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1-11절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부활절] - 김태환 목사
설교본문 : 고전 15장 1-11절
설교제목 :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부활절]
설교자 : 김태환 목사님
고린도전서 15:1-1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쁜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던 여자들은 공포과 두려움으로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가던 길을 돌아와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제자들의 삶에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들의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나, 속속 들어오는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마터면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들이 한낱 아름다운 추억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에 대한 기억 하나 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는 믿음이 확 주어졌습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들은 진실했구나!” 그리고 “그분이 하신 행동 하나 하나가, 아니 그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었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했고, 그 말씀을 믿게 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부활은 결코 교리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했고,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고 믿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몇 몇 제자들이 경험했던 주관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500명이나 넘는 형제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했고, 주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주님을 만났고, 바울은 자기 같은 사람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 동안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누가복음 7:33-35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너희들은 ‘저 사람은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한다. 인자가 와서 먹고 마셨다. 그러자 너희들은 ‘봐, 저 사람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구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것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말씀이 개역성경에는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NIV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wisdom is proved right by all her children."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학적인 진리를 증명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 진리를 믿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 되었는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의 변화는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우선 이 사람들은 담대해졌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하여 거침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겁게 질려 숨어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관가에 끌려가거나, 매를 맞는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다시 공의회 안으로 불러들여서 매질을 한 후에,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하고 놓아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의회를 나왔습니다(사도행전 5:40-41).”
또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매우 논리 정연했고, 그들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공회에 끌려 와서 심문을 받았는데, 어찌나 그의 말에 확신이 있었는지 심문하던 공회의원들은 한결같이 그가 교육을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다가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얻은 결론은 놀랍게도 “아, 이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구나(사도행전 4:13)!”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 뜰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내용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사도행전 5:42).”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은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은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숨겨 놓고 그가 부활했다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지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옳다 함을 얻는다는 말처럼,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곳에 숨겨 놓았다면, 그들 스스로 세상을 속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삶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는 부활했다고 그렇게 그들의 목숨을 내 놓고 담대하게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를 가져 온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가 보이고 있는 행동은 제자들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잡혀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최근에 극적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 간에서도 그렇고,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변화를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울이라는 사람입니다. 본래 그의 이름은 “큰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사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그는 “작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여러분 그의 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 말씀이 NLT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passed on to you what was most important and what had also been passed on to me. Christ died for our sins, just as the Scriptures said. He was buried, and he was raised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just as the Scriptures said.” 직역하면, “나는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나도 역시 그것을 전해 들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는 죽어 매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3일만에 죽은 사람 중에서 살아 나셨습니다. 그것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pass on”이라는 말이 물건이나 사상을 전해 받고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자기 자신이 그것을 전달 받았기 때문에 그 자신도 이제 교린도 교회에게 이것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합니다. “케리그마”는 “선포(proclamation)”라는 뜻도 있고, “설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케리그마”는 기독교의 선포의 중심 메시지였습니다. 오늘날도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설교의 중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 그래서 그는 우리의 주님(the Lord)이 되셨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케리그마”를 누구를 통해서 전달 받았을까요? 성경 어디를 보아도 바울에게 “케리스마를 전달해 준 사람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는 바울이 예수님에게서 “케리그마”를 직접 전달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그는 아주 극적인 경험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는 그에게 들려 오는 음성을 향해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내게 말씀하시는 저 분이 바로 예수시구나. 그는 그의 말대로 다시 살아나셨구나!” 이런 영적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운명처럼 “케리그마”를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그것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내릴 것입니다(고린도전서 9:16).”
“성경대로(just as the Scriptures said)”라는 말은 Scriptures라는 말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한대로” 이렇게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당시 성경이라면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신약성경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시편 22편이나, 호세아 6:2이나, 이사야 53장, 시편 16:10 같은 구약성경의 말씀들이 대표적인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4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그를 의인이라 부르셨습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죽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케리그마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나는 내가 전달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달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케리그마”를 전달 받았습니다. 2008년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은 “케리그마”를 전달 받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케리그마”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운명이고,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이 전달 받은 “케리그마” 속에는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또 그 다음 세대에게도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가 없어도 설교가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는 먼지 묻은 고전으로 취급 받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설교자들이 먼저 “케리그마”를 그들의 설교의 주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변화된 삶으로 부활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