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베소서

에베소서 2장 10절 설교 더불어 함께 하는 삶 - 조용기 목사

재영구리 2023. 3. 16. 14:00
반응형

설교제목 : 더불어 함께 하는 삶
설교본문 : 엡2:1-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부모와 자식들은 더불어 함께 사는 한 가족입니다. 또 많은 가족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집단을 사회라고 하며 이 사회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가 바로 국가와 민족입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가족이나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은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를 함께 나누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IMF 경제 한파도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이웃들과 함께 고통을 나눔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 일에 대하여 적극적인 계획을 세우고 도움의 손길을 새해에는 베풀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를 떠나시사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인간과의 삶을 더불어 함께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반응형

 

첫째로, 예수님은 진짜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마음속에 알아야 됩니다.

많은 신학자들 중에 '예수님은 실제로 몸으로 오질 않았다. 예수님은 영으로 오신 것을 사람들이 실제로 오신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들이 환상으로 본 것이지 실제 육신으로 온 예수님은 아니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인간과 함께 되어 인간의 생사 고락에 더불어 함께 하셔야만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8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사신 이유는 그렇게 해야 사람을 구원하는 구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사로서 우리와 같이 와서 거한다고 해도 천사는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사람만이 사람의 죄를 대신 속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출생에 있어서 인간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알에서 깨어 나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 오른 것도 아닙니다. 우리처럼 여인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말씀하셨고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여인의 몸을 통해 우리 범인들처럼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출생에서부터 예수님은 우리와 더불어 함께 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성장에 있어서 인간과 더불어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양아버지 요셉과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랐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양아버지 요셉을 도와서 목수 일을 했고, 주님은 가족들과 한상에서 잡수시고 좁은 방에서 한 이부자리에 주무시고 인간과 더불어 성장하는 경험을 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고생하며 사는 인간 대중과 더불어 함께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오늘날 홈레스가 많지만 여러분 예수님이야말로 홈레스의 대장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거처 없이 정처 없이 다니시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 일에도 가난하여 굶주리고 버림받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는 인간들이 사는 죄와 불의의 세계, 추악이 꽉 들어 찬 지상 환경 속에 부평초처럼 더불어 함께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주님은 특별히 어떤 죄 없는 지역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시장 바닥에서 죄인들이 들락거리고 창녀들이 있고 술주정뱅이들이 있고 도박꾼들이 있는 그 한가운데 주님께서 오셔서 고통을 당하며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범인들이 다 체험하는 죽음을 더불어 함께 가졌습니다. 주님은 안 죽고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범인들처럼 죽음의 슬픔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죽음을 주님께서 당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라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뼈와 살과 피를 가지신 참 사람 중에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과 참으로 함께 하는 삶을 가졌습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인간의 대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사시면서도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셨고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어김없이 다 지켰기 때문에 죄 없는 자로서 우리 인간을 대표하여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우리가 오늘 알아보아야 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살도록 우리는 청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올라가셨는데 그 의미를 우리가 가슴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은 인간과 함께 더불어 함께 한 참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올라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로써 다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죄로 썩은 피를 가진 우리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맑은 피를 가진 깨끗한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속죄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죄를 청산하기 위한 제물로서 우리를 대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제물이 되어야 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제물이 되어 주셔서 죄 없고 흠 없는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셔서 그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께서는 자신을 우리 대속물로 주셔서 우리 죽을 자리에 당신이 들어가셔서 우리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에 와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에게 의지하면 그는 죄가 하나도 없이 청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용서받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마귀와 세상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로서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이 세상에 마귀가 꽉 들어 차 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신이요, 이 세상의 임금이요, 귀신으로 더불어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그 마음속에 세상으로 꽉 들어차고 정욕으로 꽉 들어차게 만들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도 예수님도 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썩어질 것 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마귀로 꽉 들어찬 이 인생들을 주님께서 구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 대신 제물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과 마귀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도 박살이 나고 세상도 박살이 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마귀도 그 모든 정사와 권세를 십자가에서 다 잃어 버렸고 세상도 다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을 통해서 세상이 물러가고 마귀가 쫓겨 나가고 천국이 임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점령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놀라운 체험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십자가에서 슬픔과 육체의 질병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로서 우리를 대신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질고를 걸머지고 우리 대신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슬픔을 갖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이 병들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요번 중앙 아시아에 가보니까 병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친 삶을 살고 가난한 삶을 산 그들은 병과 함께 더불어 삽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는지 하나님께서 오셔서 빗자루로 병을 쏵 쓸어버리는 그런 체험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실로 우리의 슬픔과 육체의 질병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 제물을 통해서 우리는 슬픔에서 해방되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는 그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저주를 청산하기 위한 제물로써 우리를 대신했습니다. 우리 대신에 제물이 되었어요. 고린서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예수님의 뜨거운 열정을 보십시요. 우리를 대신해서 가난의 제물이 되심으로 그 가난을 통해서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겠다. 주님이 우리 마음을 부요케 하고 우리의 삶을 부요케 하겠다. 그것이 주님의 뜨거운 소원입니다. IMF 한파를 당하여 더구나 실직하고 사업이 무너지고 직장 없는 홈레스가 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우리 위해서 가난하게 되시고 먼저 우리를 위해서 홈레스가 된 것은 홈레스가 된 사람들, 실직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도움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가 무슨 능력이 없겠습니까? 우리의 인간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도움을 받을 처소가 없고 사면초가라도 도움을 베풀기 원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면 거기에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홍해수를 가르신 주 예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못 해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한 것을 주께서 예비해 놓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난과 저주를 청산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이는 변하지 못할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과 지옥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로서 우리를 대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죽을 이유가 없는데 우릴 대신해서 죽음을 청산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죽음은 다 청산되어 버리고 음부도 다 취소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음도 정복되고 음부도 정복되고 예수님 안에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므로 우리의 인생이 당하는 이 모든 좌절과 절망을 그가 한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다 청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칠 때에 인간의 실존적인 절망과 고통을 다 대신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를 이제는 청하는 곳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더불어 함께 살았은즉 이제 너도 나와 더불어 함께 살자.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이쪽은 아담의 광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저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입니다. 십자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다 아담과 더불어 함께 사는 광야에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죄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좌절과 절망과 죽음과 고통과 들어 찬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주님이 매달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다 청산하고 십자가 저 건너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십자가 이편으로 찾아 와서 너와 더불어 함께 된 것처럼 너희들도 이제는 십자가를 통하여 저 건너편으로 건너와서 나와 함께 내가 만든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의 가나안 땅에 같이 살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더불어 함께 되신 것처럼 이제 우리는 십자가 저편으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삶을 나누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목적 때문에 아담 광야로 우리와 더불어 함께 되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청산하신 후 십자가 저 건너편에 그리스도 예수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너는 나와 더불어 살자 내가 너와 더불어 살았은즉 이제 내가 너를 끌어서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있는 이 세상 저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의 가나안 땅에 나와 더불어 함께 살자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청하는 처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사람이 살던 곳은 아담의 광야요,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사람이 사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경계선 저편에 만들어 놓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브리서 4장 9절에서 11절 말씀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뤄 놓은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다 청산하고 용서와 의가 있는 안식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죄를 청산한 것이 아니지요 믿고 순종함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을 다 멸하고 천국과 성령이 충만한 그 땅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제하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치료로 채워 놓은 그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주와 가난을 주님께서 멸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워 놓은 그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음의 공포와 좌절과 절망을 다 극복하고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을 극복하고 부활과 영생으로 초청하는 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중복음의 젖이 흐르고 삼중축복의 꿀이 흐릅니다.

십자가 바로 경계선입니다. 십자가의 이 쪽 편은 아담의 광야요 십자가 저 건너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가나안 땅입니다. 십자가 이쪽 편에 와서 우리 사람처럼 함께 살아서 우리를 끌어 안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담의 광야를 청산하시고 그 십자가 건너편에 주님이 만드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젖과 꿀이 흐르는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안식할 곳이 있다. 믿음으로 들어오너라 순종으로 들어오너라. 기도함으로 들어오너라고 말합니다.

구약에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이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 것은 믿지 않고 순종치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의 광야에서 사는 우리가 아담의 광야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 것도 역시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함으로 못 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미 일은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 놀리지 않고 주님이 다 청산해 놓았습니다. 이제 믿는 자들은 이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고 이제 우리가 예수님으로 더불어 함께 가나안 땅에 사는 것처럼 미래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는데 여러분 미래에 우리들이 들어갈 세계는 택하신 족속들만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원받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이 세상의 의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인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윤리적 도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이 종교인들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택함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우리는 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삽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왕들이요, 하나님을 끝없이 예배하는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삽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왕의 백성들입니다. 또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모두 다 왕들이요 모두 다 제사장들이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미래 하나님과 사는 세계는 이런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추하고 마귀와 저주가 꽉 들어찬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니 함께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거룩한 나라이지만 정말로 장차 들어가서 살 나라는 그리스도가 임금이시고 우리가 그의 신부요 그의 백성이요 함께 하는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가정의 권속이요 예수님의 신부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살 하늘 나라에 대한 것은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고 그 내용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 다 있어요.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보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에 어른이 되시고 우리는 그 자녀 권속이 되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새로움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세상과 더불어 살면 훗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더불어 함께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와 더불어 함께 되어 주신 에수님을 따라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하면 십자가 저 건너편 부활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고 주님 오시는 날에는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항상 함께 사는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마음속에 깊이 기억할 것은 예수님이 아담의 광야에서 방황하는 우리와 더불어 함께 된 것은 우리를 이끌어 십자가 저 건너편에 예수님이 세우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가나안 땅에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더불어 함께 살아 주신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를 통하여 자! 너도 이제 나와 더불어 나의 땅에 들어와 함께 살자. 내 살을 찢고 내 피를 흘려서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가나안 땅에 이제 나와 더불어 함께 살

자. 내가 죄악으로써 더불어 함께 했으니 이젠 용서와 의로 나와 더불어 함께 하라. 내가 마귀와 세상에 대하여 너와 더불어 함께 살았으니 너는 이제는 천국과 성령으로 더불어 나와 함께 살자. 내가 슬픔과 질병으로 너와 더불어 함께 하였으니 이제는 치료와 기쁨으로 나와 더불어 함께 살자. 내가 가난과 저주의 세계 속에서 더불어 너와 함께 했으니 이제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 곳에 나와 더불어 함께 살자. 내가 죽음과 지옥에 너와 더불어 함께 했으니 이제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너희들도 나와 더불어 함께 살자.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소원과 그 승리를 쫓아서 오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심으로 믿고 생활 속에 순종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믿습니다로 기도하면서 천국으로 들어가서 저 안식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기도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 우리를 건저 내시려고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시고, 그 다음 십자가에서 우리를 청산하시고 주님이 세우신 젖과 꿀이 흐르는 저 십자가 건너편 가나안 땅에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우리도 쉽니다. 믿고 의지하고 평안을 가지고 나갈 때 주님이 이룩하신 것을 우리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나안 땅에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담 광야에서 허덕이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젖과 꿀이 흐르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그 가나안 땅은 우리의 것이니 우리가 침노해 들어가서 그곳에서 안식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