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장 18-21절 구원 받았습니까? - 노환영 목사

재영구리 2023. 2.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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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마 1장 18-21절
설교제목 : 구원 받았습니까
설교자 : 노환영 목사님

 본문말씀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마태복음 1장 18절-21절)

 설교요약

“ 구원받았습니까?      

 오늘은 구세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림절(待臨節) 첫 주일입니다. 세상 달력으로는 연말이지만 교회 달력으로 대림절은 한 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설렘이 있으려면 물론 구원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확신으로 인하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까?

 그런데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에 대한 갈망인줄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면서도 ‘내가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또는 ‘구원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모르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별로 차이가 없이 어정쩡하게 살고 있습니다. 

 디도서 3장 9절-11절에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 아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상대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대꾸하고 따라 갔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마지막 때 여러분의 믿음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과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첫 대강절을 맞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어떤 것인지 알아 봅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어둠을 기독교에서는 ‘죄’라고 말합니다.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받은 상처 때문에 생긴 분노나 원한이나 응어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등감일 수도 있습니다.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않은 결핍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 쌓여 있는 억압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삶은 이 어둠 때문에 불행하게 됩니다. 이 어둠 때문에 미워하고, 싸우고, 죽입니다. 또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잠언서 15장 15절에는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는 삶을 산다”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서는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이 불행의 수레 바퀴를 돌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죄가 있어 어두운 상태에 있으면 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90퍼센트 이상이 불행한 이유도 이 어둠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있는데 돈은 많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상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마음의 어둠이 시키는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알코올, 마약, 섹스, 도박, 명품 같은 것에 빠져 듭니다. 돈이 없을 땐 꿈도 꾸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죄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이 많은 것은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없는 환경의 변화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이 마음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둠의 지배 아래에 있는 마음에 빛이 비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어둠 속에 비친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빛의 나라로 옮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세속적인 성공과 축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요. 바로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를 영접하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향한 문이 생깁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 갑니다. 하나님과 영원과 초월을 향해 열려 있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됩니다. 그리고 영생과 내세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와 천국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첫번째 축복입니다.

 비유로 말하면, 어머니 태 속에 있던 아이가 자궁의 어둠을 벗어나 새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 아이가 자라서 사람 구실 할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엄청난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 아이는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거듭난다’고 하는 것입니다(重生, regeneration).

또 다른 비유를 들면 이것은 사방이 밀폐된 감옥속에 작은 창문이 하나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방이 밀폐된 방에 있을 때 사람들은 금방 죽습니다. 그러나 작더라도 창문이 있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삶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생명과 죽음의 차이말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문이 있습니다. 이 작은 문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들어 오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혔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것을 칭의 또는 의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음으로’ 마음 속에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그는 영생과 구원을 얻습니다(요3:16-17). 거듭납니다(디도3:5).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 갑니다(칭의/의인).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안 믿는 사람과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능력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었지만 아직 그 생명력이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롭다 칭함을 받았지만 아직 의의 에너지가 넘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도 믿지 않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데도 별로 행복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성질도 그대로 입니다. 목사라는 사람의 얼굴이 은혜가 없습니다. 장로,권사라고 하는데 ‘돈이 되면 뭐든지 다 한다’고 합니다. 매너가 없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게 이익이 되고 복 받고 은혜 받는 일이라면 공중도덕이나 법을  지키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그리고 말투는 왜 그리 거칩니까? 하는 일은 왜 그리 폭력배와 같습니까? 얼굴은 꼭 뭐 밟은 것처럼 죽을 상을 하고 있습니까? 이럴 때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저 양반 사람은 저래도 믿음은 끝내 줘!?”

여러분! 이 사람은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예수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영접은 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 복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 영생과 구원의 문은 열리고, 천국의 길은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그리로 들어가 영생과 구원과 천국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산해진미를 차려 놨는데 배고프면서도 먹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물가에 있는데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상태입니다. 영적 허기로 굶주리면서도 양식이신 예수님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않습니다. 영적 갈증으로 목말라 하면서도 샘물이신 예수님을 실컷 들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삶이 따로, 믿음과 인격이 따로 노는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마음속에 많아집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이 작용하여,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마음의 얼룩을 씻어 마음이 정결해집니다. 예수님의 빛이 마음의 어둠을 몰아 내어 마음이 밝아 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겉 사람인 자아를 소멸시켜 가난하고 겸손한 심령이 됩니다. 이제 마음엔 어둠 대신 야고보서 1장 17절의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는 온갖 좋은 것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처음 예수를 영접했던 상태에서 더 자라가야 합니다. 어머니 태에서 나온 사람은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사람 구실 할 수 없습니다. 쉬지 않고 자라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 중생한 사람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뿌리를 잘라내도 금방 죽지 않고 남아 있는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싹을 내고,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의 뿌리는 뽑혔습니다. 하지만 죄의 영향력은 육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남아서 우리를 방해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것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죄의 영향력을 줄여 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교회와 믿음생활에서 하는 것입니다. 죄 대신 의의 능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을 교리적으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말합니다. 중생과 칭의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성화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내 자아는 예수 닮아 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자아를 말씀과 성령으로 싸워 이기고 예수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바을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한 걸음더 나아가 구원을 ‘이루는’ 일을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즉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사람이 바뀝니다.

 완고했던 성격과 맡투와 표정과 삶에서 예수의 향기가 풍기기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예수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 사람이나 망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결론은 이 구원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모든 것을 예수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감정, 생각, 의지, 고집, 뜻, 아픔, 상처, 응어리도, 한도 예수님께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지배를 내 안에 확실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삶의 고삐를 예수님이 잡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어둠으로 가득한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마음과 내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력한 사람들한테는 알아서 기면서 예수님께는 결코 복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저 갓 태어난 아이나 유치한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첫 대강절을 맞이하여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여 한 발자국 더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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