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 14장 27절 참된 십자가 - 조용기 목사

재영구리 2023. 3. 9.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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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누가복음 14장 27절
설교제목 : 참된 십자가
설교자 : 조용기 목사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참된 십자가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들은 십자가란 말을 별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일상생활에 사용합니다. 즉, 죄를 짖고 고난을 당할 때도 이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결하고 더러운 습관에 묶여서

끌려 다니면서도 할 수 없이 이것은 나의 십자가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혹은 병들었을 때도 이 병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낭패와 실망과

고통을 당해도 이것이 내 삶의 십자가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생활에 중대한 무거운 짐이나 고생스러운 일들도 다 십자가로

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겨버린 마귀와 저주의

짐들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죄나, 악한 습관이나, 병이나, 저주, 죽음

등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란 항상 짊어지고 갈 형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십자가가 아닌 것은 단호하게

믿음과 기도로 싸워서 제겨버리고 참된 십자가를 우리가 일생 주님

앞에서 걸머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부인하고 정과 욕을 거부하는 삶이 참된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 그리고 자기의 정욕과 욕심을 거부하는

삶.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자기 아집과 자가 중심의 삶을 거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아집을 가지고 있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벌써 부모의 명령에

불순종하려는 심정이 있는데 장성한 우리들은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아집이 있습니다. 이 아집을

십자가에 못 밖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복종하는 이러한

삶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려고 노력하며 그를 위해서 자기를

처서 복종시키는 이와 같은 삶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복음 9: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6;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또

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처서

복종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따라 살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탐욕을 거부하는 삶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2:1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따라서 자기의 본분을 따라서 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분수에

넘치게 욕심을 내어서 정상적인 사고와 삶을 살지 아니하고 빗나간

행동을 하여 죄를 범하고 파멸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수를 뛰어 넘는 욕심이 생길 때

이를 거부하는 삶. 이런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또 그뿐 아니라

세속적인 쾌락과 정욕을 거부하는 삶. 이런 것이 십자가입니다.

술취함과 방탕함과 무분별한 삶, 도박, 마약 등 이와 같은 것들을

단호하게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런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질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세속적인 쾌락과 정욕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의와 거룩함으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삶. 이런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우리가 피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걸머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러한 삶은 평생토록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포기해

버리고 주님 따라가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만 사람인 것입니다.

둘째로, 또 십자가는 핍박으로 인한 고난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을 따라가자면 반드시 핍박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불러 올리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도도하게 하나님을 등지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천국 가는 길과 세상 길은 언제나 서로 상극이 되어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잘 믿으려고 하면

어느 곳에 가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핍박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속과 문화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에 제사나, 우상 숭배나,

타종교 등으로 말미암아 가정에서 갈등이 생겨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추석이 되면 성묘하러가서 함께 절을 해야 되는데 나는

안하겠다고 하면 거기에 가족간의 갈등이 생겨나고 신사 참배 문제,

미신과 굿을 하는 문제, 다른 종교문제,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갈등을 느끼고 그래서, 세상이 가는 길로 안 가기 때문에

가족들 가운데 멸시를 당하고 천대받고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 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이처럼 세상에

속하여서 세상과 어깨동무를 하고 가면 세상이 미워할 일이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고 주님의 뜻을 쫓아 살게 되면서 세상과

거역되는 일이 많으므로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으로 인한 고난의 십자가는 벗어버리려고 하면 안됩니다.

주를 믿는 사람으로서는 단호하게 이 핍박을 이기고 나가야 됩니다.

성수 주일 하는 것이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나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가족간에 핍박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남편은 놀러가자고 하는데

부인은 교회에 가야 되겠다고 합니다. 또, 부인이 십일조를

드려야겠다고 하는데 남편은 안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도 갈등의

요소가 되고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58: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며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수 주일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단호히 나가면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십일조 문제도 그렇습니다. 말라기 3:10-1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단호하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탐욕으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갈등이 생기고, 대결이 생깁니다. 결국엔 이로 인하여 분쟁도 생기고

핍박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잘 섬기려고 할 때는

직장에서도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이리안자야에 가는

길에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까지 가는데 내 옆에 어떤 한국의 큰

회사의 중역이 탔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제가 식사가 나와서 기도를 드리니까 날 보고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목사라고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면서 그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교회는 안나가지마는

목사님 한 분을 잘 안다고 그래요. 그래서 누구를 아느냐고 그러니까

조용기 목사를 잘 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잘 아느냐고

물으니까 그분 친구들이 그 분의 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날보고 자꾸

믿으라하고, 그 분의 책을 가지고 와서 권면을 해서 그래서 잘 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그때부터

신앙문제가 나왔는데 상당히 비난적인 말을 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

중에서 너무 일이 많고 바빠서 일요일날 출근하라고 했더니 성수 주일

한다면서 교회 가버리고 회사에 안나와서 회사 일이 안됩니다. 그런

나쁜 놈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단체적으로 회사에서 회사 잘 되라고 돼지 머리에 절을

하는 것인데 예수 믿는다고 안합니다. 그런 단체 행동을 거부하는 이런

것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까? 신앙이란 다 협조하고 잘 지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말에 내가 반대를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풍 사고 알지요? 사람의 삶이

안개구름 같지 안습니까? 선생님 올해 나이가 몇입니까? 하니, 올해

47세라고 말합니다. 그럼 죽을 날이 가까이 왔네요. 그러니,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친구들이 자주 쓰러져 죽네요. 라고 대답하기에 내가

죽는 것 겁나지 않아요? 하니 가만히 있어요. 지금 타고 가는 비행기가

떨어질까 무섭지 않아요? 그렇게 말했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서

비행기가 출렁거리니까 그분이 겁나지요. 죽을까봐 물론 겁이야 나지요.

라고 대답하기에 그럼 당신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 알 수

없지요. 죽기야 싫지요. 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와 같이

탔으니까 안 죽을 겁니다. 그랬더니 싱긋이 웃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나면 심판이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를

구주로 모셔야 됩니다. 그리스도가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해서 천당에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회사의 직원이 주일날 회사에

나온다 안나온다, 돼지 머리에 대고 절을 한다 안한다 그런 것은 다

말단 직업적인 문제이고 문제는 당신이 죽지 말아야 됩니다. 영원히

살아야 되요. 그러므로 당신이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 하니까 내가

교회에 나가면 우리 집에 제사를 못 지내는데요. 라고 합니다. 그래서,

거 보세요. 당장 당신도 예수를 믿으면 제사를 못 지내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당신 영혼이 꼭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나중에는 그래요. 목사님 말을 들으니까 참으로

영생을 얻기는 얻어야 되겠는데 현재 삶이 참! 영생 가는 길을 힘이

들게 만듭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보십시오. 여러분, 남을

핍박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과 타협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직장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중심으로

살려고 하면 별수 없이 상사들이나 동료들에게서 비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걸머져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십자가를

훌훌 벗어 던져 버리면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완전히

세상과 타협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름만 예수 믿는 것이지

십자가 없는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는 신앙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협할 수 없는 것은 핍박을 받더라도 그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회 집단이나 국가에서

핍박을 받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에서 정말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로마 제국에서는 예수 믿다가

잡혀서 횃불 놀이 감이 되어 기름 붓고 불로 태워 죽이기도 하고

짐승에 찢기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대원군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절두산에서 목이 베어 죽임을 당했습니까! 일정시대에

태양신과 싸우다가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했습니까!

6.25때 예수를 믿는 다고 해서 잡혀서 죽은 장로님, 목사님, 평신도들이

부지기수가 되지 안습니까! 여러분, 이러므로 우리 한국에서도 예수를

믿다가 국가의 핍박을 받아서 순교를 당한 사람이 수 없이 많습니다.

마침 우리는 그래도 한국에 기도교의 복음이 들어온 지 백년이 넘고

기독교를 믿는 성도 수가 30%가까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대통령까지 올라가고 한국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아서

순교하는 그런 핍박이란 우리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중동이나 중국이나 북한 같은 곳에서는 예수를 믿음으로

불이익을 다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쫓겨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우리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 갈 때까지 걸머져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는 피해서는 안됩니다. 타협함이 없이 걸머지고 우리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또한 십자가는 복음을 위하여 자원하여 짊어지는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내가 안 짊어져도 좋은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내 스스로가 자원해서

짊어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 무관심하고 내 중심으로 나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 관심이 있어서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애를

쓰고 기도하고 이웃을 방문하러 가서 쫓겨나기도 하며 핍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방문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전도하려고 애를

쓸 때 이것은 내가 안해도 괜찮은 일인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걸머지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3:34-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안해도 되는 것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다. 우리 교회에서 늘 하는

헌혈운동 같은 것은 내가 피를 뽑아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 피를 뽑아 줍니다. 이것도 내가

자원한 십자가인 것입니다. 은혜의 빵도 그렇습니다. 내가 은혜의 빵에

열심히 돈을 모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동전

한푼이라도 은혜의 빵에 넣음으로서 요번에 그 빵으로 우리가

수재의연금으로 많은 금액을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사랑의 실천

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십자가를 걸머지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은 일이나 큰 일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

기회가 올 때 안해도 되지마는 내가 자원해서 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몸 드려서 희생하면 그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서 물질과 생활을 희생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여러분, 물질도

마태복음 6:20-21에 보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등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물질을 선교사업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내어놓고 내가 그만큼 생활에 절약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원해서 그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2:1에 있는 말씀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우리 남선교회의 봉사하는 여러분, 여선교회 봉사하는 여러분, 혹은

안수집사회, 혹은 장로님,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안한다고 해서 천당 못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하추동 사시사철 변지 않고 교통정리하고 성도들 안내하고 교회

헌금 거두고 교회 예배를 질서 있게 하기 위해서 희생 봉사를 합니다.

안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희생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러한

십자가는 우리 주님께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즐겁게 이 십자가의

제물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를 위하여 평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타국이나 타향에 가서 고생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의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지금 사는 생활이

얼마나 편안합니까! 다같이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서 한국 땅에서

개척해서 열심히 애를 쓰면, 한 사 오 년만 애를 쓰면 교인 적어도

300명 내지 500명 성도가 되고 그러면 평안한 목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나,

동남아나, 저 남미나, 태평양 섬이나, 어려운 곳에 갑니다. 사실은 제가

해외 선교하면서 그 곳에 가보면 나는 도저히 그곳에 살라면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서 애들을 데리고 원주민 애들과 함께 원주민

학교에 보내고 사는 삶은 굉장히 어렵고 고달픕니다. 그것을 즐겁게

감수하고 젊은 청춘을 받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자원한 십자가입니다. 자기가 안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소명을 받고 자원해서 자기의 삶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이러한 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슈바이쳐 박사 같은 사람을 보면은 그는 음악박사요.

문학박사요. 의학박사요. 철학박사요. 신학박사입니다. 박사학위를 다섯

개나 가진 시대의 천재입니다. 그가 독일에서 그냥 살았으면 말할 수

없는 영광을 안고 평안을 누리며 살았겠는데 그는 그 생활을 버리고

저 아프리카에 가서 문둥이 촌을 건설하고 거기에 수족이 다 무너진

문둥이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야말로 자원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

일생을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꺼이

안 받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리빙스턴 같은 사람도 일생을 아프리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정글을 허덕이다가 나중에는 그 시체도

찾지 못하고 순교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자기 자신을 내어놓아 가난하게 되고 고통도 당하고

시험도 당하는 이런 십자가는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을 십자가라

말 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불결한 습관 때문에 담배를 피우면서도

이것도 나의 십자가야. 아무리 끊으려 해도 안 돼. 십자가야.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술잔을 들고서 이것도 내 십자가야. 그런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마귀의 올무인 것입니다. 몸이 병들어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족과 이웃에 짐이 되는 그런 삶은 살면서도 이는 하나의

십자가로 말한다는 것은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마귀의 공격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삶이 저주를 받아 나라와 이웃에

부담이 되는데도 나는 이것이 십자가인데…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가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거나 혹은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런 십자가는 단호히 벗어야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라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는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인데 결국 우리는 죽음을 벗어버리고 나중에 승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는 자기의 정과 욕심을 쳐죽이고

자기를 깨뜨려서 참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서게 하는

그런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계속하는 이것이 십자가요 또, 나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일생을

내어놓고 자원해서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며 나가는 이런 것들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갖다 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이와 같은 것들을 십자가로 생각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십자가가 아닌 것은 단호하게 제겨버려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신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죄가 십자가가 아닙니다. 나쁜 습관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병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가난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주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죽음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런 것은 마귀가 가져온 저주인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단호하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물리쳐 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과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우리는 주

예수께서 주시는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삶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는

매일매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육신의 사람을 벗어버리는 이 십자가도 늘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회에서 핍박을 당하는

이 십자가도 우리는 벗어 버려서는 안됩니다. 주를 잘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려면 당연하게 핍박을 당합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걸머지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원해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는 이런 십자가들은 주님께서 향기로운 제사로

받아들이시고 주님께서 이런 십자가를 걸머지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주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문을 열어

주시며 하늘 나라에 올라가서도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주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해야 될 마귀의 저주가 있고

반드시 걸머지고 갈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걸머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 생애 속에 절대로, 절대로 피하지 마십시오. 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일로 매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가져온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것을 다 제겨버리셨은즉 아버지, 그것은 우리가 다시

걸머져서는 안될 짐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제겨버리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셨음으로 죄도, 나쁜 습관도, 질병도, 저주도, 죽음도,

우리는 단호하게 제겨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생명을 우리는 단호하게 얻어야

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자기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아집과 자기 중심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계속하는 수단과 도덕인 이 십자가를 평생 우리가

걸머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야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믿기 때문에 가정과 나의 직장과 사회와 동료들에게서

손가락질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도외시 당하는 이런 한 일들은 오히려

예수 믿는 증거가 됨으로 기쁘게 받아 들여야만 됩니다. 이것을

벗어버리고 타협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던져버려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천국 가는 확실한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옵니다. 타협하지 말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사랑 실천을 위한 십자가를 기회가 올 때마다 자원하여 짊어지게 하여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해서 내 물질도 내 청춘도

내 생활도 다 포기해 버리고 자원해서 오히려 가난해 지고 슬퍼지고

고달파지더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이러한 십자가는

기꺼이 기회가 오면 걸머지고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십자가 없는

신자들이 되지 않게 도와 주시고 자기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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