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 15장 11-24절 이기주의의 비극 - 조용기 목사

재영구리 2023. 3. 1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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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이기주의의 비극
설교본문 : 누가복음 15:11∼24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기주의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수많은 인생고가 사실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입니다. 최근에 여러분께서 신문지상을 통해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열사의 뜨거운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뼈를 깎는 고생을 하면서 돈벌이를 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고향으로 부인에게 송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그 돈을 가지고서 자기 정부와 방탕하게 놀아나고 그 돈 한푼도 없이 다 탕진해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남편 큰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미 자기 아내는 그 정부와 함께 도망을 쳐버리고 집조차 다해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처참한 절망 가운데서 음독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이기주의인 것입니까? 한 사람은 사막에서 뼈가 부러지도록 그 더위를 무릅쓰고서 일을 하는데 그 돈을 가지고서 자기는 다른 남자와 놀아나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우리는 탄식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한 젊은 청년이 자기 집 빚을 갚기 위해서 자기가 옛날에 들었던 세 집에 찾아가서 그 세 집 주인으로부터 커피까지 다 대접을 받고 정답게 이야기하는 척 하다가 흉기를 들어서 그 부인을 쳐죽이고 이를 본 초등학교 어린 여학생까지 쳐죽이고 금품을 절도해서 달아났다가 잡힌 사건을 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범죄인 것이며, 이 얼마나 무서운 살인적인 이기주의인 것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이와 같은 사실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슬픔이요, 비극이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정경을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는 분명하게 예언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바로 말세에는 그 무서운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파생하는 수많은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이기주의가 우리 사람들의 생활 속에 얼마나 크나큰 파괴와 비극을 갖다 주는 것을 분명하게 탕자의 비유에서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오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첫째로 이 탕자의 비유에서 보면 한 사람이 두 아들을 길렀는데 그 중에 둘째가 아버지께 와서 이렇게 고했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이 둘째 아들이 아직 생활을 독립해 나갈만한 그런 처지이지도 못합니다. 또 아버지는 그 아들들을 사랑해서 충분히 성장해서 자립해 나갈 만하면 재산을 얼마든지 나누어주길 원하는 좋은 아버지였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도 상관하지 않고 가정에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집안이야 망하든 흥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의 욕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와서 주장하는 것은 '내게 속한 분깃을 내게 주소서' '나' 밖에 모릅니다. "Give me! Give me! Give me!" 내게만 달라는 것이 이 젊은이의 요구 조건이었습니다. 이기주의는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무서운 뱀의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고 우리 스스로를 살펴볼 때 '나는 과연 이기주의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늘 심판하고 판단해 봐야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 남편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아내에게 늘 '내게 해달라, 왜 내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않느냐, 왜 나를 더 잘 대해주지 않느냐, 왜 나를 더 잘 섬기지 않느냐, 내게만 달라' 그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기주의 적인 남편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내가 남편에게 와서 '왜 나를 더 잘해주지 않느냐,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사주지 않느냐, 나를 더 위해주지 않느냐, 왜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느냐, 왜 나를 이렇게 하느냐' '나'만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기주의적인 아내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기의 소원한데로 만들어서 부모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 자식들이 되어 가기를 원하면 이것은 이기주의적인 부모인 것입니다. 또 자식이 부모에게 나와서 이 탕자와 같이 부모의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가정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욕심만 채워서 'Give me! Give me!' '내게 주소서! 내게 주소서! 내 좋은 대로만 해달라'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탕자요 이기주의적인 자식입니다. 오늘날 세대가 그래서 그런지 요사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극한적인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녀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자녀들이 자기들 중심만 생각해서 달라고만 하고, 그래서 부모와 사회를 혼란케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우리는 한 동포로서 살면서 우리 국가와 민족이 함께 잘 살아야 될 것인데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만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치부하기 위해서 자기에게만 달라고 하는 이와 같은 일들은 여러분, 자기 자식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웃까지라도 파멸로 이끌어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수많은 고통이 이기주의에서 온다는 것을 있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 보면 겨우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버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기주의란 것은 진실로 이용할 가치가 없으면 헌 신짝 같이 내어 던져 버리고 먼 나라로 떠나가 버리는 것이 이기주의인 것입니다. 이기주의로 뭉쳐진 가정은 남편은 아내를 이용하고 아내는 남편을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그들은 먼 나라로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가정이 오늘날 파괴되고 이혼하는 것은 결혼 할 때 그 시초부터 진실한 사랑 이 아닌 상대를 이용하겠다는 이기주의적인 동기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이기주의 목적을 다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은 먼 나라로 서로 떠나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함께 지나갑니다. 이기주의는 내게 이용 가치가 없게되면 헌 신짝 같이 내 던져 버리고 멀리 떠나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최근에 여러분 신문 지상에서 떠들썩하게 기록한 사실을 여러분 하나 기억하지요? 사법연수생이 고등고시 공부를 할 때에 고생하면서 애를 쓰고 공부 할 때 한 여성과 동거를 했습니다. 결혼도 안하고 동거하면서 그 여성이 자기가 노동해서 벌은 돈으로 고등고시 공부하는 그 남자의 뒤를 받들어 주었었습니다. 그리고 동거 생활을 했습니다. 이분이 고등고시에 합격되어서 사법연수생이 되자마자 이 여자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 놓고 결혼식장에 그 여자가 나가서 기다려도 신랑이 오지 않습니다. 배신당한 것을 알고 당국에 고발한 사실을 우리는 읽어보았었습니다. 옛날에 소설에 나있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오늘날 우리의 환경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이기주의인 것입니까? 자기가 고등고시 공부할 때 필요하니까 이 노동하는 여자의 피와 땀을 가지고서 먹고살고 자기 육체의 영혼까지 채우고서 지내다가 자기가 고등고시에 합격되고 난 다음 사법연수생이 되니까 이 여자를 헌 신짝 같이 버리고 미모와 능력을 가진 다른 여성과 짝을 지어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법관이 된다면 여러분 오늘날 사회의 정의가 어떻게 구연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직당국에서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사람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기주의 때문에 수많은 슬픔과 고통이 우리의 환경을 떠나지 않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곳에는 오직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배신감의 쓰디쓴 고통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 믿을 것이 무슨 이유가 있는가, 나는 천당도 안 믿고, 지옥도 안 믿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천당을 안 믿고 지옥도 안 믿더라도 예수를 믿고 그 마음 속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와서 이기주의를 버리고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될 때 이 세상에는 살 수 있는 처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편의 가슴속에 이기주의가 없어져서 그래서 처자를 위해서 살 수 있을 때, 아내의 마음속에 이기주의가 없어지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살게 될 때, 자녀들의 마음속에 이기주의가 없어서 이 탕자처럼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 자기만 생각하는 이것을 깨뜨리고 그래서 부모와 가정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이러한 곳에 참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것은 한 가정이란 단위가 이루어지고 또 사회적으로 함께 모여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욕심만 채우고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면 자기도 못살게되고 또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쓰디쓴 괴로움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이기주의에 대해서 무섭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이기주의자가 가는 길을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서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은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다 받아 가지고서 이제 아버지를 이용할 만큼 다 이용했으니까 그는 아버지를 떠나서 먼 나라로 가서, 거기에서 건설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았나요? 아닙니다. 그는 허랑 방탕하여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마음대로 허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기주의의 가는 길은 쾌락의 내리막길 인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언제나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게 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약물 중독자, 도박꾼, 성적 방종자, 이러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다 자기밖에 생각 안 합니다. 자기의 부모나 형제나 처자나 이웃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인가' 이런 것은 추호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현실적인 쾌락만 만족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인간 공해의 산물이요, 인간 패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자가 가는 길은 언제나 쾌락의 노예로서 전략 해버리고 마는 것이 바로 그 길인 것입니다. 바로 어제 저는 신문을 보고 마음속에 아주 끔찍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느 한 탈영병이 여자들하고 방탕하다가 돈 2백여 만원의 빚을 지고, 그것을 작은 아버지에게 와서 2백 만원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여러분, 현찰 2백 만원을 갑자기 어떻게 빌려주며 또 여자들하고 술 먹고 방탕해서 없애버린 돈 2백 만원을 왜 작은 아버지가 갚아주겠습니까? 그러나 작은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난 다음 탈영해서 권총을 든 다음, 새벽에 잠자는데 침입해 와서 나오는 작은 어머니를 쏴 죽이고, 작은 아버지를 쏴 죽이고, 그리고 사촌 동생도 쏴 죽였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세상에 누구를 믿고 살 수 있겠어요? 두려워서 어떻게 일가친척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 무슨 산물이냐, 이기주의의 가는 길은 결국에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쾌락으로서 다가오는 것은 절망과 파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가정과 사회 및 국가 뿐 아니라 자원까지라도 허랑 방탕하게 허비시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잘 살고, 함께 번영하며, 함께 천국에 가야지, 나 혼자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고, 나 혼자만 쾌락을 누리겠다는 이러한 생각은 뿌리 채 뽑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우리 가정'이요, '우리 집'이요, 교회도 '우리 교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 함께 같이 서로서로 짐을 나누어주며 사랑으로써 함께 잘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젊은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는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 자기 아버지가 피와 땀으로 모은 재산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먼 나라에서 허랑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자기에게 돈이 있는 이상 수많은 친구들도 따라오고 수많은 여성들도 아양을 부리면서 따라왔었습니다. 그는 일약에 영웅이 되고 호걸이 된 것 같았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그는 허랑 하고 방탕하게 자기의 있는 것을 소모했습니다. 자기의 청춘을 소모하고 자원을 소모하고 금전을 소모했었습니다. 방탕의 결과는 뻔하게 파멸로써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다 이기주의의 가는 결과가 쾌락의 노예가 되고 그 길로 말미암아 방탕한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뼈 속에 깊이 우리가 깨닫고 알아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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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셋째로 이기주의 열매가 무언지 우리 한번 알아보십시다. 

 

이 청년이 그렇게 살고 난 다음에 그 재산이 끊임없이, 한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의 재산이 거의 다 떨어지게 되자 성경은 말하기를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기주의적인 삶을 사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심판하십니다. 이기주의적인 개인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이기주의적인 가정에게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이기주의적인 나라에게 하나님이 결과에 심판하십니다. 흉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비로소 자기가 궁핍해졌었습니다. 이제는 자기를 영웅시하고 호걸시 하던 그 많은 청춘 남녀들이 다 그를 떠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맺어진 인연이란 돈이 사라지면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친구도 없습니다, 애인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배도 고프고 건강도 없어집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의 가는 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하기를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고 했는데 '그 나라'라는 것은 바로 '이기주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기주의의 나라에는 흉년이 들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해 놓으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흉년이 들고, 심적으로 흉년이 들고, 육체적으로 생활적으로 흉년이 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제가 심신에 흉년이 들어있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기주의로 살았지 않은가를 생각 해보고 깊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자기와 타를 다함께 궁핍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나 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령해서 "저 원수의 수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 사람들이 다 멸망 받기를 원해서 이기주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범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에게 심판하겠다니까 좋다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기주의적으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정반대방향으로 도망을 치기로 했었습니다. 그 한사람의 이기주의 때문에 그 배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함께 타고 가던 사람이 동시에 많은 손실을 얻게된 것입니다. 재물은 다 바닷물에 던지고 그들의 생명이 위기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게 된 것입니다. 한사람의 이기주의자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우리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다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기주의는 자기와 타를 다 궁핍하게 만들고 이기주의자의 낭비는 거대한 공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이기주의자들에게 흉년으로 무서운 심판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을 져버리고 인본주의로 인간 중심으로 서서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하는 삶만 살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사 이제는 세계가 경제적으로 흉년이 들어가고 오늘날 전 세계가 전쟁과 전쟁의 소문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평화의 흉년이 들어가고, 소망과 사랑의 흉년이 들어가고 불안과 공포가 오늘 세대의 특징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 중심으로만 살겠다는 인본주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 같은 건 필요 없다, 사람은 자기의 이성과 지혜와 하나님 간섭 없는 자유를 가지고서 마음대로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의 어지럼증에 걸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지 않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내용은 하나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용인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간이 아무리 이성이 발달되고 과학을 발전시킨다 할 지라도 자유의 어지럼증에 걸려 가지고서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에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가지고 이 세상을 잘 살겠습니까? 그 이기주의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그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을 따라서 허랑 방탕하고 그 결과로 오늘날에 와서 이 세상은 전쟁과 전쟁의 위기 속으로 휘몰아 넣고 만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2차 세계대전으로 온 도시가 오유화 되고 세계가 불바다가 되고 이제는 3차 전쟁의 위기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기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스탈린은 자기 동포 3천만 명을 죽였으며, 모택동은 자기 동포 6천만 명을 죽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오늘 하나님 없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가지고서 지상 천국을 만든다는 사람들의 결과가 피의 강과 바다를 만들고 만 것입니다. 온 세계가 경제적으로 흉년이 들고 평화의 흉년이 들고 소망과 사랑의 흉년이 든 것은 세계가 하나님을 떠나 이기주의로 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다시 살아 일어나려면 이 이기주의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흉년에는 허기증에 걸립니다. 허기증에 걸신들린 개인과 인류의 삶은 오늘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화는 잃어버리고 건강과 생활은 궁핍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과 저의 생활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여러분은 궁핍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삶의 목적과 삶의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행복이 있습니까? 여러분 생활에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흉년이 들지 않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혹시 흉년으로 심판하지 않았었습니까? 남편 여러분, 아내 여러분, 부모 여러분,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이기주의의 탕자가 되어 있지 않나요?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하는 나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 아닌가요?

인간을 가장 천하게 만드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5절로 17절에 보면 이 청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결국 이기주의의 결과는 돼지우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인품을 다 잃어버리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다 잃어버리고 동물화해서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서 돼지와 함께 먹고사는 그러한 처참한 동물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바로 이기주의인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랑의 길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종국적으로 돼지우리의 삶으로 이 인류 문명도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가장 근원적인 이기주의는 무신론과 불신앙 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지으시고 나를 낳아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배반해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만든 모든 자원을 자기 손에 쥐고서 자기의 개인의 욕심만 채우며 살겠다는 이 무신론적 불신앙, 이것이 가장 근원적이고 무서운 이기주의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전에, 여러분 이 세상에 흉년과 궁핍은 영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역사적으로, 생활 면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세상에 심판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의 축복은 회개하여 돌아올 때 비로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운동을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의 반대는 사랑인 것입니다.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의 반대는 내게 있는 것으로 남에게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기주의를 떠나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 이웃을 몸 같이 사랑해야, 남편을 내 몸 같이, 아내를 내 몸 같이, 자녀를 내 몸 같이, 부모를 내 몸 같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때 비로소 인생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오고 궁핍이 사라지고 저주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이기주의를 박살을 내고 사랑으로써 돌아오는 그 길만이 내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문제는 개인이든, 가정적인 문제든, 생활의 고통이든 이기주의를 져버리지 않는 이상 그 고통이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주의를 져버리고 십자가 밑에 내가 깨어져 회개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러한 운동이 전개될 때 고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선물같이 넘치게 되실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의 가슴속에 뿌리박힌 이기주의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가장 무서운 이기주의가 하나님을 져버리고 자행자지 하는 불 신앙의 생활이요, 내 아버지, 그 다음 이기주의가 자기 스스로만 생각하고 자기가 받을 것만 생각하는 무서운 이기주의입니다. 아버지, 오늘 십자가 밑에서 이기주의를 다 깨뜨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운동을 전개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물리쳐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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