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15절 교회를 위한 왕(2) - 윤석준 목사
설교본문 : 마태복음 2장 1-15절
설교제목 : 교회를 위한 왕(2)
설교자 : 윤석준 목사님
교회를 위한 왕 (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연 주님께서 오신 의미를 설교로 한다한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수백편의 설교를 듣습니다마는 성경의 절반도 제대로 못 듣고 삶을 마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은 들은 설교조차도 그 본문의 전부를 다 알게 된 것도 아닙니다. 열 절 짜리 본문을 가지고도 두꺼운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성탄의 의미를 우리가 아무리 많이 이야기한들 백에 하나도 채 다 못 말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마치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모든 시대의 성도들과 설교자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어왔고, 새로운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는 성탄에 대해 두 번째로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본문으로 듣는 말씀입니다. 한 본문 속에서 다른 주제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고, 동방박사와 헤롯의 이야기가 나올 뿐입니다만, 이 속에 담긴 여러 편의 이야기, 이 속에 담긴 수많은 하나님의 음성과 흔적을 통해서, “교회를 위한 왕”이라는 올해 성탄설교의 주제를 또 다른 방향에서 깊이 묵상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헤롯
오후 설교에서는 동방박사보다는 ‘헤롯’에 관심을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헤롯은 보통 ‘헤롯대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헤롯이 총 여섯 명 나옵니다. 오늘 말씀의 헤롯대왕(마2장)이 있고, 마태복음 2장 22절에 보면 이 헤롯이 죽고 뒤를 이었다고 나오는 헤롯 아켈라오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는 헤롯 빌립이, 마태복음 14장과 누가복음 13장에는 헤롯 안티파스가, 그리고 사도행전에 헤롯 아그립바 1세와 2세가 나옵니다. 아켈라오와 빌립과 안티파스는 헤롯대왕의 아들들이었고, 아그립바 1세는 손자, 아그립바 2세는 증손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사람은 헤롯대왕이었습니다. 헤롯가는 기원전 55년경부터, 기원후 93년 정도까지 거의 150년가량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물론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는 왕은 ‘분봉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황제가 지휘권을 준 왕이죠. 헤롯대왕의 아버지 헤롯 안티파스 2세가 교활한 책략으로 로마의 신임을 얻어 이스라엘 통치권을 얻었고, 아들 헤롯대왕이 이를 물려받아 유대의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헤롯에 대해 살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로마는 보편적으로 어떤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로마의 총독이 거기를 다스리더라도 나름의 자치권을 주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을 다스렸습니다. 만약 이 정책이 유대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어쩌면 이스라엘은 유대인들 중에 누군가가 분봉왕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스 2세는 매우 교활한 사람이었고, 기원전 43년 경,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인으로 받아들여주는 기간이 잠깐 있었을 때 유대인으로 국적을 바꾸고는 로마의 신임을 얻어 유대 땅의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헤롯대왕 역시 아버지와 로마를 등에 업고 손쉽게 이스라엘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헤롯은 어느 민족이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나옵니다. 헤롯은 보통 ‘이두매’라고 불리는 민족이었습니다. ‘이두매’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그렇지 않으시다면 조금 더 익숙한 말로 바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헤롯은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에돔 족속
“헤롯이 에돔 족속이었다”......이 점은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역사 속에서 ‘에돔’이라는 말이 주는 굉장히 커다란 뉘앙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 봅시다.
1) 먼저 에돔 족속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말하자면 에돔 족속도 이스라엘의 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안으로 편입되는 대신 독자적인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36장에 보면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창36:1)라고 하면서 에돔 족속의 이후의 일들이 나오는데, 6절에 보면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하니라.”라고 나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에서는 자발적으로 야곱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일산 지역이 에돔 족속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31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이러하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일찍 왕조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에서가 단순히 야곱을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당시 교회였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집을 떠날 때 그는 교회를 떠난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에서는 교회를 떠나 독립적으로 종족을 이루었습니다.
2) 이후 에돔의 행로는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성경 여기저기에서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에돔 족속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가려했을 때, 이 이스라엘의 진로를 가로막는 에돔 족속이 나옵니다. 모세가 에돔 왕에게 평화로운 편지를 보내 “우리가 당신의 땅을 통과할 때 밭으로도, 포도원으로도 다니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가고 짐승에게 줄 물을 먹일 때 값을 치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에돔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이스라엘이 지날 수 없게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아모스 1장에 보면 에돔이 형제국 이스라엘을 치는 일에 열심을 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에돔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이스라엘의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다.”(겔36:5)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137편 7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공으로 짓밟힐 때 에돔 족속이 이 일에 동조하고 기뻐하였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에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라고 소리칩니다.
그래서 구약 선지서 중 오바댜는 무엇에 관한 성경입니까? 바로 이 에돔이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노략할 때 함께 예루살렘을 탈취했던 에돔을 향하여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라고 말씀하시고,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서가 야곱과 결별한 이후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족속이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멸망당한 족속이었습니다. 헤롯이 바로 이 에돔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3) 그리고 아까 우리가 살폈던 창세기 36장의 에서의 족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창세기 36장 12절에 보면 에돔 족속 중에 ‘아말렉’이 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아말렉은 에서로부터 나왔으며, 아말렉 역시 에돔 족속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말렉은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과 싸운 것으로 유명한 족속입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고 서 있었으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싸웁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집니다. 그런데 모세가 팔이 아파 계속 들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옆에 모세를 도우려고 아론과 훌이 와서 양팔을 붙들어 줍니다. 모세의 팔이 해가 지도록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 출애굽기의 장면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17:16)라고 하심으로써 아말렉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천명하셨습니다. 14절에도 보면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울 왕 이야기를 할 때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진멸하라고 한 족속을 진멸치 않고 살려준 이야기, 즉 사울 왕의 불순종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 때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한 족속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우리가 아말렉에 대해서 알면 왜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그토록 진노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말렉은 단순히 이방 민족이 아닙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것을 사울 왕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거역한 것은 출애굽기 17장에서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사울이 가로막고 선 것이 됩니다. 말하자면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결국 이 아말렉은 역대상에 보면 히스기야 왕에 의해서 완전히 진멸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말렉 족속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앞의 에돔 족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돔의 한 줄기였던 이 아말렉 역시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훼방하는 족속이었다는 점입니다.
원수들의 공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개의 세력이 맞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후손인 여자의 후손과, 이 여자의 후손을 궤멸시키려고 발버둥치는 뱀의 후손들이 땅에서 맞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싸움 안에서, 이 싸움의 배후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싸움을 지휘하고 주도하고 계시며, 결국 여자의 후손들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하실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1. 첫째 원수 : 이방인
먼저 이 원시복음의 싸움이 첫 번째 어떤 원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앞에서 헤롯과 에돔 족속에 대해 살핀 것입니다. 이 싸움의 첫 번째 원수는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창세기 3장 15절의 뱀의 도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몇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것이 아마 에스더서의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사탄은 뱀의 후손의 역할을 하만에게 맡겼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보고 분개했지만 개인적인 앙갚음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유대민족 전체를 죽여 버리려고 했습니다.
구속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 사건이 너무도 명확한 사건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을 삼키겠다는 계시가 역사 안에 구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자의 후손은 단번에 멸절될 위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이 때 하나님께서는 어영부영하던 왕후 에스더를 사용하셔서 이 위기를 단번에 뒤집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만들었던 나무에 자기가 달리게 되고, 하만이 유대인 모두를 멸절시키려 했던 바로 그 날, 유대인들의 원수들이 멸절당합니다. 하나님은 “뱀의 공격이 강력하나, 하나님의 보호는 더 강력하시다”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인들이 이 날을 기념하여 만든 절기가 바로 ‘부림절’입니다.
그런데 이 때 사용된 하만이 어떤 민족인지 알고 계십니까? 에스더 3장 1절 말씀에 보면 이 뱀의 하수인이 되었던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각”은 우리가 아까 사울왕 이야기를 할 때 사울이 살려주었던 아말렉 왕의 이름입니다. 말하자면 “아각 사람”이란 “아말렉 족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만은 아말렉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잘 생각하십시오! 역사상에 현저한 뱀의 도발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에스더서의 하만의 도발이 있고, 또 이 모든 도발의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뒷부분에 보면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로 전형적인 뱀의 후손의 도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 모두에서 그 뱀의 하수인으로 사건의 주동이 된 자, 즉 하만과 헤롯 둘 다가 “에돔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뱀의 공격! 교회를 없애버리려는 간계가 두 에돔 족속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만의 모략과 헤롯의 잔인함은 단순히 역사속에 일어났던 두 싸이코패스의 이야기를 그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끝없이 공격당했습니다. 사탄은 교회를 없애버리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의 모략에 가장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교회를 멸망시키려 했던 이가 바로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즉 여자의 후손을 멸절시키려는 첫 번째 원수가 “이방인”입니다. 유대의 바깥에서, 이스라엘의 바깥에서, 이 여자의 후손을 땅 위에서 없애버리려는 시도가 들어옵니다. 오늘 말씀에서 헤롯은 바로 이 “이방인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2. 둘째 원수 : 유대인
그런데 여기에 두 번째 원수가 규합합니다. “두 번째 원수가 있었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어렵지 않습니다. 두 번째 원수는 왕궁 안에, 헤롯과 함께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이후 역사가 조금 더 진행되면, 여기에 다른 계급들이 더 가세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이고, 사두개인들이나 기타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멸절시키려는 두 원수가 있었다는 것은 사탄 안에서 교회를 멸절하기 위해 두 원수가 손을 잡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작년 성탄절 설교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바벨탑은 셈의 후손과 함의 후손의 연합작품이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었던 셈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었던 함의 후손이 손을 잡자 바벨탑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일이 여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에돔 사람 헤롯과 유대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없애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보이지 않는 영역, 눈으로 볼 때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동방박사의 방문과 헤롯의 정치적 암투와, 그것을 돕는 간사한 대신들 배후에 있는 영적 전쟁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두 세력,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이 그리스도의 그분의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위하시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교회를 보호하십니까? 우리가 바로 앞에서 사탄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동원하여, 이들의 연합으로 여자의 후손을 멸절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맞서서 하나님께서 싸우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똑같은 칼로 이 사탄의 도발을 대항하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이방인”과 “악한 유대인”을 동원하여 교회를 궤멸하려 하는 사탄에 대항하여, “참 이방인”과 “참 유대인”을 동원하여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1. 12절, 동방박사, 곧 참 이방인을 사용하심
하나님께서 에돔 족속 헤롯에 대항하여,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우신 참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오늘 말씀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에게 현몽하셨습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악한 이방인인 헤롯의 궤계를 무력화하시기 위하여 참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의 꿈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길을 지시하심으로써 사탄의 궤계가 무산되게 하십니다. 비록 사탄이 강력한 공격을 펼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 맞서는 같은 무기로 사탄의 머리를 내려치심으로써 그 사탄의 무기가 무력화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오전 설교에서 들었던 것은, 이방인들이었던 동방박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을 향하여 교회를 펼치시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이 동방박사들을 사용하셔서 헤롯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의 계략으로부터 예수님을 지키시고, 나아가 예수님을 통해 보호받을 교회를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지키시고 교회를 보호하십니까? 그 첫째가 바로 참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을 사용하심으로써입니다.
2. 13절 : 요셉, 곧 참 유대인을 사용하심
그리고 하나님은 악한 유대인들의 궤계에 대항하여 다시 한 번 참 유대인을 들어서 이 궤계를 무력화시키십니다. 동방박사에게 있었던 일이 똑같이 한 번 더 반복된다는 것을 유의하십시오. 12절에서 동방박사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게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하나님은 동방박사에게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요셉에게도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누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참 이스라엘인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계속 발견하게 되는 요셉은 ‘참 남편’, 거짓이 없는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요셉입니다. 마리아가 처음 수태했을 때도 등장하는 요셉은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였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남편 요셉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신실하게 반응하고, 가장 순종적이며, 가장 헌신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참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안에 거짓된 이스라엘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악한 이방인인 헤롯과 연합하여 교회를 궤멸시키려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이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많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답은 같습니다. 하나님은 똑같은 무기를 다시 집어 드십니다. 즉 “악한 유대인”에 대항하는 “참 유대인”을 집어 드신 것입니다. 악한 이스라엘이 교회를 삼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참 이스라엘이 그 악한 이스라엘의 궤계를 무산시키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두 번째 무기는 ‘참 유대인’이었던 요셉이었습니다.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헤롯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우리는 동화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읽는 것이고, 따라서 그 구속역사 속에서 숨쉬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아담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교회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 비록 기록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당대에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향하여 몰아치는 사탄의 궤계가 무겁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보기에는 좀 더 쉽고 담대해 보였던 성경 속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롯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들에게, 그 짐이 가벼웠을 리 없습니다. 지금의 교회를 향한 사탄의 모략이 흉폭하듯이, 그 때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의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무기를 드심으로 교회를 지키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지금의 우리 역시 이 자리에서 안도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사탄이, 죄가, 나를 지배하고 덮을 것 같아 두렵습니까? 교회 안에 있지만, 교회를 덮고 내리누르는 죄악의 폭풍이 무섭습니까? 그럴 때에 성탄의 본문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기억하십시오. 에돔의 폭풍, 유대인의 폭풍이 몰아치는 성탄의 시절에 동방박사와 참 이스라엘인 요셉을 들어 이 폭풍을 잠재우신 하나님께서, 이 성탄의 시기에 지금 우리들에게도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잠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출14:13-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