인조차 말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프리카 선교사로 부르신다는 그의 확신을 꺾을 수 없 었습니다. 그는 만류하는 자기 아내 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 식으로 인해 지난 15년 동안 겪은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고통은 죽음의 고통이나 다를 바 없었소. 더군다나 내 몸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상태요. 왜 내게 이 제는 쉬고 싶다는 그런 유혹이 없었 겠소?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나는 잠시라도 쉴 수가 없소."

그는 병든 아내를 영국에 남겨둔 채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났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거는 도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가복음 8장 35절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 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렇게 자기를 완전히 제단에 올려놓 는 신실한 종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대우하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한 번은 그가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정 글을 헤치고 지나가게 되었는데, 29 마리의 당나귀 중 25마리가 죽고 4 마리만 살아 남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와 중에서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죽음의 정글에서 그를 지켜 보호하신 것입 니다. 더군다나 그는 70세가 되기까 지 무려 20년 동안을 아프리카 선교 에 헌신하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 습니다. 지금도 그의 사역은 그가 창설한 WEC선교회에 소속된 1,800 명의 선교사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 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에 있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에게 건강을 줄 수 없는 의사를 멀리하고 예수님께 상의해 보는 게 어떻소? 사랑하는 이여. 예수님께 가서 그 분께 당신을 드리시오. 그 러면 나와 함께 세계를 돌며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오. 반드시 그러리라는 것을 믿 고 있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나와 당신이 살아야 할 다른 길은 없다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도의 알파와 오메가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 리에게 자기를 따르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의 뜻, 나의 꿈, 나의 욕심, 나의 고집, 그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에 반하는 것은 다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더 높은 생의 기쁨을 위해서는 땅에 속 한 것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께 집중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 을 부인하라고 합니다. 주님이 기뻐 하시면 자기 목숨까지라도 내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내 영광을 버리라고 합 니다. 주님의 뜻을 위해 내 뜻을 포 기하라고 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는 나의 짧은 한 생을 주님의 제단 에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 로 썩는 밀 알이 되는 것이요, 예수 님을 섬기기 위해서 따르는 것이라 고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 년을 믿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는 생활을 하기를 원 하십니다.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요,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요 15:8).

주님은 이와 같이 죽도록 충성하 는 자에게 두 가지 보상을 약속하셨 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 니."

주님이 계신 곳에 함께 있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 지께서도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겨주신다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도 이와 비슷한 약속을 들려주십니다.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 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 이다."

주님이 영광을 누리는 곳에 서 주님을 위해 썩는 밀 알처럼 헌 신한 자들도 그 영광에 함께 동참하 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 리는 예수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종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썩 는 밀 알로 희생한 것처럼 우리도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우리 가 주부이든, 학생이든, 사회인이든, 직장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 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이 세상을 구원하는 귀한 일에 쓰임 받 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우리 인생입니다. 이 세상의 망할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다가올 영원한 나라를 위해 열매 맺는 일에 헌신하겠습니 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나 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을 시 작합시다. 우리의 젊음과 지식, 재 물, 시간, 이 모든 것을 세상을 구원 하는 일을 위해 사용합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복된 삶 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빛나는 삶 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가 장 영광스러운 일에 부름 받은 예수 의 제자들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한 시도 잊지 마십시오. 함부로 살다 그만 둘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그 신분에 걸맞는 인생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서야 합니 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 아!"

라고 하시는 칭찬을 꼭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