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8-25절 임마누엘 - 김영하 목사
설교본문 : 마태복음 1장 18-25절
설교제목 : 임마누엘
설교자 : 김영하 목사님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이 말씀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 버젓이 쓰여 있는 이 말씀이 거짓이라고 아무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신비한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 전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인간으로서는 인류의 죄를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죄 없는 인간 이상의 신이 간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 예수님이 오셔야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15절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인의 후손이 나와서 마귀를 진멸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여인의 후손인가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남자의 씨를 받아서 태어나기 때문에 모두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의 씨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인한테서 태어나기 때문에 여인의 후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7:14절은 창세기 예언을 다시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은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18절에는 마리아가 약혼자와 성적관계를 맺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벧전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을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밭에 떨어질 때 성령이 함께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계란을 생각해 봅시다. 무정란은 부화되지 못하고 썩어집니다. 그러나 유정란은 부화하여 병아리가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씨앗이 우리 속에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지만 부활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사망이 지배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사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성령으로 태어날 것을 구약에서 이미 그림자로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 즉 90세요 경수가 이미 끊어졌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삭을 낳게 됩니다(창 18:11).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마찬가지입니다(창21:1-2). 생리적으로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간섭으로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리라(갈 4:28-29). 이것은 육을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한 사건을 말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심하게 핍박합니다. 모슬렘과 기독교도들의 싸움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오늘날 이 싸움은 심각하여 세계 3차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3000명의 생명을 앗아간 911 사건도 육신의 자녀와 성령의 자녀의 싸움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석녀였습니다. 기도로 얻은 아들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구약의 인물 중 예수님의 그림자를 가장 닮은 인물입니다. 요셉이 태어난 사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시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창 30:22-24).
아브라함은 3대가 모두 하나님의 크신 개입으로 아들들을 낳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군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며 이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 속에서 처녀의 아들로 태어날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으면 유부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태어났다고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남녀 성적관계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유독 예수님만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고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고 성적관계를 갖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은 낳았습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사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신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사54:1) 이 말씀은 육신적으로는 잉태 못할지라도 성령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약속의 자녀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렇게 태어날 것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얼마나 오묘한 성경의 비밀입니까?
남편을 통하여 낳은 자녀들은 거듭나지 못하면 육신적으로 잠간 살다가 없어지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자녀들은 죽지 않으니 그 수가 계속 증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태어난 영적 자녀들은 온 천지에 가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의 난 것은 영이니 거듭난다고 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감으로 거듭남의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은 후에는 저희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요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특권과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의 특징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것이요 이 세상의 없어지고 썩어지고 쇠해지는 기업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마음이 언제나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확실히 생명의 냄새가 풍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녀도 이러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은 분명히 추구하는 가치가 틀리고 말씀의 지배를 받아서 삶의 변화가 확실하게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2.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
인간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행복한 상태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죽음이 왔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어두움이 사람들을 지배하기에 빛보다는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욕심 부리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이 잘 되는 것은 배가 아프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면서 삽니다. 그리고는 양심이 있으니 이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둑질 속임수 뇌물증여 및 수여행위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형벌이 올 것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의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삶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성육신하여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빛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요(엡 2:1) 영적으로 장님이 된 자(고전 2:14)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 8:7)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는 누군가 죄 값을 치러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온전하게 대신 지켜주셨습니다. 흠이 없으신 예수님은 죄 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시는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엡 2: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가 받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받을 자격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구원은 이미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 일을 믿고 감사하고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든 인간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가지고 천국 확장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주도권을 맡기셨습니다. 문화를 지배하고 물질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구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삶의 가치관이 변합니다.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사랑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요 특권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즐기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게 됩니다. 소망의 인내로서 매일 매일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 받은 자들의 삶입니다.
3. 임마누엘의 예수님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이는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놓고는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린아이를 출산하고 낳은 즉시 너 혼자 살아라하고 내버려 두는 부모는 없습니다. 안으면 부서질까 놓아두면 깨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24시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받은 어린 시절을 우리는 전혀 기억을 못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서 5:8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이미 지불하였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49:15절에도 여인이 어찌 그 젖먹이는 자식을 잊겠으면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고 시편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들의 신분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는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홀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고전 3: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언제나 같이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서로 떨어지기 싫어서 결혼하여 같이 삽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 같이 살려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마땅한 우리의 신분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