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야고보서

야고보서 5장 13절 고난의 의미 - 조용기 목사

재영구리 2023. 3. 14.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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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고난의 의미
설교본문 :  약 5: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의 의미"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누구도 고난 당하는 것을 즐거워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전혀 고난을 당하지 않고 일평생을 살아갈 사람도 없습니다.

욥은 욥기 5장 7절에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의 의미를 알고 잘 대처하면 고난은 오히려 큰 축복으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고난을 기피하고 반발하면 고난은 무서운 파멸을 우리 생애 속에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는 징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 교육을 할 때 여러 번 말로써 훈계해도 자녀들이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가면 부모는 자녀에게 징계의 채찍을 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과보호해서 징계의 채찍을 들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방종하고 방탕하게 된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채찍으로 때려서 기른 자식이 나중에 장성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무서운 채찍을 내리시고 징계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징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잘못된 신앙을 깨우치게 하고 회개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탄식을 이사야서 1장 2~9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고 돌아서매 하나님께서 무시무시하게 징계의 채찍을 때리고 고난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행여나 회개하고 돌아올까? 하나님은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징계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을 반드시 징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옛말처럼 사랑하는 자식은 오히려 굶주려도 올바르게 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2장 5~13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징계 받을 때 회개하고 통회하고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크고 작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고난을 받을 무슨 잘못한 일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자행자재하고 나가지 않았는가?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일이 기억나면 우리는 회개하고 자복하고 그 길에서 돌아서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은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멀리멀리 도망을 치면 도망을 칠수록 점점 더 징계는 가혹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사건은 고난으로 넘치고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기적도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 가에 왔을 때 앞에는 창이란 홍해수요 뒤에 애굽의 바로왕이 전군을 동원해서 다시 이스라엘을 포로를 잡기 위해서 뛰어오니 그들은 샌드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고난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런 고난에 처하게 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역사에 보지 못한 위대한 기적을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홍해수를 갈라놓는 기적을 베풂으로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를 육지를 건너듯이 건널 수가 있었고 뒤를 따르는 애굽군들은 물이 도로 흘러서 다 수장되고 말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에서 길을 가는데 사흘동안 물이 없어 목이 말라 고난 당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일부러 그들이 고난 당하게 함으로 기적을 베풀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물을 발견했으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 나무가지를 꺽어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물도 달게 하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300백만 백성이 광야를 지나가는데 먹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양식이 갈한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심으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300백만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고 지나갈 수 있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 기회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하고 길을 가는데 소경된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이 장님이 된 것은 부모가 죄를 지어서 그렀습니까?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렀습니까? 그럴 때 주님이 대답하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진흙에 침을 뱉아서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니 이 사람이 실로암에 가서 씻으니 눈이 떠지고 말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했습니다. 이 사람이 장님된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끔 가다가 많은 고난이 다가오고 괴로움이 다가오는 것은 이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큰 기적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스스로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러한 재료를 허락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33편 19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4장 14~16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동안에 그 몸으로 모든 고난을 다 체험하셨으므로 고난 당한 우리들을 능히 건질 수가 있고 이해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여러가지 고난이 다가오거든 오히려 크게 기뻐하고 주님께 나가서 기도해서 고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신앙도 자라고 그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나타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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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고난은 변화한 내일을 만들어 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면 종국에 가서 큰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고난 당하지 않고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를 해산할 때 어머니는 많은 산고를 격지만 그를 통해서 아름다운 자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내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오늘에 수고와 고난을 통해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고난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고 더 복된 내일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요셉의 고난을 보십시요! 17살 때 형들에게 인해서 종으로 팔렸습니다. 여러분! 형들이 직접 그를 잡아다가 발가벗겨서 애굽에 종으로 팔았으니 그 요셉의 심정의 고난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11년 동안 종살이를 했었습니다. 28살 때까지 종살이를 하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거기다가 또 누명을 덮어씌우고 그는 시위대 감옥에 갖혀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이 30살 될 때까지 고난에 점철된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고난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종국에 가서 그는 그 감옥에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되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고난 당할 때 그 고난에 반발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그리고 자해행위를 했더라면 그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파멸되고 말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고난을 주어서 그 고난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일으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19~20절에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낳은 내일을, 지금보다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야만 이것을 성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천국을 이룩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 더 위대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창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에 대해서 반발하고 원망하고 탄식하지 말고 그 고난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로 알고 받아들여 감사하고 기도하고 참고 견뎌 나가면 최후에 가서는 고난은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반드시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고난은 강한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체육 선수들은 그들의 육체에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여 강력한 체력을 만듭니다. 우리 몸이라는 것은 쓰지 아니하면 모두 다 퇴화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팔도 쓰지 않으면 근육이 퇴화하고 다리도 걷지 아니하면 다리의 근육이 퇴화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일 먼저 퇴화하는 것이 다리의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많이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걷는 운동을 많이 해서 다리의 근육에 퇴화를 가져오지 않아야 젊음을 늘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육체도 늘 고난을 가해야 거기에 대해서 저항하기 위해서 강하게 되고 이처럼 우리가 영적인 생활도 고난을 통해야 그 영혼이 강력해지고 믿음이 튼튼해지지 시련과 환난이 없는 그러한 온실 속에 있는 믿음의 생활은 영적인 믿음이 자라지 아니하고 나중에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풀무에서 단련하여 세속의 찌끼를 제거하여 하나님은 순수한 신앙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1장 2절~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욥은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은장색이 은을 연단할 때 은을 불에 달굽니다. 그래서 은 도가니에서 은이 부글부글 끓을 때 위에 올라가는 찌끼를 걷어내고 또 끓여서 들여다보고 또 찌끼를 걷어내고 또 들여다봐서 나중에 그 은 도가니에 있는 은이 완전히 부정한 것이 제껴져서 은장식의 얼굴이 환하게 비칠 때 그때 그는 단련이 다 끝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온갖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자백하고 깨어지고 헌신해서 점점 변화 받아 우리의 모습 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점점 비춰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길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그리고 고난을 통해야 거짓된 신앙과 참된 신앙을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꿀은 참으로 달고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꿀을 여러가지 음식에 섞어서 맛있게 해서 먹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꿀을 하나님의 제단에 받치지 못하게 합니다. 왜 그러냐? 꿀은 불로 태우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꿀은 불로 태우지 않을 때는 맛있지만 불로 태우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너 같은 친구가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곁에 있다고 합니다. 좋을 때는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와서 환난이 비추면 그런 친구들이 고약한 친구로 변할 때가 있습니다. 꿀과 같이 평상시에는 달고 좋으나 불을 떼면 그것이 고약한 냄새를 내는 것처럼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야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온갖 말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고난이 다가오고 시련이 다가오게 되면 그만 냄새를 풍기고 그리스도를 반역하고 등을 돌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고난이 와야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그때 표시 된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고난이 올수록 더 진실하고 더 충성스럽고 더 헌신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여러분!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 장미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발칸산맥에 장미꽃에서 향수를 뽑는 생산업자들은 언제 그 향수를 뽑느냐?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 새벽 2시에 가서 그 향수를 장미꽃에서 채취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밤중에 가장 춥고 고통스러울 때 장미꽃이 제일 많은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고귀한 신앙의 향기도 우리가 가장 어둡고 캄캄하고 고난을 당할 때 그때 진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큰 향기를 나타내고 더 헌신하고 더 충성하는 사람은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여러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들이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라고 할 때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하고 왕의 명령에도 순종하지 아니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을 자초하고 오직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일곱배나 뜨겁게 한 풀무불에 던짐을 받았습니다만 그 고난을 통해서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벧느고와 함께 풀무불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그 아름다운 향기를 온 천하에 나타내고 역사 끝날까지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은 우리에게 참된 신앙을 증명하고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또 고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며 인내는 강한 신앙의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에서 5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가 강한 믿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환난 중에서 우리가 강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성령을 부으셔서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고난은 우리에게 쓸모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천당 갈 때까지 고난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난을 피하는 사람은 여러분! 신앙을 피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고난은 고난 당할 당시에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회개와 헌신과 믿음으로 이기고 나면 그 후에는 영육 간에 놀랍고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아니하였는데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는 깨어지고 회개해서 주님의 법대로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자들을 많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귀하게 사용하려고 작정한 목회일수록 초년에 아주 고생을 많이 시킵니다. 개척교회를 통해서 고통을 당하고 심한 시련을 겪고 죽음의 고비를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도록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그렇게 내버렸냐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의 종이 많은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가 참으로 굳건한 신앙을 갖지 않으면 안됨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난을 당하지 않고 순수한 신앙과 굳건한 신앙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난 속에 주의 종들을 내어 던져 버린 것입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사자는 새끼를 키우기 전에 새끼를 낭떠러지에 넘어 떨어뜨려서 그 기어올라오는 놈만 젖을 먹여 기르지 기어올라오지 못하는 놈은 내버립니다. 독수리도 새끼를 날개 위에 태워서 공중에 올라가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결사적으로 날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놈은 건져서 키우지만 그대로 떨어지는 놈은 떨어져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고난을 통해서 주의 종들은 연단시켜서 강한 믿음을 얻게 하고 난 다음에 나가서 양무리를 인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한 자가 양무리를 이끌고 가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은 그 양무리를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주의 종들이 고난을 기피하고 어찌하든지 평안하게 살고 평안하게 목회하고 평안하게 신학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결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결코 큰 교회도 맡기지 않습니다. 슬픔을 겪고 고통을 당하고 눈물과 땀을 심는 그러한 삶을 사는 주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굳센 믿음을 주시고 연단을 통하여 강한 신앙의 인격을 만들어서 많은 양무리들을 그에게 주님께서 맡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고난 당하거든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더 큰 소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참고 나면 고난과 그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반드시 가져오는 하나님의 사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좋은 날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환난과 고통 당할 때는 하나님의 법대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고난이 우리 생활 속에 위대한 사역을 다 완성하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결과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사흘 길을 걸어가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흘 길에 걸어갈 수 있는 그 가나안 땅을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고난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 40년의 고난을 통해서 그 풀무불 속에서 연단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체험하고 깨닫고 신앙이 자라고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살 수 있는 신앙인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사흘이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땅의 길을 하나님은 40년 동안 고난의 풀무불 가운데서 그들을 연단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 고난 당하면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지 말고 그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감사하며 찬미하며 인내하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더욱 충성해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룩하고자 하는 큰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주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여러가지 연단과 시험과 고난이 다가올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고난을 주지 않는 사람은 사생자요 친자가 아니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식은 고난을 통하여서 깨어지고 회개하게 만들고 고난을 통해서 변화 받고 연단 받고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기피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고 환영하며 고난 가운데서 기도와 믿음으로 자라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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